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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를 위함이 아니냐?  [2883]
· 설교 일자 : 2011년 02월 27일
· 본문 말씀 : 에스더 4장 12-17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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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를 위함이 아니냐? (에스더 4장 12-17절)
  이집트에서 시작한 반정부 시위가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중국과 북한도 긴장 상태입니다. 리비아는 참혹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세계가 이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습니다. 세계 독재자들이 요즘처럼 초긴장하는 때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의 31년 정권이 무너지게 된 것은 빵의 문제였습니다. 이집트는 인구 8000만 명의 세계 최대 빵 소비국입니다. 바케트의 나라 프랑스인들이 하루 평균 130g을 먹는데, 이집트인들은 무려 400g을 먹습니다. 그들은 납작하고 둥글며 속이 빈 빵을 뜯어서 치즈를 발라 먹으면 아침이고, 샌드위치처럼 채소를 끼워 먹으면 점심이고, 양고기를 곁들이면 저녁이 됩니다. 이 빵을 아이쉬라고 하는 데 아랍어로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이집트 국민들의 40%가 넘는 빈곤층은 민영빵집보다 훨씬 싼 국영빵집에서 빵을 사기 위해서 아침마다 줄을 섭니다. 그런데 이집트 정부가 밀수입가격이 상승하여 재정압박을 받자 “고품질 빵을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국영 빵집의 아이쉬 가격을 올리려다 반발에 부딪치게 되고, 빵의 문제로 시작된 물가 폭등으로 “빵, 자유, 인권”을 외치는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것입니다. 이집트의 빵의 문제에 영향을 준 것은, 2010년 러시아가 기상이변으로 밀 수확이 급격이 감소하자 수출 금지 조치를 감행한 일입니다. 그 결과 국제 밀 시세는 50%이상 급등했습니다. 이집트는 연간 밀 수요 1300만 톤 중 러시아로부터 700만 톤을 사다 먹는 최대 밀 수입국인데 빵 값이 치명적인 영향을 받게 된 것입니다.
  국제 밀 시세의 급등 이유에는 러시아의 기상이변으로 인한 밀 수확량 급감만이 이유가 아닙니다. 세계 최대 밀 생산국인 미국의 바이오 연료정책입니다. 옥수수를 발효시켜 만드는 친환경 에탄올로 자동차 휴발유를 20% 대체하겠다는 정책에 의해서 미국 농민들에게 밀 대신 옥수수를 재배하라고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펼치는 바람에 식량으로 쓸 밀과 옥수수가 한꺼번에 줄어들었습니다. 또한 중국과 인도의 식생활 변화도 식량문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두 나라 중산층의 육류소비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축산은 곡물을 사료로 만들어 먹이지 않습니까? 단백질 100g을 사료로 주면 소는 그것을 먹고 5g만 체내에 축적을 합니다. 그러니까 쇠고기로 한 끼 배를 채우면 사람 20명이 먹을 곡물을 소가 먹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과 인도 20억 인구가 육식 식단으로 바뀌게 되면 세계 곡물을 쇠고기를 얻기 위해 소에게 먹이게 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 결과 밀 소비국인 가난한 나라는 치명적인 불행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밀 소비가 쌀의 절반 수준까지 높아졌습니다. 우리나라는 곡물 자급률이 26%에 불과합니다. 10-20년 후 식량 전쟁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정신을 차리고 준비해야 합니다. 밀 소비를 줄이고, 전통식단으로 돌아가는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고려대 식품공학부 이철호 교수는 쌀, 콩, 채소의 식생활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육류 소비를 줄이고, 절제하는 것이 곧 건강뿐만 아니라 세계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입니다.
  빵의 문제에서부터 시작된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가 중동, 북아프리카를 뒤흔드는 민주화 운동으로 번지게 되었고, 그 결과 국제 석유가가 급등하는 등 많은 세계적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나비효과라고 말합니다.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츠가 사용한 용어로,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난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에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나비의 날개 짓처럼 작은 변화가 폭풍우와 같은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는 현상을 말합니다.

  우리는 작은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 작은 사건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 열왕기서에 보면, 작은 말한마디로 인생에 큰 변화가 일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나아만이라는 장군입니다. 그는 아람 나라에서 실세였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드러낼 수 없는 아픔과 불행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나병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나병은 고칠 방도가 없었습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이스라엘에서 잡혀 온 그 집의 작은 하인 소녀가 자기 여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에게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분이 나병을 고쳐주실 것입니다.” 이 한 마디 말 때문에 나아만의 인생에 빛이 비춰졌습니다. 이 작은 하인 소녀가 어느 지방 출신인지, 어느 가문의 딸인지에 대해 전혀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하인 소녀에 대한 성경의 언급은 한 줄의 대사뿐이었습니다. 바로 이 작은 하인 소녀의 한 마디 말 때문에 나아만의 몸이 깨끗해 질뿐만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일들은 작은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 작은 사건 하나로부터 시작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작은 일을 행하는 한 사람으로부터 변화가 생깁니다. 놀라운 결과가 나타납니다.

  3.1절 기미독립운동기념일이 다가옵니다. 작년과 금년에 더더욱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게 하는 사건들이 많습니다. 3.1절하면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 유관순 누나를 떠올리게 됩니다. 노래 가사도 있지요.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며 /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다 /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유관순 노래” 유관순 누나라고 불러야 맞는지, 아니면 유관순 할머니라고 불러야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경 속에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위대한 결단을 했던 여성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스더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유대인 에스더는 부모를 여의고 그곳에서 나이 많은 사촌 모르드개의 돌봄을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한편, 바사 즉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왕후 와스디를 폐위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수소문하여 아름다운 처녀들을 궁에 불러 모으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왕은 모인 처녀들 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에스더를 선택하여 새 왕후로 삼았습니다. 바사의 관습에 따르면, 에스더 왕후는 왕과 함께 있는 시간을 거의 누릴 수 없었고 권한은 더욱 제한되었습니다. 게다가 바사의 법은 왕후를 포함해 어느 누구도 먼저 왕에게 말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지 않고 왕 앞에 나아가는 것을 절대 금했습니다.
  한편 대궐에서 서열이 두 번째로 높은 하만이 거리를 지날 때, 에스더의 사촌인 나이 많은 유대인 모르드개가 고개 숙여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만은 그에게 분을 품으면서 이야기는 복잡하게 얽혀 들어갔습니다. 하만은 온 유대인들이 나라에 위협이 되고 있으니 그들을 쓸어버릴 조서에 서명하라고 아하수에로 왕을 설득했습니다. 이 조령이 시행되면 바벨론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유대인들을 공격하고 죽일 수 있으나 유대인들은 자기 방어를 할 수 없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사안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조서에 서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 조서로 인해 자기 동족이 위기에 처해진 사실을 알게 된 왕후 에스더가 자기 동족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릎 쓰고 두 차례의 연회를 열어 왕과 하만을 초청한 후, 왕에게 자신이 유대인 출신임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하만의 법이 전국에 시행될 경우 자신의 목숨마저 위험해 질 것이라며 하만의 사악함을 폭로했습니다. 그러자 격분한 왕은 하만을 나무에 매달아 처형했습니다.
이 일이 이렇게 상황이 바뀌게 된 데에는, 에스더의 결단이 있었습니다. 15절 이하의 말씀 내용처럼,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3일 금식 기도를 부탁하며, 자신도 시녀와 함께 금식한 후에, 왕의 허락을 받지 않고 왕께 나아가기로 결단하였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하는 마음가짐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선택과 결단이 바벨론에 사는 유다 민족 전체를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절실히 경험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1985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 학우회장 선거에서 이름을 대면 잘 알 수 있는 분이 1차 투표에서 한사람의 표가 모자라 당선이 안 되어 1주일 후 재투표에서 뒤집혀서 다른 학생이 학우회장이 되었습니다. 1776년, 한 표 차이로 미국의 언어가 독일어가 아니라 영어가 되었습니다. 1845년, 한 표 차이로 텍사스주가 미연방에 가입되었습니다. 1868년, 미국의 앤드류 존슨 대통령은 의회의 탄핵을 받았는데 한 표 차이로 쫓겨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1875년, 프랑스가 왕정에서 공화정치로 한 표 차이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923년, 히틀러가 독일의 나치당을 한 표 차이로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한 사람의 한 표 때문에 당락이 결정이 되며, 역사가 바뀌고 있습니다. 나무 가지 위에 쌓인 눈 위에 눈송이 하나가 얹어지자 나무 가지가 찢어집니다. 눈송이 한 개의 무게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의 힘이란 이렇게도 위대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힘이란 이렇게도 위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목사님 두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두 분 목사님 모두가 피곤한 목회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앞에 커다란 각광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었습니다. 한 목사님이 다른 한 분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지난 3년 동안 사역을 했지만 사실 진정한 의미에서 거듭난 성도는 청년 한 사람밖에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나는 최근에 우리 교회에서 한 주간 동안 부흥회를 가졌는데, 커다란 기대를 걸고 이 집회를 인도했지만 한 사람밖에는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두 분은 목회 생활의 쓰라린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수 년 후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한 목사님을 통해서 3년 만에 얻었던 한 명의 결신자 로버트 마펫은 아프리카 선교의 기초적인 틀을 마련하는 선교사가 되었고, 또 다른 목사님이 일주일간의 부흥 집회를 통해서 얻었던 유일한 결신자인 리빙스턴은 아프리카 대륙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불을 지른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가치는 얼마나 소중합니까? 이 하나를 통해서 엄청나 사역이 시작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와 성령이 우리에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결코 하나의 가치, 그리고 작은 것을 작다고 간주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깁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처음부터 한 사람 에스더가 민족을 구할 자세를 가졌던 것이 아닙니다. 왕후가 될 때부터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왕후가 된 것이 아닙니다. 에스더는 하만이 꾸며 왕이 허락한 조서 자체의 내용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스더가 그렇게 결단하게 된 데에는 그녀에게 영향을 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모르드개입니다. 그의 사촌 오빠입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의 계략과 조서 내용을 알고서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걸치고 재를 뒤집어쓴 채로 성 안으로 들어가서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이런 행동은 왕후 에스더에게 이런 소식이 전해지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에스더의 시녀들이 모르드개가 당한 일을 전했습니다. 에스더는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옷을 보내며 평상복으로 갈아입기를 권했습니다. 모르드개는 거절했습니다. 에스더는 자기 궁의 내시 하닥을 불러서 무엇 때문에 모르드개가 괴로워하는지, 왜 그러는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보낸 내시 하닥에게 모두 이야기했습니다. 하만이 유다 사람을 모조리 없애려고 한다는 것, 하만의 악한 계략까지 정확하게 알려주었습니다. 내시 하닥에게 왕후 에스더에게 모든 것을 잘 설명하여 드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에스더가 직접 왕 앞에 나아가 왕께 자비를 구하고 자기 민족을 살려 달라고 탄원하도록 내시 하닥을 시켜 부탁했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궁궐 안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으므로 알려주어야 했습니다. 모르드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문제와 상황을 직시하고 자기가 알릴 수 있는 것을 알리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행하고, 자기가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을 감당했기 때문에 에스더라는 또 한 사람을 통해 유다민족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르드개와 에스더 왕후 사이에서 내시 하닥의 역할 또한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 사이에 정확한 정보를 건네주는 다리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일을 계획했을 지라도 무산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르드개는 왕후인 에스더가 유대인들을 위해 왕에게 중재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임을 알고 있었지만, 촌수로는 사촌간일지라도 왕후를 일개 하급관리인 자신이 직접 면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문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모르드개와 에스더 사이에 하닥이라는 내시가 오가면서 두 사람의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내용이 하나도 빠짐없이, 뜻이 정확하게 전달되었습니다. 세 번이나 모르드개와 에스더 사이를 오가면서 말을 전하는 심부름을 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이게 뭔 짓이야...’하면서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닥이 나쁜 마음을 먹고 하만에게 일러바치면 자신은 부와 권세를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 자기 생각을 가지고 두 사람의 말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고 내용을 축소하고 빼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닥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섬기는 왕후에게 충성을 다했습니다. 신실하게 전했습니다. 신실한 한 사람에 의해 말이 정확하게 전달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말을 잘못 전함으로 공동체가 들쑤셔 놓은 것처럼 분열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마음속의 생각을 잘못 말해 가정이 깨어지고 불행해 질 수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는 남의 말을 이상하게 만들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을 이상하게 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장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짓말을 능청스럽게 하여 남을 곤욕스럽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과 다르게 부풀려 말을 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못된 정치인을 닮아 자기에게 유리하게 말을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신앙인 신실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말에는 신실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의 신실함이 중요합니다.

  에스더가 유다 민족을 구하는 일에 자기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에는, 모르드개가 자기가 해야 할 역할을 분명히 알고 행한 것과 하닥이라는 내시가 자기가 해야 할 역할을 신실하게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에스더의 위대한 선택과 결단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에스더의 결단을 촉구하는 말을 모르드개가 했습니다. 그 내용이 오늘 본문 말씀 13,14절 말씀입니다.
“왕후인 너는 궁궐에 있다고 하여, 모든 유다 사람이 겪는 재난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런 때에 왕후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유다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라도 도움을 얻어서 마침내는 구원을 받고 살아날 것이지만, 왕후와 왕후의 집안은 멸망할 것이다. 에스더 네가 이처럼 왕후의 자리에 오른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니겠느냐?” 이 말은 “왜 그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인지 생각해 보라!”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아라!” “하나님께서 자리와 역할을 주실 때에는 그에 대한 책임을 다 하라는 것을 깨닫고 행하라!”라는 뜻의 말입니다. 화살처럼 가슴에 꽂히는 이 말을 듣고 에스더는 결단했습니다. 그 결과 동족을 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질문이 매 순간 화살처럼 날아옵니다. 당신이 가정에서 아버지로 있는 것, 당신이 가정에서 어머니로 있는 것, 당신이 직장에서 그 자리, 그 책임을 맡은 것, 당신이 교회에서 직분을 받은 것, 봉사의 일에 임명받은 것, 당신이 사회에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바로 이때를 위함이 아니냐고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에 의해서 이 세상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역할을 발견하고, 사명을 깨닫고, 인생의 목적을 바로 알고 살아가는 한 사람과 함께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위대한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날 예수 믿게 하셔서 구원하여 주셨는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그 뜻을 행하고,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기의 때를 알고, 그때에 자기의 역할을 알고, 그 역할을 위해 결단하여 행동할 줄 아는 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일하시며 그에게 상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자리, 직분, 사명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수많은 경험들이 그냥 쓸데없는 경험이 아니라, 반드시 “이 때를 위해서 내가 그 경험을 했구나!”하는 순간을 깨달을 수 있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환난을 당한 것이 환난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환난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을 위해 자신의 환난과 하나님의 위로의 경험이 “이 때를 위함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 위로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린도후서 1장에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도 그 경험으로 다른 성도들을 위로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또한 우리가 겪는 상처도 상처로만 남지 않고, “이때를 위해 내가 상처를 경험했었구나!”하는 깨달음의 은혜가 될 때가 있습니다. 김우현 감독이 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책에, “때로는 상처와 그 생채기가 개런티로 된다.”는 글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상처와 생채기가 아무런 목적 없이 주어지는 고통이 아닙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요셉이 그랬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미움과 시기 때문에 어린 시절 애굽으로 팔려가 갖은 고통과 억울함과 고난을 이겨내고 마침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자기 가족과 민족을 기근에서 구해냈습니다. 이때를 위해, 즉 자기 가족과 동족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형제를 통해 애굽에 팔려오게 하셨고,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누명 씌움을 당하게 되었고, 감옥에 갇혀 왕의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자리까지 인도함을 받았다고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상처와 고통이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징검다리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삶에 어두운 경험과 상처, 고통스럽게 여겨지는 과거가 내 삶의 양지로 나와 퍼즐조각처럼 한 조각을 담당하여 아름답게, 선하게, 의롭게, 따뜻하게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다면 그것은 상처와 생채기와 어두운 과거가 아니라 참으로 값진 보석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처와 어두운 경험과 과거를 빛나는 보석처럼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은 자기가 받은 상처와 고통을 되갚아 주려고 몸부림치다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상관없는 사람에게도 상처와 고통을 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받은 상처와 고통을 용서하고 치유 받아 성숙해진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받은 상처와 고통을 경험한 것을 통해 ‘이 때를 위해 내가 상처받고 고통을 겪은 것이구나!’하고 다른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 받도록 돕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처럼 상처와 고통을 받는 사람이 없게 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어떤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여러분, 바사의 왕 아하수에로 앞에는 허락을 받고 나아야 합니다. 허락받지 않고 나아갔다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 앞에는 허락받지 않고 아무 때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만유의 대주재이신 하나님 아버지께는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예약 없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든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 우리의 소원을 아뢸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짐을 맡길 수 있습니다. 환난 중에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4장 16절입니다.

  교우 여러분, 기도하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한 사람이 필요한 때입니다.
  한 사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의 충성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우리 교회에, 이 사회와 국가에 모르드개와 같은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닥과 같이 신실한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에스더와 같은 한 사람의 결단과 행동이 절실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 스스로를 보잘것없고 무능력하다고 생각함으로써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하지 않고 삽니다. 시작도 하지 않고 포기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작은 말, 작은 행동, 작은 사건이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신실한 말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원하시는 뜻을 깨달아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여 행하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한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 때를 위하여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011년 0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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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주 없이 살 수 없네
· 일시  2011년 06월 26일
· 말씀  마가복음 5장 25~34절
· 설교  김대민 목사
   
주일예배 설교
 삼위일체의 신비
· 일시  2011년 06월 19일
· 말씀  요한복음 16장 12절~1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보혜사 성령
· 일시  2011년 06월 12일
· 말씀  요한복음 14장 25-27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순례자가 받은 세 가지 선물
· 일시  2011년 06월 05일
· 말씀  요한복음 3장 16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일어나 걸어가라
· 일시  2011년 05월 29일
· 말씀  요한복음 5장 1~9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언약적 공동체
· 일시  2011년 05월 22일
· 말씀  마태복음 19장 3~12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묶는 말 푸는 말
· 일시  2011년 05월 15일
· 말씀  베드로전서 3장 8-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가정이 살아야 합니다
· 일시  2011년 05월 08일
· 말씀  골로새서 3장 18-21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무엇을 물려주시겠습니까?
· 일시  2011년 05월 01일
· 말씀  사무엘상 2장 27-3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그 다음은 누구입니까?
· 일시  2011년 04월 24일
· 말씀  고린도전서 15장 20-2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바로 나 때문입니다
· 일시  2011년 04월 22일
· 말씀  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험한 십자가
· 일시  2011년 04월 17일
· 말씀  에베소서 2장 12-1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약입니까? 의사입니까?
· 일시  2011년 04월 10일
· 말씀  마태복음 9장 9-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생명의 성령의 법
· 일시  2011년 04월 03일
· 말씀  로마서 8장 1-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고난 받는 사람
· 일시  2011년 03월 27일
· 말씀  베드로전서 4장 12-19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고통의 쓰나미
· 일시  2011년 03월 20일
· 말씀  디모데후서 3장 1-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경건
· 일시  2011년 03월 13일
· 말씀  이사야 58장 6-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묵은 땅을 갈아엎으십시오
· 일시  2011년 03월 06일
· 말씀  호세아 10장 12-1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이 때를 위함이 아니냐?
· 일시  2011년 02월 27일
· 말씀  에스더 4장 12-17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세 가지 적
· 일시  2011년 02월 20일
· 말씀  마태복음 16장 21-28절
· 설교  신문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