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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들을 닫은 제자들  [2716]
· 설교 일자 : 2012년 04월 15일
· 본문 말씀 : 요한복음 20장 19-23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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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들을 닫은 제자들 (요한복음 20장 19-23절)
  스페인 왕 가운데 페르디난도 5세라고 하는 왕이 있었는데, 어떤 점쟁이가 왕에게 “왕께서는 '마드리갈'이라고 하는 곳에 아예 가지 마세요. 그 '마드리갈'에서 왕은 장차 죽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드리갈에는 왕의 별궁이 있었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죽을까봐 두려워서 자기의 좋은 궁전을 지어 놓고도 21년 동안 거기를 못 갔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스페인 지방을 여행하다가 어떤 조그만 촌락에서 하룻밤 자면서 그만 병이 났습니다. 왕은 이 지방이 어떤 지방이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이 곳은 '마드갈레'입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마드리갈'과 비슷했습니다. 사실은 '마드리갈'은 아니고 비슷한 다른 지역 이름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왕은 '아이고 나는 죽겠구나!' 하더니 며칠 안 되어서 죽었다고 합니다. 왕은 병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닙니다. 죽음의 두려움이 왕을 죽게 했습니다.
여러분, 2차 세계대전 때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보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심장병 때문에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반드시 불행한 결과를 맞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까 예수님의 빈무덤을 목격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전해 들었던 그날 저녁에 제자들이 어느 집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여 있는 곳의 문들을 닫았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제자들은 왜 문들을 닫았을까요? 한 개의 문을 닫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들을 다 닫았습니다. 문이라는 문을 다 꼭꼭 닫고 그 안에 모여 있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제자들이 모여 있어도 서로에게서 큰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치던 유대인들이 두려웠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불을 쬐면서 예수님을 따라 갔던 베드로에게 ‘당신도 그와 한 패가 아니냐?’고 다그쳐 물었던 그들, 그들에게 예수님의 제자인 것이 탄로가 나면 그 다음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를 걱정하여 두려워했습니다.
  제자들의 두려움은 예수님께서 잡히시자 두려움이 더욱 커져 다들 도망가게 되었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 제자들을 모아 놓고 근심하며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한 14:1)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 14:27)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 16:33)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을 격려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제자들의 근심은 두려움이 되었고, 그 두려움은 제자들을 집 안에 가두어버렸습니다.

  두려움은 위력이 있습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지배하는 힘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두려움을 길모퉁이의 괴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느 날 길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길모퉁이에 있는 괴물을 만나 기겁을 하고 정신이 다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초청하지 않아도 찾아옵니다. 우리를 찾아와 조폭처럼 우리를 마구 힘들게 합니다.
  인간의 두려움을 연구한 휴 미실딘 박사는 인간의 두려움은 영아기의 3대 기초적 두려움의 연장이라고 말합니다. 떨어지는 두려움(Fear of falling), 큰 소리에 대한 두려움(Fear of loud noise), 버려지는 두려움(Fear of being abandoned)이 그것입니다. 영아기의 ‘떨어지는 두려움’은 성인이 되면서 실패의 두려움,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사고·사건에 대한 두려움이 된다고 합니다. ‘큰 소리에 대한 두려움’은 어른이 되어도 비판에 대한 두려움, 폭력이나 침범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이어집니다. ‘버려지는 두려움’은 인간 최대의 내적 두려움입니다. 고독과 불안이 주는 두려움, 헤어지는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 등으로 연결됩니다. 결국 아기 때부터의 기본적 두려움이 평생 계속된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는 평생 살아가면서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고, 두려움과 맞서 싸워야 하고, 두려움을 극복하여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두려움의 증상을 공포증이라고 합니다. 두려움의 증상은 참으로 다양하고 많습니다. 여러분, 색깔공포증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공포의 전형적인 이유가 외부 또는 내부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처럼, 이 공포증도 그렇습니다. 색깔에 관한 참담한 사건, 문화적 경험, 특히 가슴속에 상처를 받거나 기억에 남는 공포스러운 사건을 겪은 경우에 해당됩니다. 예를 들어 특정색의 동물이나 사람에게 해를 당했을 경우, 그 색에 대한 과도한 파괴적 성향이나 정신적 이상 징후를 보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색깔에 대한 공포는 색깔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것과 연상되는 것 때문에 공포증상을 보이는 것입니다.
  색깔 공포증이 없는 사람은 왜 그런 것에 공포를 느끼느냐고 하겠지만, 당사자에게는 심각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수많은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확인되어 정리된 것만 하더라도 600가지가 넘습니다. 아마도 더 많은 공포증이 있을 것입니다. 목욕공포증으로부터 시작하여 종이 공포증, 고소 공포증, 밀폐 공간 공포증, 거울공포증, 교회공포증을 앓는 사람도 있더군요. 여러분은 어떤 공포증이 있습니까? 제 아내는 나방공포증이 있습니다. 나방이 날아오면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그러나 바퀴벌레는 잘 잡습니다. 공포, 두려움이란 이런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공포증이 되어 그를 괴롭힙니다. 그것과 연관된 것만 생각해도 불안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두려움의 방으로 가두어 버립니다. 공포, 두려움이란 특정 유형의 공포증이 있고, 일상적인 공포가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공포, 두려움입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 어떤 일이 실패할 것 같은 두려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병원에 가서 건강진단을 받은 후에 결과를 들으러 가면서 갖게 되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 등이 있습니다.
   두려움, 공포심이 사람의 마음을 엄습하면 불안합니다. 극심한 불안 증세를 보입니다. 신경이 쇠약해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집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혈압은 높아지고, 위액 분비가 잘 안 되어서 소화도 안 되고, 구역질이 나기도 하고, 당뇨병이 생기기 쉽습니다. 이렇게 되어서 실상은 세균에 의한 병보다도 공포심이 원인이 되어서 병나는 이가 더 많고, 죽는 사람도 더 많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두려움은 우리의 감정과 마음과 생각을 가두어 버립니다. 두려움이라는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그래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저 두려움 속에서 떨고 낙심하고 절망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두려움, 공포심이 우리 인간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극심한 고민을 하셨는데, 왜 고민을 하셨을까요? 예수님도 고난과 죽음의 두려움이 느껴지자 그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과 구원의 역사를 이루셔야 하는 사명과의 사이에서 고민과 극심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을 맡기심으로 고난과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셨고,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견디어내시고 마침내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두려움을 너무도 잘 아십니다. 제자들이 왜 두려워하고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모든 문을 꼭꼭 닫고 숨어있는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제자들을 찾아 오셔서 하신 첫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입니다. 불안과 두려움 속에 있는 제자들에게 평안을 주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평안이 필요했습니다. 우리에게도 평안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평안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평안을 받아 누릴 수 있을까요? 두려움을 이기고 평안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려움을 이기려면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을 떠올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약속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4장에 보면, 어느 날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배 안에 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예수님은 피곤하셨는지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광풍으로 인해 곧 배가 어떻게 되어 죽게 되었다고 무서워하며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예수님께서 깨신 후,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졌습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꾸짖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죽을 것 같아 불안했고, 멈추지 않는 광풍과 배 안으로 물이 들어오자 죽음의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잊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잊고 있었고, 결국 죽음의 위협이 닥치자 두려움에 휩싸여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이렇게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들도 이렇게 두려움에 시달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더 더욱 그랬습니다. 요즘 새벽기도회 때에 출애굽기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세를 통해서 인도하셨는데, 홍해바다 앞으로 이끌고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쪽 블레셋이 거주하는 땅 쪽으로 가면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이 훨씬 단축되는 직선거리였지만 그곳으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과 전쟁할 만큼 전쟁 능력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홍해바다를 건너야 했는데, 그때 마침 바로 왕이 그의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괜히 놔주었다고 다시 잡으러 달려옵니다. 그야말로 이스라엘은 진퇴양난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점 가까이 오는 바로와 그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부르짖음은 기도의 부르짖음이 아니라 두려움에 겁에 질린 탄식과 신음과 그냥 호소였습니다. 믿음의 기도를 드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신이시여! 어찌하여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라고 허공에다 대고 푸념하듯이, 혼잣말 하듯이, 들으면 좋고 아니면 할 수 없고! 그런 식의 부르짖음이었습니다. 그들을 향해 지도자 모세는 지도자다운 말을 백성들에게 합니다. 출애굽기 14장 13, 14절,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에는 홍해바다, 뒤에는 바로 군대를 만나 두려움이 엄습하자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어떻게 애굽 땅에서 빼내셨는지, 애굽 땅에서 하나님께서 10가지 재앙으로 애굽 사람들에게 어떤 능력을 보여 주셨는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계시고, 함께 하고 계신다는 징표로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떠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기대하고 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 지를 믿고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던 모세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으로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중 10명은 그곳에서 아낙 자손을 보았습니다. 아낙 자손이란 잔학한 약탈을 일삼는 거인들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낙 자손을 보는 순간, 두려움이 포로가 되어 전쟁도 하기 전에 이미 패배한 마음으로 돌아와 보고하였습니다. 두려움이 그들의 마음을 점령한 순간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 없었고, 하나님의 약속도 잊어버렸고, 하나님의 능력도,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라는 믿음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우리의 믿음에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던 경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능력을 기억하여 그것을 믿음의 디딤돌로 삼아야 합니다.
그 결과 믿음이 더 자라게 됩니다. 큰 믿음이 됩니다. 디딤돌 위의 반석 같은 믿음이 됩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기억력에 문제가 있지는 않습니까?
  어느 집에 불이 났습니다. 온 가족이 당황해서 허둥댔습니다. 아버지가 머릿속에 퍼뜩 떠오르는 게 있는지 갑자기 외쳤습니다. “야, 빨리 119에 신고해야지. 119가 몇 번이냐?” 그러자 아들이 아버지를 붙잡으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런 때일수록 침착하셔야 돼요! 그런데 119가 몇 번이었더라?” 아들도 기억이 나지 않는지 잠깐 생각하다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진정하세요. 제가 114에 전화해서 119가 몇 번이냐고 물어볼게요.” 그러더랍니다.
  며칠 전, 정신과 의사가 텔레비전에 나와 방청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내가 요즘 기억력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 의사가 하는 말이, “손을 드신 분은 문제가 없습니다. 진짜 문제가 있는 분은 자신이 기억력에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있는지 몰라 손을 안 든 분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치매에 걸리면 그 질문에 손을 안 든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한 번 묻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믿음의 기억력에 문제가 없습니까?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하나님을 잘 기억하십니까? 예수님을 잘 기억하십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까? 예수님을 믿고 두려움을 이겨나갑니까? 아니면 영적 치매에 걸려서 전혀 기억도 나지 않고,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조차 문제를 못 느끼면서 살고 있지는 않겠지요.


  두려움은 하나님을 만나는 현장입니다. 두려움이 두려움으로 남아있으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문들을 닫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심으로 그들에게 평안이 전해지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던 것처럼, 우리는 두려움이 찾아오는 순간을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신앙의 선배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다윗을 살펴봅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시편이 있습니다. 시편 23편입니다. 다윗의 시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그 다음 4절 말씀을 보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시를 깊이 묵상하면서 다윗은 정말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면서 두려움이 전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시는 누가 다윗에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갈 때에 두려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라고 물어서 대답한 시가 아닙니다. 자기의 신앙고백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면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에 휩싸여 두려움에 포위가 되고, 두려움에 지배를 받고, 두려움 때문에 옴짝 달싹 못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겨내고, 두려움을 날려버리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을 고백한 시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며 광야에서 수많은 일들을 겪었고, 사울 왕을 피해 블레셋으로 도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땅 아기스 왕에게로 갔는데, 아기스 왕 신하들이 다윗을 알아보고 경계심 가득한 보고를 왕에게 합니다. 다윗이 그 신하의 말을 듣고서 아기스 왕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앞에서 다윗이 미친 척 행동을 하고, 침을 수염에 질질 흘리며 대문을 손으로 그적거리며, 그야말로 아기스 왕에게 미치광이로 보일 정도로 미친 짓을 했습니다. 그 결과 아기스 왕이 미친 자를 자기 집에 들어오게 했다고 노발대발하니까 신하들은 다윗을 내쫓고 다윗은 다른 곳으로 도망을 했습니다.
  시편 56편은 그 때 다윗이 쓴 시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3절,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4절,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11절,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다윗은 두려움을 느낄 때, 하나님의 의지했습니다. 두려움의 때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받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근심, 걱정을 가리켜 ‘작은 두려움의 시냇물’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음에서 근심과 걱정이라는 작은 시냇물이 흐르다가 다른 생각들과 만나 거대한 두려움의 강물이 되고, 두려움의 바다가 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의심의 작은 물방울이 우리 머릿속에 흘러 마침내 두려움이라는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우리의 기능을 마비시켜 불구자가 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을 불신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사탄이 사용하는 도구 중의 중요한 도구입니다. 사탄은 교묘히 이런 두려움을 이용하여 사람의 마음을 빼앗고 장악합니다. 지배합니다. 가지고 놉니다. 미신적인 것, 점쟁이, 무당, 우상숭배에는 반드시 두려움의 악영이 활동합니다.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예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고 흔들리기 때문에 생깁니다. 예수님께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믿고 사용하십시오. 이렇게 선포하십시오. “나를 괴롭히는 두려움의 영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게서 떠날찌어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께서 나의 주이시며, 나와 함께 하시니 두려움의 영은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 내게서 떠날찌어다!” 그리고 평안에 관한 찬송을 부르십시오. 평안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을 사모하십시오.
  부활신앙으로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나뉘게 하는 근심 걱정과 불안, 그리고 우리를 사로잡아 마음의 문들을 닫게 하고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두려움을 이기면서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다시 살아나시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두려움을 이기도록 주시는 주님의 평안을 받아 누리는 삶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보는 어린 소녀가 있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창공은 신기하고 놀라운 광경이었고 여행으로 마음은 들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행도중 비행기가 갑자기 공중에서 불연속선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공기 진공상태로 밀도나 온도, 습도, 풍속, 풍향 등의 기상요소가 다른 두 기층이 대립되는 상태입니다. 그 상태를 만나면 비행기가 갑자기 10-20m씩 급작스럽게 하강하게 되고 기체가 안정을 잃게 됩니다. 기내에 있던 손님들은 모두 놀라서 사색이 되어 십자가를 붙잡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두려움으로 회개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비행기가 심하게 요동할 때마다 맨 앞좌석에 앉아 있던 소녀는 무척 재미있다는 듯 한 표정이었습니다. 다른 승객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얼마 뒤 비행기가 다시 안정권 안으로 들어온 뒤 손님들은 소녀에게 다가가서 이상스럽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비행기가 진동하며 무서운 속도로 떨어질 때 무섭지 않더냐?” “아뇨, 전혀 무섭지 않았어요.” “우리는 모두 무서웠는데 너는 왜 전혀 무섭지 않았지?” “그건요 우리 아빠가 이 비행기를 조종하고 있거든요.” 그렇습니다.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주관하십니다. 인도하십니다. 함께 하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이 엄습할 때에도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신앙인은 오히려 근심을 기도로, 두려움을 믿음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두려움 때문에 마음의 문을 꼭꼭 닫고 두려움의 괴물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두려움을 느낄 때, 오히려 주님과 함께함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더욱 굳게 믿고 의지하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능력으로 도와주시고, 나를 사랑하여 보호하여 주심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2012년 0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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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마가복음 9장 14-29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부끄러움
· 일시  2012년 09월 16일
· 말씀  빌립보서 1장 20-21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예수님도 우셨습니다
· 일시  2012년 09월 09일
· 말씀  요한복음 11장 31~3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빛을 따르는 사람
· 일시  2012년 09월 02일
· 말씀  요한복음 8장 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넘어진 사람에게
· 일시  2012년 08월 26일
· 말씀  시편 37편 23-24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사람을 찾습니다
· 일시  2012년 08월 19일
· 말씀  사도행전 11장 22~26절
· 설교  이동훈 목사
   
주일예배 설교
 희망으로 사는 사람
· 일시  2012년 08월 12일
· 말씀  마가복음 4장 10-2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의 심판
· 일시  2012년 08월 05일
· 말씀  시편 7편 8-17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영적 다이어트
· 일시  2012년 07월 22일
· 말씀  디모데전서 6장 3-1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잃어버린 우산
· 일시  2012년 07월 02일
· 말씀  디모데후서 3장 1-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지름길은 없습니다.
· 일시  2012년 07월 15일
· 말씀  누가복음 12장 35-4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강을 건너는 삶
· 일시  2012년 07월 08일
· 말씀  여호수아 24장 14-1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안디옥 교회처럼
· 일시  2012년 07월 01일
· 말씀  사도행전 13장 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광야의 은혜
· 일시  2012년 06월 24일
· 말씀  신명기 8장 2~6절
· 설교  장시옥 목사
   
주일예배 설교
 깨달음의 은혜
· 일시  2012년 06월 17일
· 말씀  마태복음 13장 10-17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깨어짐의 은혜
· 일시  2012년 06월 10일
· 말씀  출애굽기 3장 1~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퀴즈 인생
· 일시  2012년 06월 03일
· 말씀  요한복음 3장 1-1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오직 성령으로
· 일시  2012년 05월 27일
· 말씀  스라랴 4장 1-6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영원한 청년
· 일시  2012년 05월 20일
· 말씀  여호수아 14장 6-1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큰 복음에 올인하라 !
· 일시  2012년 05월 13일
· 말씀  마태복음 13장 44~46절
· 설교  정지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가정의 회복
· 일시  2012년 05월 06일
· 말씀  에베소서 5장 31-6장 4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 일시  2012년 04월 29일
· 말씀  에베소서 6장 4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숯불 위의 생선과 떡
· 일시  2012년 04월 22일
· 말씀  요한복음 21장 1-14절
· 설교  신문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