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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님을 뵈었어요  [2795]
· 설교 일자 : 2012년 04월 08일
· 본문 말씀 : 요한 20장 11-18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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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님을 뵈었어요 (요한 20장 11-18절)
  2012년 부활절 아침에, 부활의 기쁨과 능력이 성도 여러분과 가정과 삶의 자리에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가장 길었던 한 주가 예수님의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한 주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목격하면서, 예수님의 삶이 극심한 고민과 갈등, 견디기 힘든 모욕과 경멸과 조롱, 배반과 실망, 고통과 처참한 죽음, 그것으로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3년 동안의 경이로운 삶이 그렇게 끝장난 줄 알았습니다. 금요일 오후 3시 경에 운명하신 예수님의 시신을 아리마대 요셉이 장사지낸 곳은 그의 가정에서 준비해놓았던 무덤이었습니다.
  토요일이 지나고 그 다음날 아침, 부활의 새벽에 밤새 그 무덤을 지키느라 고단한 군인들은 벽에 기댄 채 잠들어 있기도 하고, 바닥에 쓰러져 자기도 합니다. 그런데 날이 밝을 무렵, 갑자기 땅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군인들은 잠에서 깨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그때 천사처럼 눈부신 모습을 한 무언가가 홀연히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깜짝 놀란 군인들은 연거푸 눈을 비빕니다. 이 광경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꼭 헛것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얼굴에서도 환한 빛이 나고 옷도 눈부시게 흰 천사가 돌을 한쪽으로 굴리더니 그 위에 앉습니다. 그 광경을 본 군인들은 모두 정신을 잃고 혼절합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는 대로 일어나 비틀거리며 무덤 안으로 들어갑니다. 시체가 없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가 시체를 훔쳐갔으면 어떡하나하는 생각에 다들 극도로 흥분되어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시체가 보이지 않습니다. 순간 공포가 그들을 사로잡습니다. 시체를 도둑맞았으니,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뿐입니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예루살렘으로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이 일을 보고했을 때 빌라도가 보일 반응을 생각하니 무서워 미칠 것만 같습니다. 이렇게 승리의 아침은 어둠을 물리치는 이른 새벽의 고요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장사 지낸 후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친구이자 추종자들이었던 여인들이 빈 무덤을 발견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천사들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인들의 증언을 의심합니다. 왜냐하면 그 여인들은 ‘객관적인 목격자들’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당시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여성을 매우 천하게 여겼습니다. 랍비의 격언에 ‘율법의 말씀을 여자들에게 전해 줄 바에는 차라리 불태워 버려라.’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여성을 무시했습니다. 여성의 증언은 무익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여자들은 유대 법정에서 법적인 증인들이 될 수 없었습니다. 복음서에서도 우리들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셨을 때에도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의 숫자를 마태복음 14장 21절에,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여자의 숫자를 세지 않을 만큼 중요한 증거 자료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실로 비추어 볼 때, 빈무덤을 최초로 목격한 주요 증인들이 여인들이라는 것은 매우 놀라운 사실입니다. 만약 이것이 부활을 부인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후대에 만들어진 전설이었다면, 틀림없이 남성 제자들, 즉 베드로나 요한 같은 사람들이 무덤을 발견했다고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거짓으로 부활을 주장할 의도로 빈무덤 목격을 꾸며낸 것이라면, 당시 사회적으로 훨씬 인지도가 높은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공의회 의원들이 목격한 것으로 꾸며서 주장하였을 것입니다. 빈무덤을 처음 목격한 증인들이 여인들이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빈무덤을 발견했다는 것이 진짜라는 것을 말해 주는 증거입니다. 더군다나 오늘 본문 말씀인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막달라 마리아는 막달라 출신으로 일곱 귀신 들렸던 여자였습니다. 예수님에 의해 고침을 받았습니다.(눅 8:2) 생각해 보면, 과거에 귀신들렸던 여인이 하는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신빙성이 있을까를 계산하였다면 이 이야기를 뺐을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서들의 기록에 그 빈 무덤을 여인들이 발견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점은 복음서들의 신빙성을 오히려 튼튼하게 뒷받침해 줍니다. 빈무덤을 발견한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였습니다. 사실보다 더 정확한 사실이 없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한 것보다 더 진실한 이야기는 없기 때문입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아주 중요한 증거입니다. 빌라도뿐 아니라 유대 종교지도자들까지도, 아리마대 요셉이 장사 지낸 그 무덤에 여전히 예수님의 시신이 묻혀있다고 주장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 대신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시신을 훔쳐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다가 무엇을 하려고 훔쳤겠습니까?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고 말씀했던 스승이 실제로 부활하지도 않았다면 그 시신을 훔쳐다 놓고 무슨 일을 꾀할 수 있겠습니까? 죽고 모든 것이 다 끝난 스승을 위해 목숨을 걸고 순교까지 할 수 있었겠습니까?
  만약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은 억울하고 미련한 죽음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우리의 구원이 성취되었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미래에 대한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약속하시고 행하신 모든 것이 완성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완수하신 것이며, 성자 하나님 예수님께서 수행하신 구원의 역사에 성부 하나님께서 만족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이제 죽음은 더 이상 우리 운명을 끝내는 세력이 아닙니다. 우리의 운명은 영원한 삶입니다. 이제 죽음이 우리의 삶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과 영생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의 몸도 부활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부활절은 일 년에 한 번 찾아오는 명절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기억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부활신앙을 다시금 확인하고 부활신앙으로 살고자 다짐하는 절기입니다. 부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건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부활이요, 나도 부활한다는 부활신앙이 매일의 삶속에 드러나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경험되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서 제자들에게 가서 “내가 주를 보았다.” “내가 주님을 뵈었어요.”라고 말한 막달라 마리아의 고백은 부활의 첫 목격자의 생생한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슬픔과 절망과 불신 속에 있는 제자들에게 부활을 선포하는 말입니다. 약속대로 이루어진 부활의 승리를 전하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하신 말씀, 가르침, 약속들이 거짓이 아니고 진실이고, 진리였음을 증거 하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기쁨을 나누는 영적인 교제입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불신을 믿음으로, 고난을 영광으로, 어둠을 빛으로, 죽음을 부활과 영생으로 뒤 바꾸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부활을 믿으십니까?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임을 증거 해야 합니다. 어떻게 증거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부활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신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부활신앙은 슬픔을 기쁨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불신을 믿음으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사는 삶입니다.  
  몇 주 전, 장유대성교회 한 목사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그 교회 안수집사 두 분이 함께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에게 장유대성교회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 교인들이 큰 은혜를 받고 기뻐한다고 말을 꺼냈습니다. 사건인 즉, 주일날 집사님 한 분이 심장에 문제가 생겨서 쓰러졌습니다. 평소에 심장이 안 좋으셨던 분인데 심장이 멈춘 것입니다. 주일날 그것도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와서 심장이 멈춰 죽었다고 소문이 나면 교회가 어떤 소리를 듣겠습니까? 그래서 부목사님이 재빨리 쓰러진 집사님을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호송하였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급했는지, 그냥 비상등을 켜고 병원으로 날라 가다 시피 하다가 그만 다른 차와 부딪혀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차가 완전히 폐차시켜야 할 정도로 사고가 컸습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장유대성교회가 크게 시험들 일이 생겼다고 하겠지요? 그게 무슨 기적이냐고 하시겠지요. 그런데 교통사고 후 병원으로 후송된 심장이 멈추었던 집사님은 살아났습니다. 의사들이 그것은 기적이라고 했답니다. 왜냐하면, 심장이 멈춘 집사님이 차가 부딪히면서 그 집사님의 가슴이 앞에 부딪혀서 마치 심폐소생술 할 때 충격을 준 것처럼 교통사고가 심폐소생술을 하게 했고, 머리가 부딪히면서 머리에서 피가 흘러서 살아난 것입니다. 심장이 멈추어 피의 순환이 멈추었는데 머리가 터져 피가 나옴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병원까지 가기 전에 부목사님의 차 속에서 심폐소생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차는 폐차시킬 상황인데, 운전했던 부목사님과 상대 차 운전자는 다친 데는 없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당장 보이는 대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신기하고 묘하고 측량할 수 없는 놀라운 손길로 행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도움을 구할 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슬픔이 기쁨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슬픔이 있습니까? 절망이 있습니까? 근심과 불안이 있습니까? 죽음을 부활로 바꾸신 주님의 능력이 여러분의 삶도 바꿔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이 80대에 아내를 잃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이후 눈을 뜨나 감으나 아내 생각뿐이었습니다. 혼자 남은 적막감에 몸을 떨면서 그는 일기장에 글을 남겼습니다. “오늘 아침도 6시가 되었다. 행여 아내가 새벽기도 갔다가 돌아오지나 않나 대문 있는 곳을 기웃거려 본다.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면 진종일 심방하고 지금쯤 돌아오지 않나 하고 내 마음은 동네 골목길을 헤매게 된다. 손주를 부르는 내 목소리에는 아내의 목소리가 섞여 있고, 아내가 읽던 붉은 줄 친 성경을 보면 안경 낀 흰머리를 한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낙네들이 우중우중 서 있으면 행여 그 속에 서 있지나 않나 다시 한 번 두리번거리게 된다. 오 주여! 제가 죽는 날 꼭 하늘나라에 가서 아내를 만나볼 수 있겠지요.”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일들은 우리를 슬프게 하고 고통스럽고 불행하다고 느끼게 합니다. 그런 일들이 어둠의 일이고, 죽음의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빛을 바라보아야 하고, 생명의 일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미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원한 삶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부활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죽는 것보다 사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는 삶입니다. 사람들은 죽어가는 것에 더 집중합니다. 나이가 들면 죽음이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나이가 젊으니까 죽음이 멀리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이 세상에 어디 나이가 젊다고 죽음이 멀리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그럴 뿐이지 나이와 상관없이 죽음은 닥쳐옵니다. 죽음의 순간은 분명코 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죽음이후의 삶을 분명히 바라보는 사람의 삶은 차이가 있습니다. 영원히 살 것에 초점을 맞추고, 죽음 이후에 부활할 것에 초점을 맞추고,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다시 시작될 삶에 초점을 맞추면서 살아가는 삶이 부활신앙의 삶입니다. ‘오늘 내 인생은 끝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나에게는 내일이 있다’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부활 신앙은 내일이 있음을 믿는 삶입니다. 인생길의 막다른 골목에 도달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갈 길을 열어주실 것을 믿는 삶입니다. 슬픔의 통곡을 기쁨의 노래로 바꿀 수 있음을 믿는 삶입니다.
   [가이드포스트]지에 킬링거 부인의 간증이 실렸었습니다. 이혼한 지 만 1년이 되던 날, 그녀의 유일한 희망은 딸이었으나 친구, 가족, 경제생활 등 모든 것이 먹구름에 싸여 자살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우연히 딸의 책장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의 과제물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8페이지로 제출된 과제물인데, 매 페이지에 딸이 한 살 때부터 여덟 살 때까지의 사진 한 장씩을 붙여서 낸 과제물이었습니다. 마지막 8페이지 제일 아래쪽에는 딸이 “End”(끝)라고 써 놓았습니다. 과제물의 끝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그 곁에는 담임선생님이 이렇게 써 놓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Your beginning.' “너의 시작이다.”라는 큰 글씨가 ‘끝’이라는 말을 내리누르듯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것이 킬링커 여인이 새 출발을 하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여덟 살 난 아이가 사진 이야기의 끝이 될 수 없던 것처럼, 40세가 된 자기도 결코 끝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나도 부활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끝은 없습니다. 언제나 시작이고, 날마다 새 날이고, 영원으로 이어지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신앙으로 사는 사람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고난과 핍박과 위기 앞에서도 담대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능력을 행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뒤 바꿔놓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합니다.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우리는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고린도후서 6장 8-10절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뵙고 제자들에게, 그리고 그 후에 수많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실을 증거 했습니다. 우리들은 부활신앙으로 세상 속에서 소금으로,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희망을 잃어버리고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부활신앙으로 희망을 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2년 04월 08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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