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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 살아야 합니다  [3231]
· 설교 일자 : 2011년 05월 08일
· 본문 말씀 : 골로새서 3장 18-21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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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 살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8-21절)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이나 뉴스를 통해서 죽어가는 동물을 어렵게 어렵게 살려내어 자연으로 돌려보냈다는 소식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비록 동물이지만 한 생명이 소중하고 아직 그에게 생명이 남아있기 때문에 남아있는 생명을 살려내려는 노력이 감동적입니다. 짐승을 살리는 일에도 저렇게 최선을 다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가정도 생명이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가정이라는 공동체 자체가 생명체는 아닙니다. 그러나 가정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이 생명체인 인간이기 때문에 가정은 생명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공동체가 죽어가는 공동체일 수도 있고, 살아있는 공동체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가정이 죽어가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죽어가고 있다는 말은 가정이 약해져 가고 있다, 병들어 가고 있다, 붕괴되고 있다, 파괴되고 있다, 상실되었다는 뜻입니다.
  어떤 가정 사역자는 가정 파괴의 원인은 ‘이기적인 사랑’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어떤 학자는 사회적 구조가 가정을 파괴, 붕괴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여성주의자는 가정 파괴의 주범은 남편의 외도, 가족 소홀, 무능력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어떤 이는 이혼율이 높아지면서 그에 따른 결과로 가정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합니다. 어느 언론에서는 주부들의 인터넷 채팅은 특히 불륜(44.2%)으로 발전하거나 이혼 결심(22.6%), 가출(10.0%)의 원인이 되는 등 가정 파괴의 주범으로 분석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어떤 이는 돈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황금만능주의가 원인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이는 여성의 취업 증가가 가정 파괴의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여성이 가정에 있는 시간이 매우 적어지면서 가정의 기둥이 흔들리는 것이지요. 과도한 교육열로 인해 남편과 아내가 떨어져서 지내는 기간이 늘어나거나, 가족간 함께 하는 시간이 없어지면서 가정이 위기를 맞기도 합니다.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폭력 게임, 살인 게임, 도박 게인 등 게임 중독 때문에 가정이 자꾸만 깨져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교통사고와 같은 불의의 사고로 인해 부모를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울증 환자의 증가는 우울증 환자의 가정을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가정을 파괴하고 붕괴시키고 죽어가게 하고 있는 요인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아주 다양합니다.
  영적으로 보면, 사탄은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인 가정을 파괴함으로써 고통과 불행과 파멸을 가져다주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가정이 살아나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가정이 살아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 범죄가 줄어들게 하려면, 우리 사회가 보다 밝고 아름다워지려면 가정이 살아야 합니다. "가정은 민족의 행복과 불행의 원천이다."라고 마르틴 루터는 말했습니다. “성스럽고 화목한 가정이 없는 땅에서 위대한 인물이나 위대한 국가가 탄생될 수 없다.” 일본의 성서학자인 우찌무라 간조가 말했습니다. 건강한 가정이 많을 때 건강한 사회 건강한 나라가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가정이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가정이 살아나기 위해서, 가정이 회복되기 위해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가정의 중심이 살아나야 가정이 삽니다. 가정의 중심을 바로 잡아야 가정이 삽니다.
  가정을 이루며 사는 건물로써의 집의 구조를 생각해 봅시다. 집이 만들어지려면, 기둥이 있어야 합니다. 기둥을 우리 몸에 비유하면 척추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기둥을 중심으로 위로 지붕을 만들고 옆으로는 벽을 쌓고 안으로는 방을 만듭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고 나갈 수 있는 문을 만듭니다. 물론 창문도 있어야 하겠지요? 집에는 안방, 주방, 거실, 자녀들의 방이 있을 것입니다. 그밖에 다용도실 등과 같은 다른 공간도 있습니다.
  집의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은 기둥입니다. 기둥이 집이라는 건물의 골조이고 틀이고 집을 바치고 있는 중요한 집의 구조입니다. 집의 구조의 중심이 기둥이라면, 가정의 중심은 부부입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의 가정이 부부 중심이 아니라면 여러분의 가정은 기둥이 아닌 다른 것이 중심이 되어 집을 떠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중심이 잘못 되어 있는 집은 시간이 지날수록 집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중심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결국 무너질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의 첫 출발은 부부 사랑입니다. 부부사랑을 통해서 자녀가 태어납니다. 가정의 중심이 부부라는 사실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가정의 무게 중심이 부부에서 자녀로 옮겨갈 때 가정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자녀를 내 팽개치라는 뜻이 아닙니다. 가정의 중심이 잘 잡혀 있어야 가정 전체가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를 귀중하게 여기고 서로의 가치, 가정에서의 부부의 사랑, 부부의 바른 삶의 모습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항상 인식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함께 서로 귀히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방송인 왕 종근 씨가 아들하고 어느 방송사 아침 프로그램에 나와서 하는 말이, 왕종근씨가 그의 아내와 말다툼을 할 때, 아들보고 왜 자기 편을 안 들어주었느냐고 물으니까 그 아들이 대답하는 말, “나도 살아야지요.” 그러더군요. 가정의 중심이 흔들릴 때 자녀들도 같이 흔들립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부부싸움을 할 때 극심한 불안을 느낄 뿐만 아니라 나중에 자신의 남편상, 자신의 아내상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여러분, 지진이 일어나서 건물이 흔들릴 때처럼 가정에서 부부싸움과 갈등이 가정 전체의 삶에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극심한 불안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막상 부부싸움, 부부갈등이 생겼을지라도 빨리 화해하고 풀어야 합니다. 어느 젊은 집사 부부가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 부인이 화가 나서 밥도 안 짓고 건넌방으로 가서 문을 잠가 버렸습니다. 저녁도 못 얻어먹고 따분해진 남편이 문에 가서 사정사정을 했습니다. “여보, 문 좀 열어 보시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때 남편이 자기 아내가 제자훈련을 받으며 성경 구절을 암송하던 것에 착안하여 문 앞에 대고 다음과 같이 성경 구절을 낭독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 그러자 잠시 후에 그 성경 말씀에 대한 화답이 방안에서 흘러나왔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장 5절 말씀! 결국 이 부부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고 나와서 밥을 지어 먹고 또다시 화목을 회복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문제의 해답입니다. 서로 감정적으로 불편해질 때,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서로 화해하고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가정의 중심이 부부인 것을 명심하고 중심이 흔들리거나 무너지면 가정이 위태로워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서로 배우자를 존중해 주는 것이야말로 서로의 관계를 키워 가고 가정의 평안과 안정감을 세워가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가정의 중심을 잘 잡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가정의 질서가 살아나야 가정이 삽니다.
가정에는 세 가지 체계가 있습니다. 부부, 부모, 자녀입니다. 가정의 중심에는 부부가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행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는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는 사랑으로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정의 체계를 유지하는 질서입니다. 이 질서에는 항상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각각 부부의 사랑, 부모 공경, 부모의 자녀 양육에 관한 말씀이지만 이 말씀들이 곧 가정의 질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더 메시지]에 오늘 본문 말씀을 이렇게 사역했습니다.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남편을 이해하고 지지해 주십시오. 그것이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남편 여러분, 전심으로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아내를 속이지 마십시오. 자녀 여러분, 부모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을 따르십시오. 그것은 주님을 한없이 기쁘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부모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너무 호되게 꾸짖지 마십시오. 그들의 기를 꺾지 않도록 하십시오.” 가정을 가정되게 하는 것에는 부부 사랑이 먼저가 되어, 부부 중심의 가정이 되고, 그 부부의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해고 순종해야 하고, 부모는 자녀들을 주안에서 양육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어느 신혼부부의 집 이야기입니다. 오랜만에 부부가 함께 영화구경을 가려고 콜택시를 불렀습니다. 나가기 전에 집에서 기르고 있던 강아지를 묶어두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택시가 왔는데도 강아지가 자꾸만 달아나는 바람에 도무지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먼저 택시를 타라고 하고 강아지를 잡아서 묶어놓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내는 계속 대기를 하고 있는 택시 기사에게 미안해서 이렇게 둘러댔습니다. “남편이 곧 나올 거예요. 어머니에게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러 들어갔는데 조금 늦네요.” 잠시 후, 남편이 나와 택시에 타면서 손을 털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구, 그 미련하게 나이만 먹는 것이 2층 침대 밑에 숨어서 나오지 않지 뭐야. 그래서 옷걸이로 찔러서 겨우 끌어내어 묶어 놓고 왔네.” 택시 기사가 들으며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실제로 그 집은 어머니를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강아지를 옷걸이로 찔러서 잡아 묶어 두었느니 다행이지요. 그런데 오늘날 부모에게 그 이상의 말과 행동으로 불효를 하는 가정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가정도 그런 가정이 있다고 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신명기 21장 18절 이하에 보면, 부모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반항만 하며, 고집이 세어서 아무리 타일러도 듣지 않는 아들이 있거든, 그 부모는 그 아들을 붙잡아 그 성읍의 장로들이 있는 성문 위의 회관으로 데리고 가서 “우리 아들이 반항만 하고, 고집이 세어서 우리의 말을 전혀 듣지 않습니다. 방탕한데다가 술만 마십니다.‘하고 호소하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이 그를 돌로 쳐서 죽여라, 그렇게 하여서 너희 가운데서 악을 뿌리 뽑아야 한다. 그래야만 온 이스라엘이 그 일을 듣고 두려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효는 악입니다. 가정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악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부모라고 해서 자녀들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21절 말씀을 잘 보십시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은 부모라고 해서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많은 경우 가정 안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성장해서도 자신이 왜 그러는지 알지 못한 채 ,그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여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또 결혼하여 자기 자녀에게 상처를 대물림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자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라도 상처를 치유해 주고 풀어야 합니다. 또한 치우친 사랑 편애, 병적인 집착의 사랑, 병적인 희생의 사랑도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잘못된 사랑은 건강하고 성숙한 자녀를 양육하지 못합니다. 가정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가정의 모든 질서는 주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할 때 질서가 바로 섭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부터 6장 4절까지 골로새서와 같이 아내와 남편에게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고 존경하고, 남편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자기 자신을 주심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자녀들에게는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하고,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씀합니다. 가정의 질서를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 요즘 가정파괴범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그런데 가정 파괴범이 외부에서 침입한 범인만이 아니라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자녀로서 하여야 할 도리를 하지 못할 경우에는 그것 역시 가정 파괴범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부부사랑, 부모 공경, 자녀 양육의 질서를 바로 잡아 가정이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셋째, 가정안의 대화가 살아나야 가정이 살아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왜 입을 만들어주셨을까요? 밥 먹을 때만 사용하라고 입을 주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담이 혼자 외롭게 있는 것이 좋지 않아 보이셔서 아담을 잠들게 한 후, 갈비대 하나를 빼내어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아담이 잠에서 깨어나 보니 자기 눈앞에 웬 다른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와 다른 아름다운 여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그 여자 하와를 보고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입을 열어 감탄의 고백을 했습니다. 서로 대화하며 살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입과 혀를 주셨습니다.
   대화는 가정생활에 있어서 혈관과도 같습니다. 혈관이 막히면 동맥경화증이 유발되고 각종 성인병에 걸립니다.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화가 막히면 대화경화증에 걸리고 가정에 각종 질환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가정은 서서히 건강한 가정에서 병든 가정으로 바뀌어져 가고, 가정의 기능이 마비되기 시작합니다. 김성묵 씨가 쓴 [남자가 원하는 여자, 그 여자가 원하는 남자]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몸의 건강이 혈관이 건강하냐 건강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듯이, 가정의 건강도 가정 안에 대화가 잘 되고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대화경화증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우리는 대화에 있어서 남녀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용납해야 합니다. 이해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이 사실과 정보를 나누는 대화를 원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맞장구쳐주는 지혜가 필요하고, 남편은 아내가 느낌과 감정, 생각을 나누길 원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 대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내들이 ‘우리 남편은 저와 대화가 없어요.’라고 호소하는 것은 말이 없다는 것보다는 느낌과 생각과 감정으로 나누는 대화를 하지 않고, 늘 사실과 정보를 주고받는 대화만 한다,‘는 불평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이라도 질 높은 대화, 감정과 느낌이 실려 있는 풍부한 대화를 하는 길, 그것이 대화경화증을 예방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에 사는 50% 이상의 부부가 간단한 대화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부부들은 어떠할 것 같습니까? 여러분이 입을 열지 않으면 여러분의 배우자는 당신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입을 꼭 다물면서 “내 마음 알지?” “내가 당신 사랑하는 거 알지?” 그러면 알긴 뭘 알 수 있습니까? 말을 해야 알지요. 표현을 해야 알지요. 경상도 사나이가 뭘 그렇게 남살스럽게 자질구레하게 말하고 그러느냐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입을 꼭 다물고 사는 것이 남자다운 것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대화경화증으로 가정이 시들어가고, 메말라가고 죽어가는 데도 “경상도남자가...”라고 주장하겠습니까? 그렇게 말 안 하고 살려면 혼자 살든지, 왜 결혼했습니까? 말이 없는 남편은 가장 사나운 아내를 만든다고 영국의 정치가이자 소설가 디즈레일리는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사나운 말은 더 사나운 남편을 만든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부드럽게 말하십시오. 여성의 가장 강한 무기인 사랑을 담아 부드럽게 말할 때 그 앞에서 남자들이 녹아 내리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지요. 여자도 남자 하기 나름이라는 말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사람은 병이 날 수 있습니다. 아내가 시름시름 아픈 것이 남편이 자기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반대로 아내가 남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남편의 어깨가 축 처지고 스트레스로 인해 속병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설마하니, 오늘 설교를 듣고 집에 가서 ‘내 병이 당신 때문이야’ 라고 싸우는 일을 없기를 바랍니다. 대화하십시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정의 파괴는 죽음이나 화재보다 말다툼으로 인해서 자주 발생한다."고 토마스 무어가 말했습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 말다툼이 아닌 대화가 살아나서 가정이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변해야 합니다. 신앙은 변화하는 것입니다. 변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대화하는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변화하기 위해서 성령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여 나를 변화시키실 수 있도록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대화가 사라졌다면 여러분의 가정에는 자녀의 방은 있지만 서로 드나들 수 있는 방문이 없는 경우입니다. 상상을 해 보십시오. 집에 방은 여러 개인데 거실 쪽으로 난 방문이 하나도 없어서 서로 얼굴조차 볼 수 없다면, 뭐 그런 집이 있느냐고 하겠지요. 대화 없는 가정도 뭐 그런 가정이 있냐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 부모들 중에는 그저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학원 보내고, 사달라는 것 사주고, 공부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주면 자녀 교육이 다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공부가 인생의 전부인 줄 아는 것이죠. 부모와 자녀사이에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대화가 없는 부모자녀 사이는 역시 대화경화증으로 막혀있습니다. 가정안에서 부모와 자녀가 오순도순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면 가정을 대화경화증으로 중병을 앓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두레교회 김진홍 목사님의 일화입니다. 한번은 김 목사님이 사역하는 두레 마을에 한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미국에서 이민목회를 하는 한 목사님의 아들인데, 그의 아버지는 목회가 바빠서 아들과 함께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들이 아버지의 사랑에 목말라하다가 그만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결국 마약에 중독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 그 아들이 두레마을을 찾아온 것입니다. 김진홍 목사님은 그 청년과 한참 대화를 나눈 뒤에 깨달은 바가 있어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숙제를 하고 있는 아들을 불렀습니다. “아들아, 이리 좀 와 봐라.” 아들이 물었습니다. “왜요?” “우리, 대화 좀 하자.” “저 지금 숙제해야 하는데요.” “지금 숙제가 중요한 게 아니야. 저 미스터 마약 있잖냐? 자기 아버지와 대화를 안 해서 저렇게 되었단다. 그러니 우리 대화하자.” 그 말을 들은 아들이 “그럼 대화하세요.” 하고 쳐다보는데 막상 대화를 하려고 하니까 할 말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답니다. “니, 밥 묵었나?” “예” 그런데 그 다음은 할 말이 없더랍니다. 여러분, 그래도 좋습니다. 무슨 말이든 대화를 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인생 상담자가 되어주기도 하고, 친구처럼 대화도 해야 하는 데,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하는 말의 상당부분은 공부, 성적, 대학, 학원입니다. 그러니 집에 와도 가정에 온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학교에 온 것 같고, 또 다른 학원에 온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카이스트의 학생들의 자살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머리 좋고 공부 잘하고 똑똑한 학생들이 자신의 삶의 문제를 만나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이 공부만 하느라 강하게 크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추측을 해 봅니다. 고인이 된 사람들을 함부로 말하고 싶은 뜻은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공부만 시키느라 너무도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인생을 폭 넓고 깊게 경험하면서 성장하도록 양육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뜻입니다.
  가정의 어려움을 모두 다 자녀들에게 경험하게 할 필요는 없지만, 함께 힘을 합치고, 마음을 합치고, 고난을 함께 이겨내는 경험이 없이 세상의 바다로 나가니까 대책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수 비를 아시지요. 본명 정 지훈,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떨어져 살다가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동생과 자기만 남겨졌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병석 이불 밑에 약을 사먹지 않고 아들들을 위해 모아 둔 얼마 안 되는 예금 통장만 남겨졌습니다. 그런 그가 고난과 역경을 견디고 이겨내며 세계 속에 우뚝 섰습니다. 소위 월드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는 세계 영향력이 큰 100인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죽어간 어머니의 사랑이, 아들에게 한 말이 그를 강하게 그리고 건강한 청년으로 성장케 했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대화를 통해 삶을 함께 나누고, 가족 사랑을 나누고, 자녀들의 과거의 어린 시절에 있었던 추억과 소중한 기억들을 되새겨 주고, 부모의 어린 시절, 과거의 삶을 이야기 해주고, 자녀가 크면서 인생에 대한 깊은 대화도 나누는 것은 가정을 살리는 중요한 노력입니다.
특별히 신앙의 대화는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교우 여러분, 자녀가 교회는 왔다갔다 하는데 이 아이가 구원의 확신이 있는지,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을 정말로 믿는지, 기도는 하는지, 복음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믿는지도 확인하지 않는 부모가 있다면 그것은 부모의 직무유기입니다. 경건한 가정을 예배 드리는 가정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가정 안에서의 대화가 신앙적인 대화가 많을 때 경건한 가정이 됩니다.  
  교우 여러분, 자녀들이 가정에서 행복을 경험하면서 성장하지 않으면 가정 밖에서 행복을 얻기 위해 행복이 아닌 다른 것을 행복인 줄 알고 찾습니다. 가정에서 행복을 경험하지 않고 밖에서 행복을 경험하게 되면 그 행복이 온전한 행복으로 자기 것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문제가 있고, 가정이 병들어 가고 있고, 죽어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이 치유되고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을 돕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를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신앙으로 회복되고 살아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을 보시고 기뻐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1년 05월 08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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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롱 면허증
· 일시  2011년 07월 17일
· 말씀  야고보서 1장 2~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친구 예수님
· 일시  2011년 07월 10일
· 말씀  누가복음 7장 31~3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에클레시아
· 일시  2011년 07월 03일
· 말씀  마태복음 16장 13-2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주 없이 살 수 없네
· 일시  2011년 06월 26일
· 말씀  마가복음 5장 25~34절
· 설교  김대민 목사
   
주일예배 설교
 삼위일체의 신비
· 일시  2011년 06월 19일
· 말씀  요한복음 16장 12절~1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보혜사 성령
· 일시  2011년 06월 12일
· 말씀  요한복음 14장 25-27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순례자가 받은 세 가지 선물
· 일시  2011년 06월 05일
· 말씀  요한복음 3장 16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일어나 걸어가라
· 일시  2011년 05월 29일
· 말씀  요한복음 5장 1~9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언약적 공동체
· 일시  2011년 05월 22일
· 말씀  마태복음 19장 3~12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묶는 말 푸는 말
· 일시  2011년 05월 15일
· 말씀  베드로전서 3장 8-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가정이 살아야 합니다
· 일시  2011년 05월 08일
· 말씀  골로새서 3장 18-21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무엇을 물려주시겠습니까?
· 일시  2011년 05월 01일
· 말씀  사무엘상 2장 27-3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그 다음은 누구입니까?
· 일시  2011년 04월 24일
· 말씀  고린도전서 15장 20-2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바로 나 때문입니다
· 일시  2011년 04월 22일
· 말씀  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험한 십자가
· 일시  2011년 04월 17일
· 말씀  에베소서 2장 12-1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약입니까? 의사입니까?
· 일시  2011년 04월 10일
· 말씀  마태복음 9장 9-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생명의 성령의 법
· 일시  2011년 04월 03일
· 말씀  로마서 8장 1-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고난 받는 사람
· 일시  2011년 03월 27일
· 말씀  베드로전서 4장 12-19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고통의 쓰나미
· 일시  2011년 03월 20일
· 말씀  디모데후서 3장 1-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경건
· 일시  2011년 03월 13일
· 말씀  이사야 58장 6-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묵은 땅을 갈아엎으십시오
· 일시  2011년 03월 06일
· 말씀  호세아 10장 12-1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이 때를 위함이 아니냐?
· 일시  2011년 02월 27일
· 말씀  에스더 4장 12-17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세 가지 적
· 일시  2011년 02월 20일
· 말씀  마태복음 16장 21-28절
· 설교  신문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