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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지뢰  [3293]
· 설교 일자 : 2009년 09월 13일
· 본문 말씀 : 야고보서 4장 13-17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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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지뢰 (야고보서 4장 13-17절)
  군대에 갔다 온 남자들이라면 지뢰가 무엇인지 잘 아십니다. 여자들 가운데에서도 영화나 드라마, 소설과 같은 것에서 지뢰가 터져 병사들이 죽거나 다치는 광경을 보았을 것입니다. 지뢰는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전쟁 무기입니다. 지뢰는 은밀하고도 치명적인 무기입니다. 적군이 땅 속에 지뢰를 묻어 두면 그 곳을 지나가는 병사들이 잘못 지뢰를 묻은 곳에 발을 디디거나 해서 압력이 가해지면 여지없이 폭발합니다. 어떤 지뢰는 밟았다가 발을 떼는 순간 폭발하는 지뢰도 있습니다. 폭발하는 순간 근처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지뢰는 사람을 살상하기 위한 지뢰가 있고, 대전차 등을 폭발시키려는 용도의 지뢰도 있습니다. 어떤 지뢰는 발목만 자르는 지뢰도 있습니다.
  여러분, 만약 우리의 삶에 지뢰가 설치되어 있다면 반드시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지뢰를 제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찰스 스탠리는 우리의 인생의 지뢰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타락한 세상을 사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지뢰이고, 또 하나는 사탄이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려고 전략적으로 설치해 둔 지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궤도에서 이탈하여 지뢰를 밟고 그 지뢰가 폭발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인생의 길 위에 매설된 불경건이란 지뢰에 대해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불경건이라는 숨은 지뢰는 우리가 앗차 하는 순간 밟게 되는 지뢰입니다. 수시로 밟는 지뢰입니다. 그렇다면 불경건이란 무엇이지요?

먼저 경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교회 여전도회 회장인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집사님은 부동산 투기가 한참 기승을 부릴 때에 부동산 투기에 일주일 내내 열심히 아파트와 땅을 보러 발이 닳도록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주일오후여전도회헌신예배의 인도를 맡게 되었습니다. 주일 오후시간에도 전화 연락이 와서 잠간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아파트를 보고 와서 헌신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거룩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예배의 부름을 낭독하고, 찬송을 부를 시간, 거룩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찬송가 102동을 부르겠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찬송을 부른다고 다 경건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다 경건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경건은 겉모양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걸음걸이에 있는 것도 아니고, 얼굴표정에 있는 것도 아니고, 목소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누가 성경책을 이렇게 들고 이렇게 걸어가면 ‘야! 저 분은 경건한 분이구나!’ ‘거룩한 분이구나!’ 그렇게 생각합니까? 누가 기도할 때에 목소리가 소위 홀리보이스로 “거룩하신 아바지 하나님!‘ 그러면 경건한 것 같습니까?
  경건은 하나님을 닮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을 우러러 보며 그에 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경건입니다. 또한 경건이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오는 능력 또한 실재를 말하기도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들 나름대로 경건한 사람이 되려고 하고, 자신들이 경건한 사람이라고 자부했지만, 그들의 경건은 경건의 목표가 잘못 되어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경건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기보다는 사람의 눈을 더 의식했습니다. 경건한 사람으로 대우 받으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전체에는, 예수님께서 그런 그들에게 책망 정도가 아니라 ‘화 있을 진저’라고 하시며 저주하신 말씀이 가득합니다. 속은 더럽고 탐욕적이고 외식하면서 겉은 깨끗한 척, 거룩한 척, 경건한 척 한다고 꾸짖으시면서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부르면서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려고 애를 썼고, 선을 행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겉모양은 의롭고 경건한 것같이 보였지만 하나님을 닮아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선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살지 못했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참된 경건이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세속에 물들지 않고, 어려운 중에 있는 자를 도와주는 태도라고 야고보서 1장 27절에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야고보는 경건하기 위해 말을 조심하라고 했고, 바울은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말을 조심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니까 경건하다는 말은 신앙이 자리를 잡고, 신앙이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나 열매를 맺어가는 삶입니다.
  경건이 그렇다면 경건치 않은 것, 곧 불경건함이란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 자신이 하나님께 의존된 존재로써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2장 16절 이하에, 불경건한 사람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한 부자가 추수를 하고 그 소출이 많으니까 곡식을 쌓을 곳이 부족하니까 창고를 더 크게 짓고, 그 곳에 쌓아야 겠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수확을 했으니 이제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기자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 어리석은 자야, 오늘밤 네 영혼을 불러 가면 그 곡식이 다 누구 것이 될 것 같냐?’고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한 부자는 열심히 농사를 지었고, 추수를 잘 했고, 곡식 보관을 위해 창고를 더 짓고, 그것을 잘 관리하려고 했고, 수고 했으니 잘 먹고 잘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부자의 생각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그의 삶에는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없었습니다. 그에 인생의 목표에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경건치 못했습니다. 시편 14편 1절,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는 말씀처럼, 그의 생각과 삶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 야고보서 4장 13절 이하의 말씀도, 나름대로 자신의 인생 계획을 세우고, 사업을 하여 이윤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인생을 사는 데 계획을 세우고, 꿈을 갖고, 애써 노력하는 것을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야고보가 그들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그들의 계획과 꿈과 노력 속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려는 자세가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불경건한 모습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어떤 사람도 온전한 성공,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5절 말씀처럼, “너희가 도리어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고 말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불경건한 사람(경건치 않은 사람)이라고 하면 아주 부도덕한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1장 18절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건치 않음과 불의를 구별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경건하지 않음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없거나 심지어 하나님께 반역을 뜻합니다. 불의란 사람들 간의 부당한 행동을 말합니다.

  남에게 존경을 받으며 살면서도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이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은 불경건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예의바르고 남을 잘 돕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다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불경건한 사람입니다. 심지어 주일마다 한 시간씩 교회에 나와 앉아 있는 사람들일지 모르지만, 그 외 시간에는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살아간다면, 그는 부도덕한 사람은 아니지만 불경건한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러분, 솔직히 한번 말해 봅시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가서, 월요일부터 가정에서, 직장에서, 세상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생각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침마다 성경을 읽고, 새벽기도회에 나와 기도도 하지만, 막상 그 시간이 지나고 일상적인 하루의 생활이 시작되면, 결국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느냐 말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내 삶에 바라시고 기대하시는 것, 즉 내가 하루하루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면, 불경건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나의 존재, 내가 가진 것, 내가 이루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불경건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지 않고 자기만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다면, 경건치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혀로 짓는 죄, 험담, 비꼬는 말, 불친절한 말, 수군 수군대는 말, 비방하는 말,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말, 중상 모략하는 말,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말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내 말을 듣고 계신다는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불경건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 많은 시간 봉사를 하고, 여러 가지 책임을 맡아 열심히 봉사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봉사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과 상관없는 경건치 않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눈을 더 의식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고 계실까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경건치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없이, 하나님과 관계없이,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경건치 않은 삶이 지속이 되면,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지 않으니까 기준이 없어집니다. 중심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기준이 없고, 하나님의 중심이 없으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합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다는 말은 자기감정에 따라, 자기 욕망에 따라, 자기 생각, 자기 판단에 따라, 자기 주관과 자기 경험에 따라 행하는 삶입니다. 이 모든 것이 죄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원하실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경건치 않은 불경건한 사람에 대해 진노하실까요?   여러분, 히스테리라는 말을 아시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히스테리를 부리시는 것일까요? 괜히 그러시는 것일까요? 어린아이가 자기 엄마가 항상 자기 곁에 있지 않으면 불안을 느끼고 울음으로 표현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 곁에 없으면 불안을 느끼시는 것일까요? 아니면 애정결핍증 환자처럼, 즉 누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거나 사랑을 못 받고 있다고 느껴지면 견딜 수 없어 그 관심과 애정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상한 행동이나 과도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처럼, 하나님도 사람들이 하나님께 관심을 갖지 않으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으셔서 그렇게 극한 진노하시는 것일까요?

  모든 죄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입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목표에서 빗나간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뜻과 말씀을 벗어난 모든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반역에서부터 죄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과 관계없이 행하는 것이 불경건함이고,  불경건함은 모든 죄의 출발단계이기 때문에 불경건에 대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경건치 않음, 불경건함은 모든 죄의 근원입니다. 모든 죄의 뿌리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없애려면, 죄를 짓지 않으려면 그 뿌리를 없애야 합니다. 근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땅 속에 박힌 숨은 죄의 지뢰를 제거해야 합니다.
  어느 선교사님이 선교지의 허름한 집에서 생활을 할 때, 처음으로 화장실에서 뱀을 만났답니다. 계속해서 뱀이 집으로 들어오자 뱀에 대하여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뱀이 집으로 들어올까? 그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집에 쥐가 있기 때문에 먹이 때문에 뱀이 집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쥐를 잡기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쥐도 한두 마리 잡는다고 잘 없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그래서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왜 쥐가 집에 들어올까? 너무나 간단한 일인데, 음식 쓰레기 때문에 자꾸 집에 쥐가 들어오기에 이제는 모든 음식물을 드럼통에 뚜껑을 닫아서 보관하거나 버리기 시작했답니다. 그 이후에 선교사님은 쥐나 뱀 때문에 끔찍한 일을 겪지 않고 더욱 안락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단의 공격이 이와 같습니다. 사단의 공격꺼리를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그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근원을 제거시키는 전략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불경건이라는 지뢰를 제거해야 신앙이 뿌리를 내리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산수문제가 있다고 합시다. 2+2+3x 4x 50 * 6 그리고 어쩌구 저쩌구라는 문제의 답을 구할 때, 2+2= 5라고 결정하고 시작한다면, 그 이후의 모든 계산이 틀리게 될 것입니다. 전기 코드를 콘센트에 꼽지 않고 아무리 리모콘의 전원 버튼을 눌러도 텔레비전 화면에는 화면이 나타나지 않아 까맣습니다. 밧줄을 나루터에 묶어 두고 배를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는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근원을 바르게 시작해야 합니다. 제대로 시작해야 합니다. 이 말은 경건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생각, 하나님 중심, 하나님의 뜻, 하나님께 절대 의지!

  사람은 창조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아 하나님과 교제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대화하고, 하나님과 함께 온 세상을 다스리고 돌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온 세상을 가꾸도록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 경건한 사람은 본래의 인간의 모습을 회복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고,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고,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보신다고 생각하며 살고,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하나님의 동역자로써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닮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경건은 이런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경건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 105편 3,4절, “3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4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구하고 찾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즐거움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교우 여러분,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함께 하려는 경건한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쁨과 평안과 영광을 주시기 위해 경건한 자를 사랑하시고, 경건치 않는 자에게 징계하고 진노하십니다. 지난주까지 야곱에 관한 설교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계속적으로 훈련시키셨던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잊지 말라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복 받을 수 있고,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경건치 않은 사람에게 복을 주셨다고 기록해 놓은 곳이 한 곳도 없습니다. 반대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경건한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일하셨으며, 얼마나 많은 복을 그들에게 주셨으며, 그들이 받은 복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세상을 만들어 가려 했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경건한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기뻐하셨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생활을 위해 웨슬리는 항상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고 합니다. 첫째, 너는 항상 기도하는가? 둘째, 너는 순간마다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가? 셋째, 너는 모든 경우에 감사하는가? 넷째, 너는 욕심내는 것이 없는가? 다섯째, 너는 두려워하는 일이 없는가? 여섯째, 너는 네 중심에 연속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가? 일곱째, 무슨 말이나 일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가? 이렇게 매일 매순간 자신에게 질문했다고 하는데, 우리는 웨슬리의 경건 생활 질문에도 자신있게 그렇게 살고 있다고 대답할 수 없는데,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나를 보고 계신 하나님 앞에서 어찌 경건한 사람으로 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성경말씀에서 말하는 데로 경건한 사람이 되기에는 너무도 부족합니다.
여러분, 일반적으로 평균적으로 말할 때에, 일반 교우들보다 목사가 조금이라도 더 경건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목사인 제가 제 자신을 들여다보면 경건하지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경건한 모습이 너무도 모자랍니다. 경건의 목표는 하나님을 닮고 예수님을 닮는 것인데 그러기에는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고, 예수님을 닮기는커녕 그 반대가 아닌가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목사인 제 자신이 그런데, 여러분 자신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우리 모두는 경건치 않습니다. 목사인 저보다 우리교회 안에 훨씬 경건한 분들이 분명히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 보면 우리 모두가 경건하지 못합니다. 경건하고자 하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이 불경건의 죄를 다 짓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불경건이라는 지뢰를 밟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로마서 5장 6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값을 치루셨습니다. 우리의 경건치 않음을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로 이루어진 복음이 이 불경건의 지뢰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고,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때로, 수시로, 번번히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내 마음대로 행하는 불경건한 죄를 범했을 때에도 무한한 사랑으로 용서해주시는 십자가의 사랑을 힘입어 또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갈망하고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면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끊임없이 우리를 십자가 앞에 세워 주시고, 하나님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의 관점으로, 하나님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려고 훈련하는 것이 경건훈련이요, 그런 신앙이 참 신앙이요, 풍성한 영성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감정 따라 살고, 혈기대로 살고,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속물근성이 다 드러납니다.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판단하고 싶은 대로 판단하고, 비방하고 싶은 대로 비방합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합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합니다.
  여러분, 경건이 자리를 잡고 훈련되지 않으면 마치 스위치가 붙었다 떨어졌다하는 전구처럼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하는 신앙인이 됩니다. 기본이 흔들리고 중심이 허약한 신앙인이 됩니다. 여러분을 그렇게 만드는 불경건의 숨은 지뢰를 발견하십시오. 그것을 제거하십시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경건한 신앙인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009년 09월 13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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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09년 08월 16일
· 말씀  여호수아 14장 6~12절
· 설교  이동훈 목사
   
주일예배 설교
 광야학교(2)
· 일시  2009년 08월 09일
· 말씀  신명기 8장 1-1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광야학교
· 일시  2009년 08월 02일
· 말씀  신명기 8장 1~10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 일시  2009년 07월 26일
· 말씀  에베소서 4장 17-24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믿음의 반응
· 일시  2009년 07월 19일
· 말씀  히브리서 11장 6-12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신앙생활이란 어떤 것입니까?
· 일시  2009년 07월 12일
· 말씀  빌립보서 3장 12~16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영원한 생명을 얻으십시오
· 일시  2009년 07월 05일
· 말씀  요한복음 3장 16-21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것들
· 일시  2009년 06월 28일
· 말씀  고린도전서 3장 10~1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찾아내기까지
· 일시  2009년 06월 21일
· 말씀  누가복음 15장 8-1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
· 일시  2009년 06월 14일
· 말씀  사도행전 7장 54~60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생수의 강
· 일시  2009년 06월 07일
· 말씀  요한복음 7장 37-39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성령님 임재하소서 !
· 일시  2009년 05월 31일
· 말씀  에베소서 5장 15~1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시련을 이겨내는 사람
· 일시  2009년 05월 24일
· 말씀  야고보서 1장 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항상 기도 하십시오
· 일시  2009년 05월 17일
· 말씀  에베소서 6장 18~20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함께 만들어가는 가정
· 일시  2009년 05월 10일
· 말씀  에베소서 5장 21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