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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인생  [2787]
· 설교 일자 : 2012년 06월 03일
· 본문 말씀 : 요한복음 3장 1-15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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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인생 (요한복음 3장 1-15절)
  오래전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출연하여 퀴즈를 푸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 때문에 전국이 웃음바다가 된 일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퀴즈대회에 나와서 스피드 퀴즈를 푸는 과정에서 생긴 일입니다. 여러분, 스피드 퀴즈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정해진 시간 안에 한 사람이 단어를 설명하면 다른 사람이 그 단어를 맞추는 퀴즈입니다. 그 할아버지 할머니가 스피드 퀴즈문제를 푸는데 ‘천생연분’ 이라는 단어를 설명하고 맞추어야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당신하고 나하고와 같은 부부를 뭐라고 하지?”라고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서슴없이 “원수!”라고 대답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아니, 그거 말고 네 글자로 된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다시 대답했습니다. “평생원수!” 그 두 분이 그 후에 잘살고 계실까 궁금합니다.
  저는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을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퀴즈 프로그램에 출전해 봤거나 출전해 보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예선에서 떨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실력을 겨루는 퀴즈 프로그램도 있고, 한 사람이 백명을 상대로 문제를 푸는 프로그램도 있고, 고등학생 대상으로 하는 골든벨, 시청자들이 문자로 답을 보내면 즉시 정답자 중에 추첨을 하여 상금을 주는 퀴즈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퀴즈 프로그램을 집에서 보면서 마치 출전한 선수인양 풀어봅니다. 그 때마다 느끼는 것은 우리 인생이 퀴즈를 푸는 것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퀴즈란 문제를 내고 답을 알아맞히는 놀이, 또는 풀어야 할 어려운 문제를 일컬어 퀴즈라고 합니다. 인생은 문제를 푸는 퀴즈 대회와도 같습니다. 한 문제를 풀면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인생이라는 퀴즈는 절대로 쉬운 문제만 출제가 되는 퀴즈가 아닙니다. 어려운 문제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 어려운 문제라는 것도 쉽다 어렵다는 기준의 어려운 문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하기가 어려운 문제도 있습니다. 감당하기가 어려운 문제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일 더하기 일은 몇입니까?’와 같은 문제만 있다면 얼마나 쉽겠습니까? 이 말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내가 10시간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도 10시간 일했습니다. 그러면 20시간 일한 만큼의 대가, 보상이 내게 돌아와야 합니다. 그것은 수학적인 계산에 의해 나오는 정확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살면서 수학적인 계산처럼 인생 결과가 항상 정확하게 딱 떨어집니까? 내가 돈을 들이고, 땀을 쏟고, 시간을 사용하여 어떤 사람을 신뢰하여 마음까지 공을 들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기꾼인 줄 뒤늦게 알고 난 후에는 1 더하기 1은 2의 결과는커녕 1 더하기 1은 마이너스 2, 마이너스 10이 되어 돌아오는 일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생에서 발생하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세상 사람들 가운데 문제가 없는 사람이 없고, 사연이 없는 삶이 없습니다. 모두 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람과 교제하면서 친밀해지고, 어떤 상황이 되면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게 됩니다. 그 때 자기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동안 살아 온 이야기,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 지를 나누게 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각자의 삶의 보따리를 풀게 됩니다. 그런데 보따리를 풀어 서로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문제가 없고, 사연이 없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다 아프고 시리고 기구한 사연 덩어리들이 보따리 안에 있습니다. 그것이 건강의 문제든, 경제적 문제든, 직장의 문제든, 자식의 문제든, 부부의 문제든, 형제간, 가족 간의 문제든, 사람과의 문제든 문제가 없는 사람이 없고, 그 문제로 인한 사연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겪는 심각한 인생의 문제들은 어떻게 하면 배부르게 먹고 살까?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문제도 궁극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무의미한 삶의 문제입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자신이 살고 있는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알지 못해 열심히 살고 있지만 영혼 깊숙이에서 부터 나오는 만족이 없습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인생인지를 알지 못하니까, 자신의 삶의 목표가 맞는지, 숨 가쁘게 죽을 각오로 살고는 있지만 공허합니다. 인생의 진정한 목적을 깨닫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프랑스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는 그의 책 [21세기 사전]에서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시대는 ‘유목민의 시대’라고 정의했습니다. 유목민의 시대라는 것은 몽골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같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최고급아파트에서 최고의 시설을 누리면서 살지만 정신과 마음은 유목민처럼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유목민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몰라 그저 당장 눈앞의 것만을 바라보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목민이 양에게 풀을 뜯길 곳만 있다면 어디든지 가는 것처럼 이제 21세기 사람들은 여기가 좋다하면 그곳으로 몰려가고, 저기가 괜찮다 하면 저곳으로 몰려가는 그런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미있다 하면 모두 따라하고, 저것이 쾌감을 준다더라 하면 모두 그 쾌락을 위해서는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몰려간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삶의 권태가 생깁니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인식이 없으니까 삶이 무료해지고, 따분해집니다. 지루해집니다. 삶이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니까 삶의 재미가 없습니다. 재미가 없다는 말은 즐겁지 않고 행복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또한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의 문제입니다. 현대 사회는 점점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그리고 과학기술 발달로 인해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함께 하는 시간보다 기계나 컴퓨터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고, 그래서 외로움을 더욱 더 느낍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서 사는 싱글족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은 외로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릅니다. 노후의 외로움도 그렇습니다. 사람은 많은데 마음을 열고 삶을 나눌 사람이 없다고 느끼는 외로움의 문제입니다.
  죄의식으로 인한 불안과 무력감의 문제입니다. 양심이 조금이라도 살아 있는 사람은 그 마음으로나 생각으로나 입으로나 행동으로 죄를 짓고 난 후에 자신의 영혼이 불안을 느끼고 그 결과 수치심과 죄책감, 그리고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불안이 떠나지 않습니다. 다른 그 무엇으로 만족을 얻는다고 해도 존재론적인 불안, 영혼의 불안으로부터 시작한 불안은 근심, 걱정, 두려움으로 커져갑니다.
또한 우리 모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문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아무리 건강식품이 좋은 것이 나오고, 의학이 발달하고, 120살 까지 살 수 있다고 해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문제는 풀고 해결하라고 있는 것이듯, 우리의 삶의 문제도 풀어야 합니다. 해결해야 합니다. 문제를 해결해야 평안이 찾아오고,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문제를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성숙한 인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설교 서두에 이야기한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문제를 풀면서 두 분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가 드러났습니다. 천생연분 사이가 아니라 평생원수 사이인 것이 드러났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에, 대전 MBC방송에서 토요일 오후에 스피드 퀴즈 대회를 방송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토요일에 젊은 출연자들의 퀴즈 출전이 방송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사귀고 있는 연인 사이로 출전을 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설명하고 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어진 단어가 ‘다방’이 나왔습니다. 남자가 설명을 했습니다. “우리가 자주 가는 곳! 어디지?” 여자는 서슴없이 대답을 했습니다. “여관!” “아니, 거기 말고! ” 여자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둘이 자주 가는 곳이라고는 여관밖에 없는 것처럼 다른 곳은 생각이 나지 않는 표정이었습니다. 그 남자와 여자는 결국 둘이 결혼하여 살고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문제를 풀다보니까 속에 있는 내용이 드러납니다. 실력이 드러나고, 지식이 드러나고, 성격이 드러나고, 경험이 드러납니다. 지난주에 있었던 교회학교 교사골든벨 퀴즈 때에도 우리 교회학교 교사들의 성경 실력이 다 드러났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모습을 드러나게 합니다.


  우리 인생을 살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 가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인생관, 그 사람의 삶의 자세,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문제를 만나면 피하려고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징징대기만 합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도움만을 구합니다. 어떤 사람은 무작정 문제와 부딪힙니다. 그래서 문제를 더 크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은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해결하려고 합니다. 시인 류시화의 수필집,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중에는, 아침에 거울을 보면서 ‘노 프라블럼’이라고 열 번씩 외치라고 합니다. ‘문제없어!’라고 스스로에게 외치라는 말입니다. 잠자기 전에도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자신의 노트에도 크게 ‘노 프라블럼’이라고 써놓고, 누구를 만나더라도, 누가 어떤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어도 ‘노 프라블럼’이라고 말하고 설명해주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에서 문제될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 정말 그럴까요? 그렇게 말하면 ‘노 프라블럼!’이라는 말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까요? 물론 우리가 어떤 말을 하면, 그 말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영향을 줍니다. 우리의 마음에 있는 생각이 말로 표현됩니다. 상호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적극적인 사고방식에 의해 적극적인 말을 하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긍정적인 말을 하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의 자세와 삶의 태도를 갖게 됩니다. 그러면 삶의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도 생기고 능력도 생깁니다. 실제로 신기하게도 안 된다고 말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때와는 달리 긍정적인 결과가 나옵니다. 문제를 내가 해결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이런 긍정적인 자세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문제는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우리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가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능력을 동원해도, 긍정적인 사고와 자세를 아무리 가져도 해결이 안 되는 인생의 문제가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 나오는 니고데모라는 하는 사람은 예수님 당시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이었습니다. 그 구성원은 71명 정도였고, 고위층 제사장들과 율법 학자, 백성의 지도자인 원로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 당시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이라고 하면 사회적으로 고위층일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성공한 인생이었습니다. 모두 부러워할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밤에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밤에 몰래 찾아왔습니다. 그가 그런 지위와 해박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은 깊은 영적인 고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인생의 문제, 영혼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니고데모를 통하여 우리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 사람이 겉보기에 모두 갖추어졌다고 하더라도 마음속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이 세상의 것들을 모두 가졌다고 하더라도 죽음의 문제, 영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의 삶은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고, 결국 허무한 인생으로 끝을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니고데모에게 우리가 배워야 할 삶의 자세가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우연히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 진지하려고 했고, 예수님을 찾아 와 자신의 삶에 해답을 얻어야 할 질문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답을 가지고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공부도 했고, 지식도 쌓았고, 사회적인 경험도 풍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 가지고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적어도 니고데모는 자신의 삶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처음 교회에 나오신 분들, 여러분의 삶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신약성서 복음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예수님께 찾아온 모든 사람들, 예수님께서 만난 모든 사람들의 인생 문제를 해결해 주신 사건과 내용을 기록한 성경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생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말씀을 가르치셨고, 인생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인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의 진리를 선포하셨고, 그리고 각종 문제들, 질병의 문제, 건강의 문제, 배고픔의 문제, 근심, 불안, 두려움의 문제, 살아가면서 해결해야 할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특히 죄와 죽음의 문제 해결은 결정적인 문제 해결입니다.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저는 혈액형을 가지고 사람을 구분하여 A형은 이렇고, B형은 저렇고 AB형은 어떻고 O형은 저떻다고 단정 짓는 것을 무척 싫어합니다.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혈액형에 따라 네 줄로 세워놓는 것 같고, 혈액형이 사람의 성격, 성품, 인격, 삶을 결정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에 대해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너무도 단순하게 판단하고 단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A형은 ‘소세지’라고 한답니다. 성격이 소심하고 세심하며 지랄 같다고 해서 ‘소세지’라고 한다는 군요. B형은 ‘오이지’랍니다. 오만하고 이기적이며 지랄 같다고 해서 ‘오이지’라고 한답니다. O형은 ‘단무지’랍니다. 단순하고 무식하며 지랄 같다고 해서 ‘단무지’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마지막 AB형이 압권입니다. 성격이 지랄 같고 지랄 같고 또 지랄 같아서 일명 ‘쓰리지’형이라고 한답니다. 이 말을 듣는 여러분들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의 혈액형이 다 안 좋고 지랄 같다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이 유머에 중요한 핵심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죄로 오염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 가운데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장 23절에 말씀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타락하여 후손이 인간 모두는 타락한 본성을 유전처럼 이어 받아 인간 세상에 죄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삶에 우리를 힘들게 하고 슬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불행을 가져다주는 것의 뿌리에는 죄가 있습니다. 타락한 본성에서 나오는 죄성으로 인해 인간 세상이 죄로 오염되었고, 이 세상 속에 있는 죄의 실재가 세상의 원리와 이치를 타락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진정한 평안과 기쁨과 행복은 없습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 사회와 국가에,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는 고통뿐인 인생으로 끝나게 됩니다. 여러분, 오염된 물, 오염된 공기, 오염된 땅을 오염으로부터 회복시키지 않으면 결국 고통과 불행과 죽음과 파멸 밖에 기다리는 것이 없는 것처럼, 죄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과 영혼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오염시키고 파괴시키고 죽음과 멸망으로 몰고 갑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장 15절 말씀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6장 23절 말씀입니다. 로마서 6장 20절 이하에, “과거에 하나님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살았을 때, 여러분은 무엇이 바른 생각인지, 무엇이 바른 행동인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 삶을 자유로운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런 삶에서 여러분이 얻은 것은 대체 무엇이었나요? 그런 삶이 여러분을 마침내 데려간 곳은 어디였나요? 막다른 길뿐이었습니다. ...죄를 위해 평생 애써 보십시오. 결국 여러분이 받게 될 연금은 죽음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께서 전해 주시는 참된 삶, 영원한 삶입니다.” - [더 메시지], 유진 피터슨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해결해 주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찾아와 하늘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고 있지만, 땅의 일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산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산다면 참으로 형이하학적인 사람, 육적인 사람, 현세적인 사람입니다. 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눈에 보이는 것이 움직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순간적인 것에만 집중하고 집착하며 살고 있다면 참으로 어리석고 답답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하늘나라의 원리,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를 믿고 준비해야 합니다. 신령한 세계를 이 땅에서 맛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영원한 세계, 영원한 삶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중국집이나 한식집에 가면 코스요리가 있습니다. 소위 풀코스 요리를 먹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무슨 음식이 몇 가지나 나오는 줄 모르고 코스 앞부분에 나오는 음식을 열심히 먹다보면 메인 요리, 뒤쪽에 나오는 맛있고 진귀한 음식이 나올 때에는 벌써 배가 불러 제대로 못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메인 요리를 먹을 수 있는 배속 빈자리를 준비해 두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이 땅의 일에 묶여서 영원한 나라를 위한 준비를 하지 못한다면 참으로 어리석고 불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이 전부인양 살아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영원한 세상이 있습니다. 이 영원한 세상과 신령한 세계와 하늘의 일은 믿음으로 알 수 있고, 믿음으로 이해될 수 있고, 믿음으로 경험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거듭남의 비밀을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나라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영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문제를 해결하라고만 말씀하시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고,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 죽음으로 우리 대신 죄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리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후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이 땅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10일 후에, 성령 하나님께서 강림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믿음으로 마음속에 모시기를 원하면 우리 안에 충만히 거하시면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기독교 신앙은 죄로 말미암아 깨어지고 잃어버린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성자 하나님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성령 하나님을 마음에 충만히 모시고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가는 삶입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고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과 상관없는 생각과 마음과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그의 몸이 교회에 와 있을지라도, 그가 아무리 목사일지라도, 장로일지라도, 교회에 오래 다녔다할지라도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는 문제가 없습니까? 정말로 없다면 참으로 부럽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음에도 문제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면 곧 닥칠 문제의 불행한 결과를 겪을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더 솔직해 지시고, 더 진지해 지시고, 더 지혜로워 지시기 바랍니다.
  내 힘만으로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도 도움은 되지만, 우리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신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돕기 위해 오신 성령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문제가 생긴 후에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일생 동안 예수님과 함께 문제를 없애고, 잘 해결하시고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2012년 06월 03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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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러움
· 일시  2012년 09월 16일
· 말씀  빌립보서 1장 20-21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예수님도 우셨습니다
· 일시  2012년 09월 09일
· 말씀  요한복음 11장 31~3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빛을 따르는 사람
· 일시  2012년 09월 02일
· 말씀  요한복음 8장 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넘어진 사람에게
· 일시  2012년 08월 26일
· 말씀  시편 37편 23-24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사람을 찾습니다
· 일시  2012년 08월 19일
· 말씀  사도행전 11장 22~26절
· 설교  이동훈 목사
   
주일예배 설교
 희망으로 사는 사람
· 일시  2012년 08월 12일
· 말씀  마가복음 4장 10-2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의 심판
· 일시  2012년 08월 05일
· 말씀  시편 7편 8-17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영적 다이어트
· 일시  2012년 07월 22일
· 말씀  디모데전서 6장 3-1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잃어버린 우산
· 일시  2012년 07월 02일
· 말씀  디모데후서 3장 1-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지름길은 없습니다.
· 일시  2012년 07월 15일
· 말씀  누가복음 12장 35-4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강을 건너는 삶
· 일시  2012년 07월 08일
· 말씀  여호수아 24장 14-1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안디옥 교회처럼
· 일시  2012년 07월 01일
· 말씀  사도행전 13장 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광야의 은혜
· 일시  2012년 06월 24일
· 말씀  신명기 8장 2~6절
· 설교  장시옥 목사
   
주일예배 설교
 깨달음의 은혜
· 일시  2012년 06월 17일
· 말씀  마태복음 13장 10-17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깨어짐의 은혜
· 일시  2012년 06월 10일
· 말씀  출애굽기 3장 1~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퀴즈 인생
· 일시  2012년 06월 03일
· 말씀  요한복음 3장 1-1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오직 성령으로
· 일시  2012년 05월 27일
· 말씀  스라랴 4장 1-6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영원한 청년
· 일시  2012년 05월 20일
· 말씀  여호수아 14장 6-1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큰 복음에 올인하라 !
· 일시  2012년 05월 13일
· 말씀  마태복음 13장 44~46절
· 설교  정지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가정의 회복
· 일시  2012년 05월 06일
· 말씀  에베소서 5장 31-6장 4절
· 설교  신문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