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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찬양할 수 있습니까 ?  [3806]
· 설교 일자 : 2011년 11월 13일
· 본문 말씀 : 시편 106편 1~5절
· 설교 :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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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찬양할 수 있습니까 ? (시편 106편 1~5절)
  교회는 오래 다녔고 서리집사이긴 하지만, 스스로 자신은 집사가 아니라 잡사라고 말하는 김집사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보니, 자기 직장 동료가 같은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새로 나온 직장 동료가 이제 막 신앙생활을 하면서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믿은 김집사에게 한번은 “할렐루야!”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교회에 오니까 목사님도 설교하기 전에 손을 들고 할렐루야! 하고, 다른 교인들도 할렐루야! 하던데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김집사는 아주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도 다들 할렐루야를 하니까 하긴 했는데 막상 뜻을 물어보니 정확하게 그 뜻이 무엇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얼른 둘러대어 대답을 했습니다. “할렐루야! 라고 하는 것은 우리 모두 천국에서 만납시다! 라는 뜻으로, 남원에 가면 이몽룡과 성춘향이 만나던 광한루가 있고, 진주에 가면 임진왜란 때 관기 논개가 왜놈 장수를 껴안고 강물로 함께 떨어진 촉석루가 있는 것처럼, 하늘나라에도 할렐루가 있어서, 그곳에서 만나자는 뜻이오.” 그렇게 대답했답니다. 여러분, ‘할렐루야’의 뜻이 무엇이지요? 히브리어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 입니다. 오늘 시편 106편은 할렐루야로, 즉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할까요? 왜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원하실까요? 우리가 하고 있는 찬송생활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요?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찬양이 사라지거나 변질되지는 않았나요?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는 데, 찬양이란 무엇입니까? 찬양을 그냥 노래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찬양’의 뜻은 ‘높인다’ ‘경배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입술로 시를 읊조리는 것, 노래를 부르는 것, 손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시와 찬미를 쓰는 것, 악기로 연주하는 것,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치거나 손을 높이 드는 것, 몸동작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 하나님께 춤으로 드리는 동작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경배의 행위가 찬양입니다. 오늘 설교는 찬양에 대한 말씀인데, 찬송하는 것을 대표적으로 말씀을 드리지만, 찬양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들으셔서, 찬송 즉 노래로 드리는 찬양만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기본적인 경배의 자세, 찬양의 다양한 표현, 경배의 모든 행위에 적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시편 106편 1절에서, 시편 기자는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외치면서 2절, “누가 능히 여호와의 권능을 다 말하며 주께서 받으실 찬양을 다 선포하랴”고 말씀합니다. 2절 말씀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누가 하나님께 찬양할 수 있는 사람입니까?”라는 뜻의 말씀입니다.
  교우 여러분, 누가 하나님께 찬양할 수 있습니까? 아무나 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 중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함이라고 이사야 43장 21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마음과 영혼이 하나님을 찬양하기는커녕,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하나님을 외면하고 배반하며 하나님을 무시하고 경홀히 여기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여러분, 누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찬양할 수 있습니다.
본문 1절,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4절,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알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아 감사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히 알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놀라운 능력,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사람이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푸신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높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심을 경험하며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경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단계로 나아갑니다. 감사는 찬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기분이 좋으면 콧노래가 나오듯이, 좋은 일이 있으면 흥얼거림이 있듯이, 감사하는 마음은 감사하는 표현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로 표현하게 됩니다. 시편 100편 4절 말씀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성경 곳곳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찬양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찬양을 드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감사와 찬양은 붙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이 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신앙인들이 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까요? 왜 찬양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할까요?
  돌아가신 하용조 목사님의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사랑하던 찬송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966년에 첫 은혜를 받고 구원과 사랑에 감격하여 목이 쉬도록 부르던 찬송, 영국으로 떠날 때, 건강이 너무도 안 좋은 상태일 때 불렀던 찬송, 기도원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새벽시간에 불렀던 찬송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찬송은 은혜 받은 자만이 부를 수 있는 하늘의 노래입니다. 감사와 감격과 눈물 없이는 진정한 찬송은 없습니다. 기도가 메마르면 찬송도 메마릅니다. 말씀이 메마르면 찬송도 메마릅니다. 사랑과 겸손이 메마르면 찬송이 나오지 않습니다. 신앙의 척도는 찬송에 있습니다. 감사가 사라지고, 기도가 사라지는 것을 자신이 먼저 깨닫습니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찬송생활은 신앙인들의 영적 상태를 알 수 있는 척도입니다. 시금석입니다. 찬양하는 모습, 찬양 드리는 자세, 찬양을 드리고는 있는지, 어떤 마음을 담아 드리는 지를 보면 영적인 상태가 여실히 드러난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에 들어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가수 이 수영씨라고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가 19살 때, 친구와 함께 콘서트 장에 갔는데, 사실 찬양집회라고 하는 것이 맞는 집회였습니다. 처음 듣고 불러보는 찬양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지고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울고 찬양한 후 그는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단 한 번의 찬양 집회로 완전히 하나님께 사로잡힌 것입니다. 그날부터 그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가수의 꿈도 접고 음악적 재능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에만 써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는 학교에서 가수 준비생으로 제법 유명했던 터라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일이 수월했다고 합니다. 친구들은 그의 변화에 놀랐고, 그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궁금해 했습니다. 그렇게 1년 동안 예수님을 영접한 친구가 30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꿈만 같았던 1년을 보내고 스무 살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답니다. 그때부터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갑자기 불러 가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위해 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다시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다행히 사람들로부터 그의 노래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많은 인기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여전히 힘들었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신앙인인 다른 가수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충고했습니다. 충고해주는 그 가수는 자신의 힘든 시간들을 새벽기도를 통해 이겨냈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힘은 얻는 이 수영씨는 그를 따라 기도 모임에 나갔고, 그러자 그동안 잊고 살았던 방언이 터지고 가슴속에 있는 상처가 치유되었습니다. 몇 년 만에 그는 하나님 앞에 주저앉아 통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불만이 찬양으로 바뀌었습니다. 다시 믿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힘든 일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리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나가고 있다고 간증하였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마음에는 감사와 찬양이 떠나갑니다. 그러므로 그 마음에 감사가 있느냐? 찬송이 있느냐? 를 보면 그 사람의 지금의 마음과 영적인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없고, 찬양도 드리지 않는다면, 실제로 구원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찬송드릴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구원받지 못했거나 구원 받은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었거나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식이 없이 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구원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고,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누구를 찬양합니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찬양을 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찬양을 좋아하십니다. 찬양을 받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찬양을 드릴 때, 찬양 가운데 임하십니다. 다윗은 시편 22편 3절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음악과 함께 드려지는 찬양은 첫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능이 있고, 또 하나는 우리들의 마음을 여는 기능이 있습니다. 음악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음악은 감정을 조절하는 힘이 있습니다. 마음을 긴장시키기도 하고, 이완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찬양으로 하나님께서 임하시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고 우리 마음과 영에 오시는 하나님과 친밀한 만남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찬양은 감사와 함께 하나님의 존재에로 나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이미 앞에서 말씀 드린 시편 100편 4절에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전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찬송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서 계신 곳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하나님께 찾아가고,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에 서게 됩니다.
  찬양의 목적 중의 중요한 것 하나는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영에 임재하십니다. 임재하신 하나님을 높이며 사랑을 고백하고 감사드리며 찬양할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의 임재의 현상들, 즉 하나님과의 교제의 상태가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도 성악가 중에 성가곡을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든지 부활절 칸타타에 참여하여 찬양곡을 부를 수 있습니다. 사실 서양 음악의 많은 내용은 기독교 음악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성악가가 정말 그 찬양곡에 담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부를 수 있을까요? 아름답게 부를 수는 있지만, 감동적으로 부를 수는 없습니다. 훌륭하게 소화해 낼 수는 있지만 영혼을 움직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찬양을 부를 수는 없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찬송곡을 훌륭히 부를지 모르지만 찬송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찬송을 통해 자신을 하나님께 내려놓고 겸손히 엎드리어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하나님께서 어루만져 주시는 손길로 영혼이 정화되며, 메마른 영혼이 회복이 되는 경험을 할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찬양은 하나님과의 교제이기 때문입니다. 찬양에 대한 바른 신앙이 없이 음악적으로만 접근한다면 음악적으로만 끝납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거나, 찬송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찬송을 부르기는 하지만 마음이 담기지 않고, 믿음의 고백이 담기지 않는 찬송을 부른다면,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찬양의 본질인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는 자세가 없이 노래 가락으로만 부른다면, 감정적으로는 도움을 받을지 모르지만, 영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일예배든 주일오후찬양예배든 수요기도회든, 새벽이든 금요구역예배든, 언제든지 찬송을 부를 때에 마음을 다하여 부르시기 바랍니다. 찬송은 이상하게도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고, 믿음을 고백하는 자세로 부르지 않으면 찬송 부르기가 힘이 들고, 귀찮고, 지루합니다.
  노래를 잘 하느냐 못 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찬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느냐? 찬양이라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회복과 치유와 은혜를 누리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오후 찬양 예배 시 먼저 찬양팀과 찬양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제가 뒤에 앉아 있어 보면, 대체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찬양 시간이 다 끝나갈 무렵에 오는 사람들은 교회에 불평을 잘 하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지 않는 사람일 경우가 많습니다. 무슨 자기가 조용필도 아니고 뒤 늦은 시간에 등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솔직하게 물어보십시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고 지겹고 어려운 것인지... 교회에서 찬양하는 시간에 열심히 찬양하지 않으면서 집에서, 직장에서, 길을 가면서 열심히 찬양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찬양의 은혜를 알고는 있는지를 하나님 앞에서 점검해야 합니다.
  돈 고셋의 [찬양의 폭발적 능력] 중에서 찬양에 대한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질문들은 찬양생활의 상태가 곧 신앙의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기에, 이 질문들을 통해 우리 자신의 신앙의 상태, 영적인 상태가 어떤가를 점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맑은 날씨만 선호하는 그리스도인’인가? 즉 모든 일이 다 잘 되고 좋은 환경에서만, 기분이 좋을 때만 주님을 찬양하는 사람인가?  내 삶은 예수님 안에 뿌리를 박고 그분으로부터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언제나 감사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가? 나는 뒤로 ‘물러가는 그리스도인’인가? 즉 마음의 기쁨이 없고 주 찬양하기를 멈춘 사람인가? 나는 효과적인 기도생활의 기본 요소인 감사함과 찬양을 게을리 하고 있는가? 내가 주님께 감사로 제사드릴 때마다 진정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임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나는 찬양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를 경험하고 있는가?”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권능에 대한 불신’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소홀히 하는 것은 하나님 섬기기를 소홀히 하는 것이요, 우리의 신앙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기 원한다면 찬양의 자세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온 마음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힘이 들더라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께 은혜받기를 원한다면, 열심히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힘차게 불러야 합니다. 온 마음으로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찬양을 통해서 가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이 찬양할 수 있습니다.
본문 3절,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5절, “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사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어 형통케 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자랑하고 찬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말씀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실패와 고난 가운데 빠졌던 조상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고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이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에 찬양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에 찬양할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고난 중에 있습니까? 고난 중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찬송하십시오. 찬송은 여러분을 고난의 긴 터널을 지날 수 있도록 힘을 주고, 소망을 줄 것입니다.
  기독교 교회사를 보면, 가장 은혜로운 찬송가들은 가장 어려운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주일 낮예배 시 불렀던 66장(구 20장) ‘다 감사드리세’는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이었던 독일의 루터파 교회 목사 마르틴 린카르트가 작사하였습니다. 그는 30년 전쟁의 포로로 피난민들이 그의 고향인 아일렌베르그로 쏟아져 들어오던 무렵,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기근과 역병이 기세를 부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다. 린카르트 목사는 하루에 장례식을 50회씩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스웨덴 사람들이 종전의 대가로 엄청난 배상금을 요청했을 때, 린카르트 목사는 일신의 안녕을 떨쳐버리고 과감히 협상에 나섰습니다. 마침내 두 나라간의 적대감이 종식되고 고통의 시기는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린카르트 목사가 훌륭한 찬송가 작사를 한 것은 그 고된 체험을 겪으면서입니다. “다 감사드리세 온 맘을 주게 바쳐 / 그 섭리 놀라와 온 세상 기뻐하네 / 예부터 주신 복 한없는 그 사랑 / 선물로 주시네 이제와 영원히”
고난 중에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찬송 가사를 썼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편을 보면, 시인들이 자신들의 삶의 상황이 고통스럽고, 억울하고, 외롭고, 슬프고, 힘들 때에, 먼저 하나님께 하소연을 하였고, 그리고 나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왜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을 꼭 붙잡아 주시고, 약속을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찬양으로 발전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사람은 자신이 처해진 현실, 환경, 조건에서 비록 근심이 있고, 고난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찬송합니다. 약속을 이루실 것을 믿기 때문에 그 믿음이 감사로, 찬양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믿음으로 찬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고난 중에 구원해 주십니다.
  이사야 61장 3절에는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찬양은 근심을 제거하는 하나님께서 주신 옷입니다. 찬양과 근심은 한 마음 속에 같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근심으로 가득 차든지, 찬양으로 가득 차든지 둘 중의 하나만 남습니다. 찬양은 근심뿐만 아니라 불안, 두려움, 의심, 낙심, 불평, 원망, 각종 부정적인 감정과 마음을 벗어 버리게 하는 옷입니다. 교우 여러분, 근심이 있습니까? 두려움이 있습니까? 불평, 원망, 낙심이 있습니까? 찬송을 부르십시오.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처음에는 찬양이 잘 안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찬송의 가사의 의미를 생각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을 드리십시오. 어느 순간 평안의 물결이 밀려들어올 것입니다. 근심, 불안, 두려움, 불평, 원망, 낙심이 사라지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소망으로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맛보시기를 바랍니다. 찬양생활의 은혜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장로님 가정은 부부싸움을 한 후에 찬송으로 부부싸움을 극복한다고 합니다. 부부 싸움을 하고 남편이 화가 나서 나가면 부인은 애절한 목소리로, ‘돌아와 돌아와.... 집을 나간 자여 어서 와 돌아 와’(525장)를 부른답니다. 그러면 밖에 나가 화를 푼 남편이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도 외로와 정처없이 다니니 ...(387장)‘를 부르면서 문을 두드린 답니다. 그러면 부인은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로......넓은 가슴은 하늘보다 넓고 넓어‘(527장)를 부르면 다시 화목을 회복한답니다. 누가 유머로 만든 이야기일 수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부르는 찬송을 보면,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에 맞는 찬송이 다 있습니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 맞는 찬송을 찾아 부르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거기에 맞는 은혜를 주십니다. 고난 중에서 부르는 찬송은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찬송을 부르면, 우리의 믿음이 더욱 굳건해지고 견고해집니다. 하나님께 더욱 집중하게 해 줍니다. 또한 찬송의 곡과 가사와 그 속에 담긴 영성이 내 속으로 들어와 기쁨과 용기와 평안과 소망을 줍니다. 또 찬송을 부르면 우리 안에 사랑을 채워주고, 사랑이 솟아나게 하고, 사랑을 밖으로 나눌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찬송은 우울하고 슬픈 마음을 위로해 주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지저분한 생각들을 정리하여 정결케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까? 그 하나님께서 고난 중에 있는 우리에게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줄 믿고 찬양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누가 찬양할 수 있습니까?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여러분이,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여러분이,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여러분이 찬양할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찬양 생활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1년 11월 13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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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히브리서 12장 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누가 크냐?
· 일시  2012년 03월 11일
· 말씀  누가복음 22장 24-3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 일시  2012년 03월 04일
· 말씀  고린도전서 2장 1-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만약
· 일시  2012년 02월 26일
· 말씀  요한복음 11장 17-44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사람
· 일시  2012년 02월 19일
· 말씀  사도행전 10장 1-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고넬료의 열심
· 일시  2012년 02월 12일
· 말씀  사도행전 10장 24-3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고넬료의 가정
· 일시  2012년 02월 05일
· 말씀  사도행전 10장 1-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그가 경건하여
· 일시  2012년 01월 29일
· 말씀  사도행전 10장 1-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우리는 세상의 빛 (ii)
· 일시  2012년 01월 22일
· 말씀  마태복음 15장 14-16절 말씀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우리는 세상의 빛 (i)
· 일시  2012년 01월 15일
· 말씀  마태복음 5장 14-16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우리는 세상의 소금 (ii)
· 일시  2012년 01월 08일
· 말씀  마태복음 5장 13절 말씀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우리는 세상의 소금 (i)
· 일시  2012년 01월 01일
· 말씀  마태복음 5장 13절 말씀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빛이 있으라
· 일시  2011년 12월 31일
· 말씀  창세기 1장 1~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소통하러 오신 하나님
· 일시  2011년 12월 25일
· 말씀  마태복음 2장 1-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 일시  2011년 12월 18일
· 말씀  로마서 15장 12-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구주
· 일시  2011년 12월 11일
· 말씀  누가복음 1장 46-56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의 나라
· 일시  2011년 12월 04일
· 말씀  마가복음 1장 14-1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진짜와 가짜
· 일시  2011년 11월 27일
· 말씀  요한복음 1장 1-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믿는 자가 되라
· 일시  2011년 11월 20일
· 말씀  요한복음 20장 24~29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누가 찬양할 수 있습니까 ?
· 일시  2011년 11월 13일
· 말씀  시편 106편 1~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자족의 비결
· 일시  2011년 11월 06일
· 말씀  빌립보서 4장 10-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코람데오
· 일시  2011년 10월 30일
· 말씀  로마서 1장 17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신앙생활에 대한 오해 IV (기도)
· 일시  2011년 10월 23일
· 말씀  요한일서 5장 13-1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은혜 아래 사는 사람
· 일시  2011년 10월 16일
· 말씀  로마서 6장 12~14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신앙생활에 대한 오해 III
· 일시  2011년 10월 09일
· 말씀  로마서 5장 17~21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새 언약의 몸과 피
· 일시  2011년 10월 02일
· 말씀  마태복음 26장 19-29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신앙생활에 대한 오해 II
· 일시  2011년 09월 25일
· 말씀  미가 7장 18-20절
· 설교  신문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