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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가 아이를 낳았다고?  [2836]
· 설교 일자 : 2010년 11월 28일
· 본문 말씀 : 이사야 7장 14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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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가 아이를 낳았다고? (이사야 7장 14절)
  옛 속담에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어떤 잘못을 해 놓고서도 구구한 변명거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 속담과 비슷한 뜻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뒤집어 생각해 봅시다. 옛날에 이런 속담이 있었던 것을 보면, 옛날에도 처녀가 애를 배는 일이 종종 있었나 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속담이 생겼겠습니까? 요즘에만 처녀가 애를 배는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봅니다. 요즘에는 처녀가 애를 밸 수 있는 장소가 참으로 많지만, 옛날에는 모텔도 없었을 텐데 참으로 남녀의 관계란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요즘에는 처녀가 애를 배는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리고 당당하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얼굴이 두껍다고 해야 할까요. 요즘 결혼 전에 아이를 갖고서 뱃속의 아이가 혼수품이라고 농담처럼 말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는 속담을 “처녀가 애를 배면 할 말이 많다” 이런 말로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은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 예언이 700여년 후에 처녀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을 낳았다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되었습니다. 동정녀 탄생설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는 말이 믿어지느냐 입니다.
  기독교를 무너뜨리려는 공격은 역사상 수없이 많았습니다. 기독교가 별 볼일 없는 종교라면 그렇게 공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별 볼 일 없는 기독교라면 그냥 놔두어도 영향력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기독교는 이 세상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인간의 생명과 미래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새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그래서 역사가 바뀌고, 문화가 바뀌고, 나라가 바뀌고, 가정이 바뀌었습니다. 이런 변화와 영향력을 제일 싫어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악의 세력의 우두머리입니다. 사탄은 이 세상을 자기 손 안에 쥐고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탄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인류를 지배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고, 인류를 유혹했습니다.
  그 결과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사탄에게 미혹되어 사탄의 계략에 의해 기독교를 공격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공격했습니다. 여러분, 매년 성탄절이 다가오거나, 부활절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예수님에 대해 이상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항상 해프닝으로 끝납니다. 그들의 주장의 핵심 내용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주변의 여인들과 결혼했었다,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과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는 사실이 아니다, 또는 예수님은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인물이 아니다, 이런 등등의 주장을 합니다. 그러면 그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매스컴이 있습니다. 그 소식이 세계적으로 퍼져갑니다. 그러다가 성탄절이 지나면, 부활절이 지나면 언제 그런 이야기가 있었느냐는 듯이 사라집니다. 근간에 영국 BBC 방송에서 방영한 예수님의 가족묘가 있고, 거기에 예수님의 유해도 있다는 주장이나, [다빈치코드]같은 소설을 영화화하여 허구의 소설로 헛소리를 해대면 그것을 진실인 양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반복적으로, 의도적으로, 악의적으로 공격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너무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적그리스도들이 공격하는 중요한 내용은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부활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부활이 곧 인류를 구원하는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모든 기적들과 신비들 중에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기적이 지금까지 가장 극심한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가장 적대적인 공격을 한 사람들 가운데 신학자요 목사인 사람들도 있다는 점입니다. 외국과 같은 경우에 급진적인 신학, 자유주의신학을 전공한 사람들 가운데는 예수님의 동정녀 마리아 탄생을 자신은 믿지 않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동정녀 탄생이 너무 신화적이고 전설적인 내용처럼 보인다고 말합니다. 이런 생각의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생각입니다.
  

  현대인들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왜 믿지 않는 것일까요?
하나는 사람들이 마음을 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예 귀를 닫고 들으려고 하지 않고, 마음을 닫고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수 타블로 씨의 학력을 놓고서 시끄러웠습니다. 가수 타블로씨는 자신이 스탠포드대학교과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는 학력을 못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여 수많은 사람들이 “타진요” - 타블로의 진실을 요구하는 모임을 만들어 끈질기게 타블로와 타블로의 가족을 공격했습니다. 참으로 할 일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학력 증명을 하고, 성적 증명까지 하였는데도 못 믿겠다고 하다가 결국 경찰의 수사 발표로 인해 수그러드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도 그들은 어느 구석에서 못 믿겠다고 꿍얼거리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 사회에 학력 위조가 많다보니 믿지 못할 일들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타블로 씨 학력에 관한 사건은 믿지 않겠다고 작정을 하고 무슨 증거를 보여주고, 무슨 말을 하여도, 누가 어떻게 말하든 나는 나대로 생각하고 나는 내 생각과 주장을 굳히지 않고, 남이 똑똑하고 잘 되는 꼴을 못 보겠다는 병든 정신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던 사건입니다.
  여러분,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고, 인격적인 사람이고, 성숙한 사람입니다. 정신병이 괜히 정신병이 아닙니다. 자기 생각에 갇혀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정신질환이요, 문제있는 정신입니다.
  여러분, 만약 동정녀 탄생이 거짓이라면 믿을 필요도 없고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그러나 진실이라면, 사실이라면,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 진실이라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지 못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동정녀 마리아 탄생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몸에는 남자 아이를 만들어 낼 유전자가 없었습니다. 과학적 사고를 하는 현대인들이 마리아가 혼자서 아들을 낳으려면 마리아의 난자 속에 Y 염색체가 저절로 생겨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과학이라는 학문의 이론에 사고가 갇혀서 과학적으로 증명이 안 되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거나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과학적인 증명만을 요구하는 현대 지성인이 처녀의 몸에서 아기가 태어나고 사람이 물위를 걷고 무덤에서 시체가 살아 나온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과학만이 진리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종교와 과학의 관계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과학이 없는 종교는 절름발이이고, 종교가 없는 과학은 장님이다”고 아인슈타인이 말했습니다. 과학과 종교는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합하고 보완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과학은 한계가 있습니다. 신비와 기적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과학이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부인하고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는 증명 못하는, 증명이 안 되는 실재와 사실과 진실이 얼마나 많은지를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도 과학이 증명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학이 증명할 수 없으니 안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만으로 세상을 봐서는 안 됩니다. 동정녀 탄생은 신비이고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기적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물질은 만유인력의 법칙과 중력의 법칙에 의해서 땅으로 떨어집니다. 예를 들어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면 땅으로 떨어집니다. 그것은 자연법칙이고 그 자연법칙을 연구하여 적용하는 학문이 과학입니다. 그런데 땅으로 떨어지는 사과를 손을 내밀어 잡으면 중력의 법칙이 그 사과에 적용되지 않게 됩니다. 더 이상 땅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런 행위는 중력의 법칙을 뒤 엎어버리거나, 새로운 법칙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자유의지를 가진 한 인격이 중력의 법칙이 작용하는 현장에 개입을 하는 행위입니다. 기적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언제든지 이 세상의 자연법칙과 질서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특별한 뜻과 의지를 가지시고 떨어지는 사과를 손으로 잡아서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처럼 행하시는 일이 기적입니다. 그러니까 기적이 이상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다고 해서 자연법칙이 파괴되거나 자연법칙이 부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연법칙을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아직도 기적을 믿지 못하는 분은 생각과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신앙인이 예수님의 동정녀 마리아 탄생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기독교 신앙은 어떻게 될까요? 동정녀 마리아 탄생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지 않으셨다면, 만약 이 동정녀 탄생의 기적을 부인한다면, 현대 과학 시대에 동정녀 탄생설 만큼은 못 믿겠다고 한다면, 우리에게 어떤 신앙이 남게 될까요? 어떤 신앙의 문제가 발생하게 될까요?
  기독교의 핵심 신앙이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지 않으셨다면, 신약성경의 기록은 거짓이며 따라서 믿을 수 없는 책이 됩니다. 또한 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예언과 약속 성취를 믿지 못하는 것이 됩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라는 예언도 성취되지 못한 말씀이 됩니다. 동정녀 탄생이 아니라면 예수님은 “여자의 후손”이 아니라 “남자의 후손”이 됩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7장 14절의 예언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됩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신 것이 아니면, 마리아는 요셉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고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기록을 보면 요셉이 마리아의 임신 소식을 듣고서 고민했다는 것을 보면 그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다른 남자와 그렇고 그런 관계를 가진 후 임신해 놓고서 자신의 부정한 사실을 감추려고 거짓말 한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유대 농부의 딸 마리아와 어느 바람둥이 남자 사이에서 죄악 가운데 태어난 사생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아들이 아니라 우리와 다를 바가 없는 죄인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마리아는 부정한 범죄자가 됩니다. 당시 유대 문화 속에서 그녀가 정혼한 요셉을 놔두고 다른 남자와의 관계에서 아이를 가졌으니, 그것은 간음에 해당하고 그러면 간음죄를 진 여인은 성문으로 끌려가 옷이 찢기고 누더기를 걸친 채 밧줄에 묶여 이리 저리 끌려 다니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신 것이 아니라면, 예수님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셨으며,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주장했는데, 이 모든 것이 아버지를 잘못 알고 있거나, 아버지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자격도 없는 자가 되고, 신적 구속자가 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가 될 수도 없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우리의 죄가 용서 받지 못하며, 죽음 이후에 대한 소망도 없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동정녀 탄생이 아니라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생명을 잉태케 하지도 못하는 하나님이 무슨 천지를 창조하실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무슨 기적을 일으키실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정말로 일어나기는 한 것일까요? 천국은 정말 있기나 한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사망의 세력을 이기고 부활하시기는 하신 것일까요? 나부터라도 이런 의심과 불신을 가득 갖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지도, 믿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런 무능력한 하나님을 믿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동정녀 마리아 탄생은 아주 중요한 신앙이요, 복음의 핵심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동정녀 마리아 탄생을 믿음으로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가?
  마리아는 신적인 능력을 가진 처녀가 아닙니다. 마리아를 신적인 존재처럼 떠받는 것은 마리아를 우상으로 섬기는 결과를 낳습니다. 마리아는 당대에 가장 깊고 아름다운 신앙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시킬 태를 아무 여인에게서나 마구 찾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에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할 것을 알려줍니다. 그 때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합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남자를 알지 못한다는 말은 남자와 함께 잠을 자면서 아이를 가질 일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이를 잉태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입니다. 그 말에 천사가 35절에 대답합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이 말씀의 핵심은 “성령”과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마리아의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리아가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을 보시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동정녀 탄생의 신비를 행하셨습니다.
  여러분, 마리아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를 분명히 믿고 있다면 처녀의 몸에 생명이 잉태되는 것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마리아의 몸에 Y염색체를 만드시는 것, 생명을 만드시는 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기적이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말하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면 우주를 설계하고 존재하게 하고 지금도 매순간 우주를 지탱하고 계시며 이 세상의 자연법칙을 만드시고 지배하고 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 믿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창조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예수님의 동정녀 마리아 탄생을 믿지 않는다면 이상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무에서 유로 창조하셨다고 믿으면서 처녀의 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생명을 잉태하게 하신 일을 믿지 못한다면 실제로 창조신앙도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신앙은 어느 한 가지를 믿는 것이 그 한 가지로 끝나지 않습니다. 신앙은 연속적입니다. 한 가지 믿는 것이 다른 것을 믿을 수 있게 하고, 그 믿음이 또 다른 것을 믿도록 연결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의 믿음이 무너지면 다른 믿음도 연속적으로 무너집니다. 믿음은 한 가지만, 일부만 믿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전인적으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고, 병든 믿음이나 극단적인 믿음을 갖지 않게 됩니다. 한마디로 건강하고 균형 잡히고 성숙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은 본질 상 발전하고 성장하고 확장되어야 합니다. 창조신앙이 동정녀 탄생 신앙을 갖게 하고, 예수님의 부활도 믿게 되고,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게 됩니다. 그 믿음이 발전하여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한 사도 바울처럼 믿고 행해야 합니다.  
  제 6기 알파코스 성령수양회 때 하나님께서 다양하게 그리고 놀랍게 살아 역사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허리가 아프신 분, 다리가 아프신 분을 치유하셨습니다. 또 지난 18일 목요일 치유사역의 날에 많은 사람들에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특별히 어깨 통증, 무릎 통증이 사라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한 분은 천식으로 오래 동안 고생하신 어르신인데, 병원에 갔더니 이제 천식 약을 먹지 않아도 되겠다고 하더랍니다. 골반이 돌아가 오른쪽 다리가 짧은 사람이 다리가 자라나 길이가 같아졌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틀어진 골반이 제자리를 찾게 된 것입니다. 골반이 틀어지면 여성의 경우 많은 여성병을 앓게 됩니다.
  마가복음 16장 17,18절 말씀,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이 말씀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특별히 치유 사역을 위해서 집에서, 교회에서, 알파코스 중보기도사역팀과 섬김이들이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그 믿음의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졌습니다. 믿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의 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하시는 분이실 뿐만 아니라 오늘도 우리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살아 역사하십니다.
  교우 여러분,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을 맛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스스로 할 수 없는 일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행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적은 목적 없이, 의미 없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야 행해집니다. 만약 여러분이 의미 없이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마치 마술이 벌어지는 것을 보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특별한 구원의 뜻을 이루시려고 처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잉태되게 하셨고,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인류 구원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 안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기적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을 믿습니까? 예수님의 동정녀 마리아 탄생을 믿느냐? 못 믿느냐에 따라 어떤 신앙이 여러분의 삶에 적용되느냐가 결정될 것입니다.

  오늘은 대강절 첫째 주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날을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탄생에 관한 신비를 바르게 이해하고 믿음으로 주님의 탄생을 진실 되게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솔직하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진실하게 대답하십시오. 정말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탄생하셨는지를 믿습니까? 정말 믿는다면 그 믿음으로 여러분의 삶 속에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기적적인 손길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삶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경험하며 살아야 할 은혜요 복입니다. 이런 삶이 영생의 삶을 이 땅에서부터 맛보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면서 사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은 청지기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청지기로 부르셨습니다. 또 일을 맡기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일을 맡길 때 일을 감당할 힘과 능력과 은사를 주십니다. 못 한다고만 빼지 마십시오. 안 한다고 물러서지 마십시오. 마리아의 신앙 자세처럼 “주님의 능력이면 감당하겠습니다.” 하고 순종하십시오. 이런 삶이 하나님의 일꾼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감당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교우 여러분, 견고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여러분의 삶에도 기적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2010년 11월 28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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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순례자가 받은 세 가지 선물
· 일시  2011년 06월 05일
· 말씀  요한복음 3장 16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일어나 걸어가라
· 일시  2011년 05월 29일
· 말씀  요한복음 5장 1~9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언약적 공동체
· 일시  2011년 05월 22일
· 말씀  마태복음 19장 3~12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묶는 말 푸는 말
· 일시  2011년 05월 15일
· 말씀  베드로전서 3장 8-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가정이 살아야 합니다
· 일시  2011년 05월 08일
· 말씀  골로새서 3장 18-21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무엇을 물려주시겠습니까?
· 일시  2011년 05월 01일
· 말씀  사무엘상 2장 27-3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그 다음은 누구입니까?
· 일시  2011년 04월 24일
· 말씀  고린도전서 15장 20-2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바로 나 때문입니다
· 일시  2011년 04월 22일
· 말씀  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험한 십자가
· 일시  2011년 04월 17일
· 말씀  에베소서 2장 12-1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약입니까? 의사입니까?
· 일시  2011년 04월 10일
· 말씀  마태복음 9장 9-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생명의 성령의 법
· 일시  2011년 04월 03일
· 말씀  로마서 8장 1-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고난 받는 사람
· 일시  2011년 03월 27일
· 말씀  베드로전서 4장 12-19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고통의 쓰나미
· 일시  2011년 03월 20일
· 말씀  디모데후서 3장 1-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경건
· 일시  2011년 03월 13일
· 말씀  이사야 58장 6-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묵은 땅을 갈아엎으십시오
· 일시  2011년 03월 06일
· 말씀  호세아 10장 12-1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이 때를 위함이 아니냐?
· 일시  2011년 02월 27일
· 말씀  에스더 4장 12-17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세 가지 적
· 일시  2011년 02월 20일
· 말씀  마태복음 16장 21-28절
· 설교  신문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