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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란트 받은 자의 인생  [3513]
· 설교 일자 : 2009년 11월 29일
· 본문 말씀 : 마태복음 25장 14-30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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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란트 받은 자의 인생 (마태복음 25장 14-30절)
  오늘은 대강절 첫째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성탄절을 앞두고, 네 번째 주일부터 대강절이라는 절기로 지킵니다. 예수님의 탄생일을 기다리면서, 이미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다시 재림하실 메시야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신앙의 계절입니다.
  본문이 포함된 마태복음 25장의 내용은 곧 다시 오실 메시야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 앞에 나오는 지혜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의 비유는 다시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는 준비된 태도를 강조한 것이라면, 이 달란트 비유는 기다리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 지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이라면 너무도 잘 아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 비유 말씀입니다.
  어떤 주인이 장시간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집 종들을 불러서 소유를 맡겼는데, 각각 재능대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종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 한 종에게는 금 두 달란트, 한 종에게는 금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습니다. 그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하였고,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가서 땅을 파고 받은 달란트를 감추어 두었습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여행에서 돌아와 그들과 계산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에게 칭찬을 받는 신나고 즐거운 종이 되었고,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책망 받는 비참한 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에서 천국의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은 하나님, 예수님을 의미하고, 종들은 모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여행을 떠났다가 주인이 돌아와 종들과 계산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어 하늘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다가 재림하여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은 종에게 각각 재능대로, 달란트를 맡겼고, 얼마만큼의 세월이 흐른 뒤에 돌아와 결산을 합니다. 시간, 재능, 물질을 주었다는 내용의 비유는 곧 하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다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서로 서로 비교하여 누가 더 많이 누가 더 큰 누가 더 좋은 재능을 가졌다 안 가졌다고 비교하지만, 그것은 성경적이지 못한 생각입니다. 이 비유에서 말하는 중요한 의미는 주인이 종에게 준 달란트의 가치입니다. 이 비유에서 사용된 돈 1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입니다. 1데나리온이 당시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었습니다. 그 당시 노동자의 임금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 노동자가 최소한 15년 이상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돈입니다. 한 달에 100만원 받는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환산하면 일 년에 1200만원, 15년 동안 모으면 1억 8천만 원입니다. 이렇게 계산하면, 아무리 적게 잡아 계산해도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1억 8천만 원,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3억 6천만 원,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9억 원을 주인에게 받았습니다. 엄청난 돈입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평생에 한자리에서 만져 보지 못할 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재능이나 시간이나 생명이나 지혜나 그 무엇이든지 그것은 소중한 것이고,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값지고 고귀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어떤 것이든지 천한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싸구려가 아닙니다. 함부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내가 받은 것도 소중하고, 다른 사람의 것도 소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 즉 재능이나 시간이나 물질이나 생명이나 지혜를 사용하여 열심히 일을 할 때, 선한 결과를 이루어 나갈 때, 그 어떤 직업도, 그 어떤 봉사도, 그 어떤 섬김도 고귀하고 값진 것이라는 것이 오늘 말씀의 뜻입니다.
  목사가 되는 것이 소원인 구두 수선공이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그 길이 열리지 않아 마침내 그는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에게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신학교 학생으로, 장래 훌륭한 목사가 될 것으로 촉망받는 친구였습니다. 과연 그 친구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사가 된 친구가 첫 임지로 부임하려고 할 때, 구두 수선공은 친구 목사에게 구두를 한 켤레 들고 찾아가 한 가지 청을 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그토록 꿈꾸었지만 한 번도 올라서보지 못한 강단에 친구가 설 때 자신이 지은 신발을 신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자신은 그 광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겠다는 간청이었습니다. 친구는 흔쾌히 동의하고 임지로 떠났습니다. 그 구두 수선공도 기쁨이 충만한 마음 자세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 수선공은 주어진 자신의 여건에서 최선을 다 했고, 그대로 뜻을 이룰 수 없자 그 다음 할 일을 찾아 나름대로 이상에 접근했던 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에게 주신 달란트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각자 능력에 맞는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 받은바 ‘달란트’대로 최선을 다할 때,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우열이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 할지어다” 21,23절 말씀입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해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깨닫고자 합니다. 세 종류의 사람이 등장하는 데, 그 중에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만 주인으로부터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들었습니다. 최악의 인생을 살았다는 뜻이지요. 비참한 인생을 살았다는 평가입니다. 그는 왜 그렇게 비참한 인생을 살았을까요?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종들은 바로 가서 장사를 했다고 했는데, 왜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그 종의 대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24,25절에,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는 주인이 굳은 사람이고,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인지라 두려워서 달란트를 땅에 감추었다가 한 푼도 축내지 않고 그대로 내드리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그 종은 주인을 어떤 사람으로 알았습니까? 그는 자기 주인은 기준이 높아서 그 기준을 이루지 못하면 몹시 엄격하게 대하는 사람이고, 경거망동하는 것을 싫어하고, 최선만을 요구하고, 실수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엄격하고 무섭고 두려워 숨이 막힐 것 같은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주인을 자칫 실망시키게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는 주인이 두려웠고, 주인에게 무슨 벌을 받을까봐 두려웠고, 실패할까 두려웠고, 온통 두려움 때문에 그가 내린 결론은 ‘받은 달란트를 땅에 숨기자’이었습니다.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두 종들은 주인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하는 마음, 주인께서 맡긴 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성했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이기적인 두려움에서 행동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자기 방어를 위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오늘 비유에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강력한 메시지 중의 하나는,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주인을 오해하여 비참한 최악의 인생을 산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잘못 알고, 잘못 믿어 비참한 인생을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느냐는 아주 중요합니다. 신앙의 대상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어떤 하나님을 믿느냐에 따라 신앙의 유형이나 내용이 결정됩니다. 내가 무능한 하나님을 믿는다면 무능한 신앙생활을 할 것이고, 이 세상을 창조한 후에 이 세상일에 관심도, 관여도 하지 않는 하나님이라고 알고 믿고 있다면,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하나님 신앙을 가지고 살 것이고, 자애로운 부모님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다면, 나의 신앙이 자애로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 여러분이 성경을 통해 알고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나는 오늘 설교의 주제와 관련하여 이런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실수를 용납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실수를 통해 합력하여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겉모양보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형식보다 내용을 더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또한 저는 쩨쩨하거나 좀스럽지 않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스케일이 크신 하나님, 광대하신 하나님, 쿨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본문 비유 속에서는 주인이 그냥 떠났다가 돌아와 결산하는 모습만 나오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내게 맡기신 달란트를 사용하여 인생을 살아갈 때, 내게 맡겨진 일과 역할을 할 때,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과 미련함과 약점을 아시는 분이시며, 내가 도움을 청하면 반드시 도우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또한 보혜사 성령 하나님을 보내셔서 내 안에 충만히 거하시기를 원하시며 나를 보호해 주시고, 지켜 주시고, 인도하시고, 내 안에 역사하시고, 능력을 행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연약하고, 부족하고, 똑똑하지도 지혜롭지도 못하고, 약점 투성이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고, 또 도우시고, 새롭게 하시고,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시기에, 오늘도 또 강단에 서서 말씀을 전하고 목회의 일을 감당합니다.
  또한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내가 잘못해도 위로하고 격려하고 칭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축구를 좋아하니까 축구경기 중계를 볼 때가 있습니다. 축구 경기 중에 선수를 교체하는 때가 있는데, 감독이 경기에 뛰던 선수가 다치거나 체력에 문제가 생기거나, 그냥 뛰게 하는 것이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더 나은 체력과 능력을 가진 선수를 뛰도록 교체합니다. 그런데 그 때에 감독들은 경기장에서 벤치로 나오는 교체된 선수들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든지, 어깨를 두드려 주든지, 들어오는 선수에게 박수를 쳐주면서 수고했다는 격려하여 줍니다. 여러분,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우리들에게 관대하시고, 격려해 주시고, 박수를 쳐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신앙생활을 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무엇을 잘못하면 벌을 내리시려고 눈에 불을 켜고 따라다니시는 분, 여러분의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만 들추어내시는 분, 장점보다 약점만 캐내시는 분, 익은 것보다 안 익은 것만 찾아내시는 분, 그래서 우리를 징계하시고, 못 살게 구시고, 용서와 긍휼과 사랑과 은혜가 조금도 없는 하나님으로 알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만약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미움을 사서 벌을 받게 될 것이고, 복을 받지 못할 것이라든지, 징계를 받을 것이고,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두려워서 봉사하는 것이라면 힘든 신앙생활, 고통스런 신앙생활, 복음이 아닌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만약 하나님께 봉사하면 하나님께서 만사형통하게 해 주시고, 복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여 봉사하고 있다면, 그것은 업적주의, 공로주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푸신 은혜가 너무도 크고, 구원하여 주신 은혜가 너무도 놀랍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신 은혜가 너무도 커서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보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세상을 다스리고 관리하기를 원하시고, 우리를 이 세상을 관리하는 청지기로 삼으셨고, 바로 그 일을 위해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고, 그 목적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았기에 봉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의 대답을 보면 그는 노예 정신으로 살았습니다. 이것이 그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노예는 주인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주인집 자녀들은 주인인 아버지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합니다. 사랑의 관계에서 일을 합니다. 종과 아들이 똑같이 밭에 나가 일을 해도, 마음과 자세가 다릅니다. 종이나 노예는 주인에게 혼나지 않으려고 일을 하고, 혼나지 않을 만큼 일을 합니다. 주인이 시킨 것만 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일이 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을 적게 하여도 아버지에게 혼날 생각부터 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아들은 아버지의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가 말씀하지 않은 것까지도 잘 헤아려 일을 합니다. 아버지가 미처 생각 못한 일까지도 알아서 합니다. 자신이 한 일로 인하여 아버지가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우리 아들이 일을 많이 했구나 하고 흐믓해 하거나, 기뻐하시는 것을 보기 위해서, 칭찬하는 말씀을 듣기 위해서 열심히 일합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그것이 노예나 종과 주인집 아들의 차이입니다. 두려움과 사랑의 차이입니다.
논어에 보면, “지지자불여호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호지자불여낙지자(好之者不如樂之者)”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각각은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 인생을 사는데도, 어떤 일을 할 때에도, 두려워서 하는 사람, 해야 되니까 하는 사람, 먹고 살려니까 하는 사람,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 일을 즐기면서 하는 사람, 사랑하기 때문에 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의 인생을 마지못해 살고, 두려움속에 살고 있다면, 그 인생은 노예인생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인생입니까? 여러분, 좋아서 해야 하고, 즐겁게 해야 하고, 사랑해서 행할 때, 우리에게 행복이 있습니다.
  두려움은 삶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랑하면 두려움이 작아집니다. 사랑하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이겨냅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잘못 알고 두려움 속에서 벌 받을 것, 진노하심을 받을 것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생을 살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여러분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 자체에서 청지기 주일로 지킵니다. 청지기 주일을 지키는 의미는,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부탁받고 맡겨진 임무와 역할이 있는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사실을 다시 다짐하고, 주인이 아닌 청지기로써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내가 청지기의 임무와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청지기로써 부족하거나 잘못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가? 청지기로써의 바른 자세를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은 없는가를 살펴보고자 함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교우들이 청지기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곧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와도 같습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써, 무슨 일을 하려고 계획할 때, 누가 무슨 일을 부탁하면, 어떤 책임이 맡겨지려고 하면, 무엇 때문에 안 되고, 무엇 때문에 못하고, 무엇 때문에 참고, 무엇 때문에 나중에 하고, 무엇 때문에 하지 않겠다고 변명을 늘어놓기 일쑤입니까? 여러분은 누구처럼 잘하려고 생각하니까 부담되고 두렵습니까? 누구보다 더 잘하려고 하니 그렇지 못할 것 같아서 꺼리고 두려워합니까? 잘 한다는 것이 누구의 기준입니까? 누가 평가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도전해 보는 자세도 없이 실수할 것부터 생각하고, 실패할 것이라고 미리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당할 것, 다른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를 것부터 걱정하고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하고 성공적인 성취를 이룰 수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으로부터 시작하여 시작도 하기 전에 결론을 내버리지는 않습니까? 잘하지 못할 것 같아 못하겠다고 하십니까? 여러분의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바로 알지 못하여 거절하고, 묵혀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종의 자세가 아닙니다. 청지기의 자세가 아닙니다.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땅에 묻어 두는 것입니다.
  연말이 되면서 교회 내 각 기관에서 총회를 하고, 새롭게 내년에 일할 사람들을 뽑고, 임명하게 될 것입니다. 기왕 하는 봉사이면, “아멘!”하고 순종하십시오. 한다 못한다, 나 시키면 교회 안 나온다, 유치한 어린아이 신앙으로 흥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복을 달랄 때에는 안면 불구, 염치불구, 체면 불구하고 들이대면서, 하나님께서 맡기는 일은 못하시겠다... 십자가는 못 지겠다... 희생은 없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영생을 은혜의 선물로 받았으면,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은혜에 응답하는 자세가 있어야 하고,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섬기고 봉사해야 합니다. 마지못해 하지 마십시오. 기왕 하는 일이면 순종하고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잘 못합니다. 그러나 부족하지만 맡겨주시면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이런 자세가 하나님께 칭찬받는 자세입니다. 복받는 자세입니다. 이런 분들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고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26절에,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 주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가 게을렀습니까? 여러분, 그는 한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고 그냥 방치해 두었을까요? 주인의 돈을 잃어버릴까 봐, 주인이 두려워서 그 돈을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지켜봤을 것입니다. 그가 전혀 꼼짝 달싹도 하지 않는 게으른 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열매있는 일에 부지런한 것이 아니라 열매 없는 일에 부지런했던 것이지요. 그는 이윤이 남고 의미가 있는 일에 부지런하지 않고 껍질뿐인 헛된 일에만 부지런했습니다. 여러분, 괜히 왔다 갔다 한다고 해서 부지런한 것이 아닙니다. 행동에 규모가 있고, 일에 계획성과 목표가 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분주해야 게으르지 않은 것입니다. 종인 그가 주인의 일을 진정으로 생각하여 부지런한 것이 아니라 자기 몸만 사리는 일에 부지런했기에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 받았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나름대로 바쁘게 사시겠지만, 여러분이 한심한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헛된 일에 바쁘고, 열매 없는 일에 분주하다면 비참한 인생으로 끝맺게 될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그렇지만 여러분은 한 달란트 받은 자처럼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비유 속에서는 세상 끝 날에 심판 받는 모습의 내용이지만, 여러분은 아직 살아있고, 아직 세상 끝 날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아있는지는 정확하게 계산할 수 없지만, 여하튼 시간이 있습니다. 아직 살아있습니다. 아직 돌이켜 가서 받아 묻어둔 달란트를 꺼내고, 캐내고, 발견하여, 일하고, 땀 흘리고,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 성경말씀을 통해 여러분에게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여러분이 한 달란트 받은 자의 인생처럼 끝난 인생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듣고 곧 바로 행하면 기회를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역전의 기회가 있다는 말입니다.

  교우 여러분,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비참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가 밥을 못 먹어서 비참한 인생이 아닙니다. 그가 잠잘 곳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을 잘못 알았고, 주인의 마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한심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기쁘게 즐겁게 해 보지 않고, 달란트를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하고, 문제가 생길까봐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여 두려움의 노예처럼 살아간다면 여러분 인생은 비참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것이 적기 때문에 비참한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해 보지 않기 때문에 비참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자세가 아니라,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삶의 자세로 살아간다면 여러분은 비참한 인생을 사는 것이라 그 말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 사는 동안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목숨이 있는 한,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있는 한, 기회는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가 있습니다.
  적은 것 가지고도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그것이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인 줄 믿고, 열심히 살고, 성실히 일하고, 진실되게 봉사하여 하나님께 칭찬받으며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쓰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09년 11월 29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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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
 자유케 하시는 주님
· 일시  2010년 04월 11일
· 말씀  요한복음 8장 31-36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첫 번째 부활절
· 일시  2010년 04월 04일
· 말씀  요한복음 20장 1-1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 사랑의 확증
· 일시  2010년 03월 28일
· 말씀  로마서 5장 6~11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 일시  2010년 03월 21일
· 말씀  마가복음 14장 32-4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 일시  2010년 03월 14일
· 말씀  로마서 3장 23~26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십자가의 도
· 일시  2010년 03월 07일
· 말씀  고린도전서 1장 18-2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그리스도인의 네 가지 삶의 방식
· 일시  2010년 02월 28일
· 말씀  요한복음 15장 5-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인생의 멘토가 있습니까?
· 일시  2010년 02월 21일
· 말씀  에베소서 4장 11-16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힘써 지켜야 할 것
· 일시  2010년 02월 14일
· 말씀  에베소서 4장 1-6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교회
· 일시  2010년 02월 07일
· 말씀  로마서 14장 17-2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함께 하나님을 기쁘시게
· 일시  2010년 01월 31일
· 말씀  로마서 14장 13-2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멈추십시오
· 일시  2010년 01월 24일
· 말씀  누가복음 10장 38-4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믿음이 없이는
· 일시  2010년 01월 17일
· 말씀  히브리서 11장 5-6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을 기쁘시게 II
· 일시  2010년 01월 10일
· 말씀  시편 51편 16~19절 말씀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을 기쁘시게
· 일시  2010년 01월 03일
· 말씀  요한복음 8장 29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마십시오
· 일시  2009년 12월 31일
· 말씀  잠언 4장 20~27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 일시  2009년 12월 27일
· 말씀  역대하 32장 24-3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성탄예배 설교말씀
· 일시  2009년 12월 25일
· 말씀  (본문을 기재해 주세요)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기다려 주시는 은혜
· 일시  2009년 12월 20일
· 말씀  이사야 30장 18~22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