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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적인 삶  [3601]
· 설교 일자 : 2009년 02월 01일
· 본문 말씀 : 로마서 5장 18~21절
· 설교 :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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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적인 삶 (로마서 5장 18~21절)
  제가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그 다음 층에서 애기를 안은 애기 엄마가 탔는데 아이가 칭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애기 엄마는 타고 있는 나에게 미안했던지 아이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가 계속 칭얼거리자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조용히 하지 않으면, 아저씨가 이놈! 한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있는데 졸지에 ‘아이에게 이 놈!’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이가 계속 칭얼거리니까 그 아이 엄마는 나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아저씨! 얘 좀 혼내주세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서 있는데, 졸지에 애를 혼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대체로 그 상황에서 혼을 내면, 아이가 대책 없이 울어대는 수가 있습니다. 내가 그 아이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그 아이 눈과 내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아이가 나를 보더니 생글거리고 웃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우습게 보였나 봅니다. 나도 따라서 웃었습니다. 아이가 갑자기 조용해지자 아기 엄마는 나에게 웃는 아이를 보고서는 이제는 내게 인사하라고 시킵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해야지” “아저씨한테 윙크! 윙크!”
  요즘에는 그런 말을 안 하지만, 옛날에는 어린아이들이 칭얼대거나 울어대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순사가 잡아간다고 했습니다. 호랑이가 내려와 잡아간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습니다. 어떤 교인은 자기 아이가 울거나 그러면 “너, 목사님한테 혼난다!” “목사님, 애 좀 혼 좀 내주세요.”그럽니다. 애들이 어렸을 때부터 목사는 혼이나 내는 사람으로 각인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여튼 우는 아이의 울음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겁을 주고 혼내어서 울음을 뚝 그치게 하는 방법과 아이에게 사랑과 필요를 채워주어 그치게 하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전래 동화 중 호랑이와 곶감이야기가 그런 내용입니다. 학생을 공부시키는 방법은 공부를 안 하면 매를 댄다든지, 벌을 주는 방법으로 공부를 시키는 경우와 공부를 재미있게 가르쳐서 공부하게 하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먼저 율법을 주셨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면서 복음을 주셨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기보다는 더욱 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20절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가 더욱 드러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더 많은 범죄를 조장시킨다는 말이 아니라, 율법이 죄의 정체와 그 심각성을 폭로시킨다는 말입니다. 율법을 통해 죄의 정체가 확실하게 드러나고, 마치 의사가 환자를 진단해서 질병의 심각성을 들추어내어 수술실로 안내하는 것처럼, 율법이 죄의 정체를 드러냄으로 그 심각성을 해결할 수 있는 더 풍성한 은혜의 필요성을 가져온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로마서 3장 20절에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죄를 죄로 깨달으려면, 죄를 죄라고 드러내는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율법입니다. 대표적인 율법이 10계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10계명을 받았습니다. 10계명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래서 10계명을 잘 지키려고 613개의 작은 계명으로 나누었습니다. 최초로 율법을 작게 분류한 사람은 중세 시대 유대의 저명한 랍비이며 사상가였던 마이모니데스(Maimonides)였습니다. 그는 모세 오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을, “~하라!”고 하는 긍정인 형태의 적극적인 법 248개와, “~하지 말라”고 하는 부정적 형태의 소극적인 법 365개로 나누었습니다. 248이란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부분의 총합입니다. 365는 1년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아십니까? 율법을 지키려고 해 보면 절실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10계명을 정말로 제대로 지키려고 해 본적이 있습니까? 율법 앞에 서면 예전에 죄인이 아니라고 했던 사람도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율법은 우리의 어두운 부분과 더러운 죄를 드러냅니다. 율법을 통하여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하는데 오히려 죄 아래에 놓이게 되었고, 사망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로마서 3장 23, 24절,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본문 18-19절은 아담과 예수님을 비교해서 말씀합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는 많은 사람, 즉 모든 사람을 정죄에 이르게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의의 행동, 곧 십자가의 희생적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의를 가져왔습니다.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은 많은 사람을 죄인 되게 했지만,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은 오히려 많은 죄인을 의인 되게 했습니다. 로마서 3장 27, 28절,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죄로 인해 사망이 모든 사람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죄는 우리를 노예화시키고 죽게 합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의의 지배 아래 두고 영생으로 인도합니다. 우리가 죄 때문에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데, 예수님께서 내 대신 죄 값을 치러주셨음을 믿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복음 즉 복된 소리, 기쁜 소리, 좋은 소식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아담을 통해 나타난 죄의 세력보다 더 크고 더 풍성하고 더 능력이 많습니다. 죄는 우리를 죽이지만 은혜는 우리를 살립니다. 은혜의 힘이 죄의 힘보다 더 크기 때문에 은혜 아래 있는 자의 미래는 보장된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8장 1,2절,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21절에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두 종류의 삶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죄가 지배하는 삶과 은혜가 지배하는 삶입니다.
  복음적인 삶은 은혜로 사는 삶입니다. 은혜가 지배하는 삶입니다. 은혜가 자신의 모든 삶의 영역에 통치하는 삶입니다. 은혜 아래 있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 몸이 산소를 마셔야 하듯, 물을 마셔야 하듯, 음식을 먹어야 하듯, 우리 영혼은 은혜가 필요합니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살아야 하듯, 우리 생명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영원히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은혜란 아무런 값없이 주시는 호의, 선물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몇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속성으로써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해와 달과 공기와 모든 자연을 주시고, 생명을 거저 주시고, 태어날 때 이 땅에 살아가도록 재능과 같은 것을 주시는 은혜입니다. 둘째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죄를 용서해주시고, 구원하여 주시는 은혜입니다. 이것을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다”고 바울은 디도서 2장 11절에 기록했습니다. 셋째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모든 은사들, 구원의 복들, 성령 사역을 통해서 신자들의 생활 속에 역사하는 영적 은혜에 대한 포괄적인 은혜를 말합니다. 믿는 자에게 주시는 모든 것이 이 은혜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란 신자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 방법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거룩한 영향력입니다. 성령 하나님 자신, 혹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영향력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거듭난 신자는 죄 아래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습니다.
  우리가 한번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은혜 안에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은혜를 사모하고 받아 누리는 삶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을 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손길이 은혜입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 말씀,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 위로와 격려, 책망과 징계, 환난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그 은혜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하나님의 용서와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를 받습니다.
   김남준 목사의 [육적인 그리스도인, 영적인 그리스도인]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 때에는 하나님을 향한 따뜻한 사랑과 온유함, 그리고 영적 교제의 친밀함이 있으며, 이때에 세상의 유혹과 죄에 대하여 적대적인 마음을 갖게 되고, 신령한 것들에 대한 친화적인 갈망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침체는 이러한 은혜를 잃어버리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로부터 멀어지는 것인데, 이 때 신자들은 죄와 유혹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지며 심지어 그것들에 대해 친화적이 된다.” 하나님의 은혜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 죄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적인 삶이란 복음을 듣고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 즉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새롭게 심겨진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를 따라 사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새생명이 그 안에서 자라나고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아 살아가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지배하는 삶이 아니라 죄가 지배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고 죄의 즐거움에 길들여지게 되면 점점 죄의 지배 아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의 지배아래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죄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 6장 1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풍성하고, 은혜가 여러분을 다스리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은혜를 구하십시오. 더 큰 은혜를 갈망하십시오. 은혜 속에 살고, 은혜의 힘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적인 삶은 사랑으로 사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셔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십자가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예수님의 의무가 아닙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을 행하시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합니다. 지속적으로 주시는 은혜에 감동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삽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이웃을 사랑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삶의 에너지를 하나님의 은혜에서부터 공급받습니다.
  그래서 복음적인 삶이란 율법으로 풀어가는 삶이 아닙니다. 율법이 내 삶을 지배하고, 율법이 내 마음을 다스리고, 율법이 내 모든 행동을 억누르는 삶이 아니라 은혜를 사모하는 삶, 은혜를 받아 누리는 삶,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 은혜를 베푸는 삶, 그래서 은혜의 원리에 따라 사는 삶입니다. 그 은혜 중심에는 십자가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바다보다 더 큰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하늘보다 더 높은 사랑이 있습니다. 고로 은혜의 원리를 따라 사는 복음적인 삶이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사랑으로 풀어가는 삶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성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위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율법의 완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대요리문답 속에 십계명을 해석했는데, 이런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제6계명이 무엇입니까? 살인하지 말라 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제7계명 간음하지 말라. 우리의 순결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 우리의 사유재산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거짓증거 하지 말라. 이것은 우리의 인격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처럼 율법의 정신이 사랑이고, 그 율법의 내용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율법과 복음이 사랑 안에서 완성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나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나도 원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것을 나도 싫어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삶이 복음적으로 사는 삶입니다.

  공자의 [논어] ‘옹야’편에 ‘지지자불여호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호지자불여낙지자(好之者不如樂之者)’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일할 줄 알아서 그 일을 하는 사람보다 그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이 낫고, 그 일을 좋아서 하는 사람보다 그 일을 즐기면서 하는 사람이 낫다는 말입니다.
청소로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은 청소를 하지 않고 지저분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청소를 하기는 하는 데 억지로 합니다. 잔소리를 들어야 마지 못 해 합니다. 매번 청소할 때마다 지겨워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청소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청소하면 깨끗해지는 것을 알뿐만 아니라 청소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청소한 후에 깨끗해지는 상황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청소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청소를 하는 데 그냥 청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틀어놓고, 청소기를 사용하여 청소하면서 무슨 쇼를 하듯이, 춤을 추듯이 혼자서 노는 것처럼 청소를 합니다. 콧노래를 부르며 밀대걸레를 가지고 무슨 가수가 마이크 스탠드를 움직이며 노래하듯 하는 동작을 하면서 청소를 합니다. 똑같은 청소를 하면서 어떤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일까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지 못합니까?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지로 신앙생활을 하거나, 벌 받지 않기 위해서 신앙생활하거나, 마지못해 예배를 드리거나, 기쁨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한다면, 그런 신앙생활은 무척이나 힘든 신앙생활일 것입니다. 뻑뻑한 신앙생활, 그래서 감사도 없고, 감동도 없고, 감격도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기쁘고 즐겁지 않다면 왜 그럴까요? 그것은 율법적인 삶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불호령이 떨어지는 것이 무서워서 밥하는 사람과 남편을 사랑해서 밥하는 사람의 마음과 삶은 불행과 행복의 차이입니다. 주일 안 지키면 하나님께 벌받을까봐 주일 예배에 나와 앉은 사람과 주일 예배에 나오면서 오늘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를 기대하고 사모하면서 은혜와 사랑을 받으면서 즐거워하며 예배를 드리는 사람과는 땅과 하늘 차이입니다. 억지로 해야 하니까, 안 하면 하나님께 찍힐까봐 봉사하는 사람과 하나님께 받은 사랑 때문에 섬기고 은사받은 것을 감사하여 봉사하는 사람은 지옥과 천국 차이입니다. 남을 구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물질을 다 거두어 가실까 봐 구제하는 사람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니까 감사하며 나누고 베풀고, 또 그렇게 할 때 더 큰 은혜를 주실 것을 믿고 기대하면서 구제하는 사람은 율법과 복음의 차이입니다.
  복음적인 삶이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고 즐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쁘고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섭고 괴롭히는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느헤미야 8장 10절 하반절 말씀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 인생이 즐겁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 삶이 기쁘고, 우리에게 주신 복음으로 인해 은혜와 사랑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
  여러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재채기와 가난과 사랑은 숨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할 때에 우리 안에 있는 복음적 삶의 모습이 드러날 것입니다. 주님 사랑이 가득하려면 십자가를 묵상하면 됩니다. 또 이런 찬송을 부르십시오. 복음성가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것 뿐예요.” 자주 부르십시오. 주님에 대한 사랑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에 대해 감사하고 감격하고 감동하여 즐거운 신앙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죄가 여러분을 다스립니까? 은혜가 여러분을 다스립니까? 율법이 여러분은 다스립니까? 복음이 여러분을 다스립니까? 여러분은 사망 아래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생명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교우 여러분, 신앙생활이 은혜로 즐겁고, 사랑으로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은혜 속에서 사랑하며 사는 복음적인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2009년 02월 01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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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 일시  2008년 12월 25일
· 말씀  (본문을 기재해 주세요)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받아들이기 힘들 때
· 일시  2008년 12월 21일
· 말씀  누가복음 1장 26-3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나는 세상의 빛이니
· 일시  2008년 12월 14일
· 말씀  요한복음 8장 12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위기를 만났을 때
· 일시  2008년 12월 07일
· 말씀  이사야 37장 14~20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잃어버렸을 때
· 일시  2008년 11월 30일
· 말씀  요한 15장 1-2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함께 전도하는 교회
· 일시  2008년 11월 23일
· 말씀  요한복음 1장 43~51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을 자랑하라
· 일시  2008년 11월 16일
· 말씀  시편 105편 1~3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 일시  2008년 11월 09일
· 말씀  요한복음 14장 27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 일시  2008년 11월 02일
· 말씀  시편 136편 23~26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믿음으로 말미암아
· 일시  2008년 10월 26일
· 말씀  로마서 1장 16~17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