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영상

sermon

양정교회 홈페이지와 YouTube 채널을 통하여 설교말씀과 강의를 영상/음성/스트리밍으로 제공해 드리고 있습니다. 2004년 8월 부터, 현재까지의 영상과 말씀 음원파일을 홈페이지를 통해 열람이 가능하며,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설교말씀 다시보기를 통해, 예배시간에 받았던 은사와 감동을 다시한번 회고하는 은혜로운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등록된 설교영상 : 1,958
모든 믿는 자에게   [2894]
· 설교 일자 : 2012년 05월 01일
· 본문 말씀 : 로마서 1장 16-17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신문수 목사님의 다른 말씀 보기

모든 믿는 자에게  (로마서 1장 16-17절)
  평생 교회와 사회에 여러 가지로 큰 기여를 한 사람이 죽어서 천국 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천국 문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붙들었습니다. 베드로가 하는 말, “이곳을 통과하려면 약간의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복잡한 건 아니고 당신이 일생 동안 살아온 것을 점수로 환산하여 1,000점이 되어야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1,000점이라고요? 별로 대단한 것 같지는 않군요.” “자, 그럼 이제 점수에 보탬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 보세요.” 그 사람이 말을 시작했습니다. “전, 30년 동안이나 선교 기관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에도 힘썼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는 말, “아! 그래요? 정말 대단하군요? 1점입니다.” “네? 1점이라구요? 그것밖에 안 됩니까? 이상하군요. 그러면 또 저는 충실한 가장으로써 한 여자와 결혼하여 무려 40년 동안 같이 살았고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지도 않았고, 자식들도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자식들은 지금 모두 회사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는 말, “정말이오? 당신의 매우 훌륭한 사람이군요. 2점 가산입니다.” “네? 2점이라고요? 그것 밖에 안 됩니까?”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의 가장 크고 중요한 이력이 겨우 합쳐서 3점 밖에 안 되었으니 1,000점을 무엇으로 채울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또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지난 60년 동안 한 번도 주일날 교회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매일 새벽기도회에도 참석했습니다. 주일에는 봉사도 열심히 했습니다.” “당신은 모든 면에서 훌륭한 사람이군요. 또 1점 가산입니다.” 바울의 말에 그는 정신을 잃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 겨우 4점인데 어떻게 하지요? 1,000점을 채우려면 어떻게 하지요? 더 이상은 점수에 보탬이 될 만한 얘기가 없습니다. 난 어떻게 하지요? 천국에 들어갈 만한 인격이 못되나 봅니다. 제발 이 죄인을 용서해 주세요. 예수님!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내게 구원을 주실 이는 오직 주님이십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그 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자, 이제 당신은 1,000점을 받았습니다. 이젠 들어가도 좋소.”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을 받는 것이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새 생명을 얻게 된 것도, 의로우신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던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케 될 수 있게 된 것도, 영원한 형벌과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던 우리가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게 된 것도, 사탄의 종으로 사탄의 지배아래 살 수 밖에 없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새로운 삶 살 수 있게 된 것도 오직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 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독생자 성자 하나님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 값을 치러주셨고, 우리를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묵상할 때, 십자가 앞에서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앞에 평등하고, 십자가 앞에서 평등합니다.
  본문 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는 말씀에서 ‘모든’이라는 단어는 헬라인, 야만인, 지혜 있는 자, 어리석은 자, 모든 사람을 뜻합니다. 즉 모든 인류를 포함합니다. 당시 헬라인은 다른 사람들을 야만인으로 여겼습니다. 헤로도투스는 단순히 헬라인이 아닌 사람들을 가리켜 야만인이라고 칭했습니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에 “자신이 야만인으로 태어나지 않고 헬라인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고 말을 할 정도로 헬라인의 우월의식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헬라인 노예조차도 자신들을 노예로 부르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노예는 오직 야만인들에게만 적합한 말로 여겼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선택된 민족이라는 선민사상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성민사상으로 굉장히 교만했습니다. 다른 민족은 모두 이방인이기에 차별하고 무시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두가 십자가 앞에 평등하게 구원을 얻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합니다. 사람들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고,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하다고 여기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이 없는 사람과 평등하게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과 적게 가진 사람이, 많이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이, 나이가 많은 사람과 나이가 어린 사람이 평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힘과 가진 것과 능력으로 평등은 쉽게 깨집니다.
  그러나 복음은 차별이 없습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종을 막론하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가난한 사람도 부한 사람도, 잘 난 사람도 못 난 사람도, 종도 자유자도 차별이 없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평등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십자가 앞에서 모두 죄인이기에 평등합니다.
여러분, 죄의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십자가 신앙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죄인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데,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 대신 죽으셨다는 사실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죄 없는 사람,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치 않습니다. 죄가 없어서 죽음이 이르지 않는 사람, 죄가 없어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 죄와 죽음의 권세가 영향을 미치지 않아 이 세상에 살면서도 슬픔과 고통과 문제와 불행이 없는 사람은 십자가의 용서와 은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유대인들에게는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십계명에 한 계명을 더한 11계명을 만들어 놓았답니다. 1계명부터 10계명까지 계명을 지키지 못하면 죄를 짓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11계명은 “들키지 말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죄인의 종류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들킨 죄인과 들키지 않은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시니 들키지 않은 죄인이란 없습니다. 모두 죄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십자가의 공로가 필요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고 죽음을 해결할 수 없고,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모든 인간은 용서를 받아야 하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십자가는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그 어떤 능력으로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없습니다. 건강하다고 한들, 돈이 많다고 한들, 지식이 많다고 한들, 권력을 쥐었다고 한들, 그것이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줄 수 없습니다.”  시편 33편 16-1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16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 하는도다 17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 하는도다” 군대의 힘이든, 그 어떤 세상의 힘으로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여러분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줄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구원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오늘 본문 17절 말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십자가의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구원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으로부터 시작해서 헬라인에게, 모든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구원하신다는 엄청난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구원을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믿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는, 지혜 있는 자나 교양을 갖춘 사람이나 모두 하나님 앞에서 터무니없는 허세에 불과하다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와 비교하면, 너무나 보잘 것 없고 무력하다고 말씀합니다.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여 자신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 자랑이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자랑하려고 합니다. 자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자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려는 노력은 참으로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 앞에서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 어떤 자랑거리로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 말씀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십자가의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16절 상)
  여러분, 피뢰침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건물 높은 곳에 구리나 철 종류로 피뢰침을 만들어 벼락으로부터 피해를 막기 위해 세웁니다. 벼락이 피뢰침에 닿으면 높은 전류는 피뢰침에 연결된 전선을 통해 땅속 30센티미터 이상 깊이의 접지부에 흐르게 되고, 그 땅속에서 사방으로 분산됩니다. 이렇게 피뢰침 아래에서 벼락을 피하듯이 십자가 아래에서는 죄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인류에 내려지는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모두 막으셨으므로, 이제 십자가 아래로 나아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하나님의 진노를 막는 능력입니다. 죄의 대가로 받을 저주를 사라지게 하는 능력입니다. 영원한 벌을 받을 것을 대신 받아 버린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인생을 뒤집어 놓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죽음을 생명으로, 저주를 축복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어 놓는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기독교 역사에 수많은 죄인들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다양한 죄인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잡다한 범죄자로부터 끔찍한 살인자까지, 사람을 잡아 팔다리, 손을 구워먹던 식인종이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한 식탁에 앉아 사랑과 교제를 나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과 반대된 길로 가던 인생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했습니다. 죽음의 길에서 영원한 생명의 길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속의 미움, 분노, 원한, 살기등등한 마음, 더러운 생각들을 무엇으로 변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입니다. 십자가의 도입니다. 그 완악한 마음도 십자가의 복음이 들어가니까 봄눈 녹듯 녹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의 능력은 사람의 지혜나 가르침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도덕 교과서의 가르침으로, 교양으로, 공자의 가르침으로,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섹스피어의 작품으로 변화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도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들어가면 사람이 변합니다.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절망이 소망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근심이 평안으로, 증오가 사랑으로, 다툼이 평화로 변화됩니다. 십자가의 도가 들어가면 가정도, 사업의 현장도, 직장도 교회도 변화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이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가 변화가 크게 일어나지 않습니까? 십자가의 능력으로 살지 않아서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십자가의 능력을 너무도 적게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십자가에서 이루어 주신 것이 얼마나 많은 지 아십니까? 단지 구원만을 주셨다고 알고 계십니까? 단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셨다는 사실만 믿고 있습니까?
  교우 여러분, 우리는 왜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능력으로 살지 못할까요? 그것은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아래 나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붙잡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가슴에 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온전히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따로, 내 생각 따로 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와 상관없는 삶,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과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고, 십자가의 삶을 따라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 말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보혈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순종하는 이들에게 십자가는 부끄러운 것도, 미련한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닙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언제나 모든 믿는 자에게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언제나 저와 여러분에게 능력입니다. 십자가를 삶의 중심이 두고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십자가의 삶을 사는 곳에 나타납니다. 십자가를 붙잡지 않는 곳에, 십자가의 능력을 믿지 않는 곳에는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도와 십자가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3년 전 주일낮예배 때 설교한 내용인데, 사람은 두 차원의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다는 내용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오늘 아침 반찬을 무엇을 먹었는지도 기억 못하는데 3년 전 것을 어떻게 기억 하냐 구요? 더구나 설교를? 이런 내용입니다. 사람은 두 차원의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데, 자연적인 능력과 초자연적인 능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적인 능력에만 의존해 살다가 그것이 고갈되면 인생을 끝내 버립니다. 초자연적인 능력이란 하나님과 만날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능력입니다. 골리앗은 자연적인 능력만 가지고 전쟁에서 싸웠습니다. 골리앗의 능력은 큰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연적인 능력은 심히 적은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초자연적인 능력을 얻어 물맷돌로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자연적인 능력은 초자연적인 능력 앞에 힘이 없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주시는 초자연적인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서 주시는 능력입니다. 복음의 능력,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이 십자가의 능력은 사용되어야 합니다. 저장용이 아닙니다. 이자가 붙는 적금식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믿음을 꾸준히 적립하면 나중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누리게 되는 적금식 능력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어떤 믿음을 가졌느냐에 따라 나중에 보상해주는 그런 능력이 아닙니다. 지금 누리도록 주신 능력입니다. 내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면서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능력을 우리들에게 나타나게 해주시는 능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내가 율법적으로 완전하고, 윤리적으로 완벽하고, 도덕적으로 흠 잡을 데 없고, 하나님 앞에 봉사하는 일들이 많아서, 헌금을 많이 드려서, 기도를 유창하게 하기 때문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기 때문에 십자가의 능력이 역사하고,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고, 주님의 능력이 내 능력이 됩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우리들의 육신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우리들의 욕망을 이기게 하고, 우리들의 죄를 이기게 하고, 우리들의 육신의 생각을 이기게 하고, 하나님과 반대되는 생각을 이기게 합니다. 어거스틴이 회심한지 얼마 안 지났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는 회심한 뒤로도 때때로 악한 천성을 지니고 살았을 때 사귀었던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곤 했습니다. 그러던 하루는 수개월 동안 알고 지냈던 여인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어거스틴이 십자가의 능력에 의해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전까지 그를 죄의 노예 상태로 더욱 더 깊이 끌고 들어간 여인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은 단지 형식적인 목례만 하고 바삐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방탕한 여인은 그를 멈춰 세우고 놀리듯이 말했습니다. “어거스틴, 이젠 저를 모르시겠어요? 보세요, 저라구요.” 어거스틴은 할 수 없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어거스틴은 그녀의 사악한 매력도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붙들어 맬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단호히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희생으로 새 삶을 살게 된 우리는 십자가의 능력으로 육신의 욕망, 육체의 소욕대로 살던 삶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사탄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사탄의 유혹을 이기게 하고, 사탄의 궤계를 이기게 하고, 사탄의 능력을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하여 대적할 때에 나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이 십자가의 능력으로 나타나 승리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승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승리는 주님이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승리는 주님이 행하실 때 이루어집니다. 주님의 대장 되시고, 우리를 주님을 따를 때, 주님이 승리케 하십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우리의 마음을 평안케 하는 능력입니다. 옛날 우물에서 물을 깃는 여인들은 물 항아리에 물을 가득 담고 거기에 작은 나무 조각을 띄운 뒤에 물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집으로 갔습니다.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물 항아리에 나무 조각은 왜 띄웁니까?” “네, 나무 조각을 띄우면 항아리가 흔들릴 때도 물이 심하게 흔들리지 않아 넘치지 않게 되거든요.”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이 분노나 불안이나 슬픔이나 두려움이나 번민으로 심하게 요동칠 때, 마음에 십자가를 놓으면 십자가가 마음을 고요하게 해 줍니다. 십자가를 마음 속 깊이 그리고 고요히 묵상하면 십자가의 능력이 평안을 선물해 줄 것입니다. 십자가에 우리의 마음을 집중하면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십자가의 용서를 통해 우리도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얻습니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사람,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 십자가로부터 옵니다. 증오와 복수심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의 마음에 용서의 강물이 흐르도록 하는 것도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의 능력이 임할 때 이루어집니다.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생명을 얻은 우리들은 십자가의 능력을 통해 우리도 희생할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해야 이 모든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십자가 앞에서 우리 모두는 죄인이며,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존재였습니다.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 때문에 새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십자가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구원도, 영생도, 능력도, 승리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믿고 십자가의 능력을 공급받아 죄와 싸우고, 사탄과 싸우고, 고통과 절망을 이겨내고, 이 세상의 삶을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2년 05월 01일
신문수 목사

List of Articles
주일예배 설교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 일시  2012년 04월 29일
· 말씀  에베소서 6장 4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숯불 위의 생선과 떡
· 일시  2012년 04월 22일
· 말씀  요한복음 21장 1-14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문들을 닫은 제자들
· 일시  2012년 04월 15일
· 말씀  요한복음 20장 19-2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내가 주님을 뵈었어요
· 일시  2012년 04월 08일
· 말씀  요한 20장 11-1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 일시  2012년 04월 06일
· 말씀  베드로전서 1장 18~19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침묵하신 예수님
· 일시  2012년 04월 01일
· 말씀  이사야 53장 7-9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모든 믿는 자에게
· 일시  2012년 05월 01일
· 말씀  로마서 1장 16-17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십자가를 참으사
· 일시  2012년 03월 18일
· 말씀  히브리서 12장 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누가 크냐?
· 일시  2012년 03월 11일
· 말씀  누가복음 22장 24-3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 일시  2012년 03월 04일
· 말씀  고린도전서 2장 1-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만약
· 일시  2012년 02월 26일
· 말씀  요한복음 11장 17-44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사람
· 일시  2012년 02월 19일
· 말씀  사도행전 10장 1-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고넬료의 열심
· 일시  2012년 02월 12일
· 말씀  사도행전 10장 24-3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고넬료의 가정
· 일시  2012년 02월 05일
· 말씀  사도행전 10장 1-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그가 경건하여
· 일시  2012년 01월 29일
· 말씀  사도행전 10장 1-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우리는 세상의 빛 (ii)
· 일시  2012년 01월 22일
· 말씀  마태복음 15장 14-16절 말씀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우리는 세상의 빛 (i)
· 일시  2012년 01월 15일
· 말씀  마태복음 5장 14-16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우리는 세상의 소금 (ii)
· 일시  2012년 01월 08일
· 말씀  마태복음 5장 13절 말씀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우리는 세상의 소금 (i)
· 일시  2012년 01월 01일
· 말씀  마태복음 5장 13절 말씀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빛이 있으라
· 일시  2011년 12월 31일
· 말씀  창세기 1장 1~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소통하러 오신 하나님
· 일시  2011년 12월 25일
· 말씀  마태복음 2장 1-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 일시  2011년 12월 18일
· 말씀  로마서 15장 12-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구주
· 일시  2011년 12월 11일
· 말씀  누가복음 1장 46-56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의 나라
· 일시  2011년 12월 04일
· 말씀  마가복음 1장 14-1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진짜와 가짜
· 일시  2011년 11월 27일
· 말씀  요한복음 1장 1-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믿는 자가 되라
· 일시  2011년 11월 20일
· 말씀  요한복음 20장 24~29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누가 찬양할 수 있습니까 ?
· 일시  2011년 11월 13일
· 말씀  시편 106편 1~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자족의 비결
· 일시  2011년 11월 06일
· 말씀  빌립보서 4장 10-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코람데오
· 일시  2011년 10월 30일
· 말씀  로마서 1장 17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신앙생활에 대한 오해 IV (기도)
· 일시  2011년 10월 23일
· 말씀  요한일서 5장 13-1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은혜 아래 사는 사람
· 일시  2011년 10월 16일
· 말씀  로마서 6장 12~14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신앙생활에 대한 오해 III
· 일시  2011년 10월 09일
· 말씀  로마서 5장 17~21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