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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적  [2682]
· 설교 일자 : 2011년 02월 20일
· 본문 말씀 : 마태복음 16장 21-28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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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적 (마태복음 16장 21-28절)
  1905년 11월 17일, 덕수궁 앞과 회의장 안은 완전무장한 일본군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으며, 기병 800명, 포병 5000명, 보병 2만 명이 서울 시내 전역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어전 내각회의 개최를 강요하여 을사오조약 가결을 재촉하였습니다. 학부대신 이완용이 나지막이 입을 열어 자기인들 이 조약을 좋아하겠느냐며 "내각 전원이 이 조약 조인에 부표를 던지면 이토는 직접 폐하에게 조인을 요구할 것이요 폐하는 거부할 것이 자명한데 그렇게 되면 일본은 어떤 수단을 써서든지 압박하고 나올 것이며 그때는 조약 조문의 일언반구도 고치지 못하고 말 것이고, 그래서 일본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으며 다만 외교에 국한해서 한국이 실력이 생길 때까지 위임한다는 조건부로 하는 것이 실리를 취하는 길일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은 "거기에 한국 황실의 안녕을 보장하는 한 구절을 첨가하는 조건으로 학부대신 이완용의 의견에 동조한다"했고 군부대신 이근택과 내부대신 이지용이 찬성했고, 처음에는 반대했던 박제순마저 찬동했습니다. 이렇게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을 을사오적으로 일컫기에 이른 것입니다. 을사늑약으로 나라를 팔아먹은 다섯 명의 나라의 적이라는 말입니다. 이들 중 흥선대원군의 종손으로 오적 중 하나인 이지용은 재색이 뛰어나기로 팔도에 소문난 진주 기생 산홍을 천금을 주고 애첩으로 들였는데, 낭군이 나라 팔아먹은 오적이라는 사실을 알자 "나 비록 천인이지만 역적 첩 노릇은 하기 싫다" 하고 가출해 버렸습니다. 을사오적 중 가장 흉악한 것이 이근택인데, 매국 오조약에 조인하고 돌아온 이근택이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문 밖에서 그 집 여종이 엿들었습니다. 이근택의 며느리가 시집오면서 데려온 몸종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여종은 부엌칼을 들고 들어와 이근택을 겨냥하며 “한 나라 대신이란 자가 망국에 즈음하여 죽지는 못할망정 나라 판 일을 자랑스럽게 말하느냐. 나 비록 천인이긴 하지만 개나 승냥이만도 못한 자 밑에 밥 얻어먹은 것이 구역질난다. 내 비록 힘이 달려 네 놈을 찌르지 못하나 옛 상전 찾아 돌아가겠다.” 하고 집을 나가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상전 이 나라 팔아먹은 대역을 큰소리로 호소했습니다. 이런 이들이 을사오적들입니다. 3.1절이 가까워 오면서, 나라를 팔아먹은 다섯 명의 적, 오적들이 생각났습니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적이 있고, 사회를 혼란케 하는 적이 있습니다. 가정을 파괴하는 적이 있고, 우리의 인생을 망하게 하고, 우리의 신앙을 공격하는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게 잘 안 됩니다. 왜 그럴까요? 무엇이 우리를 흔들고 괴롭히고 방해하는 것일까요?  신앙을 공격하는 적이 있습니다. 우리를 유혹하고 신앙을 반대하고, 공격하는 적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무엇이 우리의 적인지를 깨닫고, 적을 물리치고 이길 수 있는 신앙의 자세와 방법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본문 앞의 13-20절의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이사랴 빌립보 지경에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은 각기 들은 대로 대답을 했습니다. 세례 요한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레미야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대답을 들은 신 후, 다시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대답은 단순한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담긴 대답이었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예수님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믿는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로 선포하는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시고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그 결과 베드로는 천국 열쇠를 받았고, 놀라운 복과 권세를 받았습니다. 이 일이 있은 직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시고 죽임 당하시고 제삼 일에 살아나실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였습니다. “주님! 안 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 분위기 좋았습니다. 그런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실 것이라는 말을 들으니 그냥 있을 수 없었나 봅니다. 나름대로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스승이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데,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데, 제자로써 그냥 있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자신이 스승을 지키고 스승에게 찾아오는 위험을 막는 방패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의 대답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충격이었습니다. 조금 전에는 베드로에게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셨는데, 이제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말씀하시니,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신앙고백을 잘 했다고 해서 그 신앙이 계속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신앙이 계속 좋은 신앙으로 남아 있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의 신앙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놔두지 않는 세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유혹하고, 반대하고, 공격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명심해야 합니다. 적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그렇게 되는 것을 보면, 하물며 우리들의 연약한 신앙은 두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순식간에 칭찬을 듣다가 책망을 듣게 됩니다. 복을 받다가 복을 빼앗길 수 있습니다. 믿음의 능력이 나타나다가 낙심과 절망과 실패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적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원래 이 말은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말이 맞습니다. ‘백전불태’에서 ‘불태’는 ‘아니 불’자, ‘위태할 태’자입니다. 손자(孫子)병법 ‘모공편(謀攻篇)’에 이렇게 실려 있다고 합니다. 적군에게 이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승리의 방법이 있으나, 그 중 최선의 승리는 아군의 피해가 전혀 없는,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손자는 결코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것을 상책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서 적의 군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상의 상책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과 싸우기 전에 먼저 싸우지 않을 수 있는 신앙 자세를 갖는 것, 그리고 싸우게 될 때, 이길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모든 사람을 죄의 지배 아래 있게 하는 그 힘을 지적할 때, 세 가지를 말합니다. “육체”과 “세상”과 “사탄”입니다. 이 세 가지 권세는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유혹하고 하나님을 반대하게 하고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래서 죄의 포로로 살게 합니다. 세 가지 권세 모두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에 대립해 있습니다. 이것들은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세 가지 적입니다.

  첫째, 우리의 적은 육체입니다.
이 말을 잘못 이해하면 우리의 육체는 더럽고 속되고 악한 것이고, 우리의 정신과 영은 거룩하고 선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원론적인 주장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영지주의 이단이 주장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여기서 ‘육체의 욕심’이나 ‘육체의 소욕’이라는 말은 ‘죄악된 인간의 본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육체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육체가 있으니까 움직이고 활동하고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의 몸, 즉 살과 뼈와 장기 등 우리의 몸은 악하지 않습니다. 죄악된 인간의 본성,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우리의 육체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육체의 욕심, 육체의 소욕에 영향을 주어 악한 욕망을 사용하게 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훼방하고 거절하게 합니다. 그래서 육체가 행하는 일이 19절에서 21절까지 말하는 ‘육체의 일’입니다. 이런 육체의 일을 영성신학자 유진 피터슨은 [더 메시지]라는 성경개인번역본에 이렇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사랑 없이 되풀이 되는 값싼 섹스, 악취를 풍기며 쌓이는 정신과 감정의 쓰레기, 과도하게 집착하지만 기쁨없는 행복, 껍데기 우상들, 마술쇼와 같은 종교, 편집증적 외로움, 살벌한 경쟁, 모든 것을 집어삼키지만 결코 만족을 모르는 욕망, 잔인한 기질, 사랑할 줄도 모르고 사랑받을 줄도 모르는 무력감, 찢겨진 가정과 찢어진 삶, 편협한 마음과 왜곡된 추구, 모든 이를 경쟁자로 여기는 악한 습관, 통제되지도 않고 통제할 수도 없는 중독, 이름뿐인 꼴사나운 공동체 등이 육체의 욕망에 휘둘려 행하는 육체의 일들이라고 했습니다.
  교우 여러분, 육체의 소욕을 따라 행하면 그 결과는 허무와 죄악과 불행뿐입니다. 절제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육체의 소욕을 쳐 복종시켜야 합니다. 육체의 소욕을 거슬러 성령을 따라 행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의 적은 세상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신앙과 반대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대해 반대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일서 2장 15-17절에 말씀합니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세상의 방식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것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을 밀어냅니다. 세상에서 통용되는 모든 것, 즉 자기 마음대로 살려 하고,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하려하고, 잘난 체하는 욕망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세상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겸하여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적입니다. 세상 속에서 세상을 거슬러야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육체의 욕망은 점점 더 편안한 것, 점점 더 욕망을 만족케 하는 것, 점점 더 즐기는 것, 점점 더 자극적이고 쾌락적인 것, 점점 더 화려한 것, 점점 더 이기적인 것을 추구합니다. 세상은 그런 것들을 우리에게 주겠다고 합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행복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신은 세상의 일에 더 민감합니다. 세상의 일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세상의 일과 자매결연을 맺은 것 같습니다. 얼마나 반응을 빨리하는지,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모릅니다. 물 만난 고기와 같다는 말을 하지요? 그런 표현처럼 우리의 육체의 소욕은 세상을 만나면 물 만난 고기처럼 세상의 것들을 좋아합니다. 우선 먹기에는 곶감이 달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어떻게 될지 모르고 어리석게 생각하고, 어리석게 행동하고, 어리석은 삶을 삽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다는 예수님의 지적은 베드로가 세상의 관점, 세상의 방식, 세상의 가치를 생각했다는 책망이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죽지 않고 메시야가 되시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마태복음 4장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시고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 시험 중에 사탄은 예수님께서 죽지 않고 세상을 구원하실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예수님께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리라”고 제안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엎드려 절을 했으면 사탄으로부터 천하만국과 그 영광 즉 세상을 얻었습니다. 고난당하지 않고, 십자가에 죽지 않아도 세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아니라고 단호하게 물리치셨습니다. 사탄이 제시한 방법은 그럴듯하고 죽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목숨만 구할 뿐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섬기고 사탄을 섬기는 행위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세상의 방법이고, 무엇이 세상의 관점이고, 무엇이 세상의 일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면서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를 분별하여야 합니다. 내 경험과 판단으로 기준을 삼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No!" "아니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신학교의 교수가 학생들에게 일러주기를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니오'하고 거절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신학생에게 있어서는 헬라어를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신학생이 신약성서의 원전을 공부하려면 헬라어에 능통하지 않고는 도저히 안 될 일이니까 그 어려운 말을 배우는 것이 꼭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긴요한 것은 세상의 유혹을 단연 물리칠 만한 용기라는 뜻일 것입니다. '아니오' 할 때 '아니오'하는 것이 생활의 기초입니다. 세상이 주겠다고 하는 명예나 권력이나 높은 자리를 탐내거나 마음대로 남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을 향해 '아니오' 하지 못한다면 진정으로 원하는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하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셋째,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적은 사탄입니다.
사탄은 세 번째의 적이 아니라 세 가지의 적중에 가장 위험한 적입니다. 사탄을 첫 번째로 말씀드리지 않고 육체와 세상을 먼저 말씀드린 것은 사탄이 제일 별 볼 일없는 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탄이 우리의 육체와 세상을 통해서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호심탐탐 우리를 공격할 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과 육체의 소욕은 세상 속에서 사탄의 유혹과 공격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사탄의 유혹을 받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신앙을 반대합니다. 사탄은 육체의 소욕과 세상과 함께 우리를 공격합니다. 사탄은 교활합니다. 달콤하게 유혹하고 공격합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거대한 적대자입니다. 사탄은 또한 불행, 질병, 인생의 또 다른 문제들, 죽음 안에서 활동하고 있으면서 우리들에게 그것들을 가져다줍니다. 사탄은 세상과 함께 하나님의 진리를 반대하고 학대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신앙의 단절을 가져오게 합니다. 사탄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에 눈멀게 하고, 인간의 이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걸려 넘어지게 합니다. 사탄은 사람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들의 비참한 상황을 깨닫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사람들을 강퍅하게 합니다. 사탄의 활동은 우리를 방심하게 하고, 자만에 빠지게 하고, 둔감하게 살도록 합니다.
  사탄이 사람을 유혹할 때 즐겨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탄이 놓은 '덫'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누구나 하는 것인데 내가 했다고 큰 죄가 될까?” “이건 아주 미미한 것으로 양심에 큰 가책이 되지 않는다.” “이번이 딱 한 번뿐이니까 괜찮겠지.” “아무도 보지 않았으니까 문제없겠지.” “그 동안 너무 힘들게 살았으니까 이 정도는 보상차원에서 괜찮겠지.” “이것이 나에게 주어지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이런 마음을 갖게 하고, 이런 말을 하면서 유혹에 넘어오게 만듭니다. 사탄의 공격은 슬그머니 들어옵니다. 또한 사탄은 감정에 의해 쉽게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을 느끼게 하여 감정의 늪에 빠지게 합니다. 쉽게 낙심하고 절망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즉 사탄의 권세에 대항하여 싸우느냐, 그 권세에 항복하느냐의 선택입니다. 이 싸움을 수행하는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을 통해서 교회는 가르침으로 사탄을 죽여야 합니다. 영적 전쟁을 기꺼이 치러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사탄의 유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신 예수님의 본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말의 기수 비유로 설명을 했습니다. 여러분, 달리는 말 아시지요? 같은 말일지라도 누가 탔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말을 어디로 달리게 하느냐? 얼마나 잘 달리게 하느냐?는 말에 올라탄 기수에게 달려있습니다. 우리를 사탄이 지배하게 하느냐? 예수님께서 지배하시도록 나를 맡기느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
  신앙이라는 것은 곧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선택하고 성령 하나님께서 나를 주관하시도록 선택하여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택한 후에, 주님의 말씀과 가르침대로 따르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본문 24-26절에 말씀하셨습니다.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 속에는 우리의 육체의 소욕을 버리고,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라는 뜻이 있습니다. 사탄의 길을 따라가지 말고 주님의 길을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의 육체는 유혹을 받습니다. 세상은 신앙을 반대합니다. 사탄은 신앙인을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적에게 패배합니다.
  여러분, 왜 건강을 해치게 됩니까? 왜 행복이 깨지게 됩니까? 왜 지혜롭게 살지 못하게 됩니까? 왜 신앙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까? 왜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합니까? 왜 번번이 세 가지 적들에게 당합니까?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십시오.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 내 삶의 주인이심을 믿고 고백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내 삶을 주장해 달라고 맡기십시오. 성령 충만을 구하십시오. 성령님께서 우리의 세 가지 적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구하십시오.
  경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육체의 훈련 없이 건강을 유지할 수 없고, 육체의 훈련 없이 운동선수가 승리할 수 없듯이 경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날마다 기도하고, 성경 말씀을 읽고 들어야 합니다. 온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세 가지 적을 알고 이기시기 바랍니다. 육체의 소욕을 통한 유혹을 당할 때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 속에서 분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사탄의 간교한 공격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시기 바랍니다.
2011년 02월 20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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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
 삼위일체의 신비
· 일시  2011년 06월 19일
· 말씀  요한복음 16장 12절~1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보혜사 성령
· 일시  2011년 06월 12일
· 말씀  요한복음 14장 25-27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순례자가 받은 세 가지 선물
· 일시  2011년 06월 05일
· 말씀  요한복음 3장 16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일어나 걸어가라
· 일시  2011년 05월 29일
· 말씀  요한복음 5장 1~9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언약적 공동체
· 일시  2011년 05월 22일
· 말씀  마태복음 19장 3~12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묶는 말 푸는 말
· 일시  2011년 05월 15일
· 말씀  베드로전서 3장 8-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가정이 살아야 합니다
· 일시  2011년 05월 08일
· 말씀  골로새서 3장 18-21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무엇을 물려주시겠습니까?
· 일시  2011년 05월 01일
· 말씀  사무엘상 2장 27-3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그 다음은 누구입니까?
· 일시  2011년 04월 24일
· 말씀  고린도전서 15장 20-2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바로 나 때문입니다
· 일시  2011년 04월 22일
· 말씀  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험한 십자가
· 일시  2011년 04월 17일
· 말씀  에베소서 2장 12-1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약입니까? 의사입니까?
· 일시  2011년 04월 10일
· 말씀  마태복음 9장 9-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생명의 성령의 법
· 일시  2011년 04월 03일
· 말씀  로마서 8장 1-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고난 받는 사람
· 일시  2011년 03월 27일
· 말씀  베드로전서 4장 12-19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고통의 쓰나미
· 일시  2011년 03월 20일
· 말씀  디모데후서 3장 1-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경건
· 일시  2011년 03월 13일
· 말씀  이사야 58장 6-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묵은 땅을 갈아엎으십시오
· 일시  2011년 03월 06일
· 말씀  호세아 10장 12-1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이 때를 위함이 아니냐?
· 일시  2011년 02월 27일
· 말씀  에스더 4장 12-17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세 가지 적
· 일시  2011년 02월 20일
· 말씀  마태복음 16장 21-28절
· 설교  신문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