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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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들지 않게  [4056]
· 설교 일자 : 2013년 03월 24일
· 본문 말씀 : 마태복음 26장 36-46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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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들지 않게 (마태복음 26장 36-46절)
   여러분, 동물의 세계에서 나이가 들어가는 쥐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객관식으로 문제를 내 볼테니 맞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쥐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① 고양이  ② 기고만장한 버릇없는 젊은 생쥐들  ③ 나이 들어가면서 거세지는 마누라 쥐  ④ 쥐약  ⑤ 쥐덫
  답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는 분을 위해 송 현이라는 사람이 쓴 “어느 쥐의 유언”이라는 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 문제를 푸는 데 조금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내 말 귀담아 듣거라.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들은 저마다 다른 무서움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중에서 무서움의 형식을 감추고 있는 무서움이 가장 무서운 무서움이다. 내 말 잘 알아 듣거라. 고양이와 쥐덫이 가장 무서운 것은 아니다. 고양이는 언제나 고양이로 있고 쥐덫은 언제나 뒤덫으로 있으니 내 나이가 되면 고양이쯤이야 차라리 같이 늙어가는 이웃일 수도 있고, 쥐덫쯤이야 내 슬기의 시험대 정도로 그친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고양이도 아니고 쥐덫도 아니다. 무서움을 다채롭게 위장한 쥐약이다. 쥐약의 외형은 탐욕의 혀끝과 코끝을 유혹하기 위해 자연스럽고 믿음직스럽고 우호적이고 헌신적이다. 그러나 쥐약의 외형이 어떻든지 간에 쥐약은 쥐약이다. 이 바보들아.”
  송 현이라는 사람은 쥐가 유언하는 형식으로 글을 쓰면서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려고 했습니다. “외형이야 어떻든지 간에 쥐약은 쥐약이다.” 쥐약이 자연스럽게 보이고 믿음직스럽게 보이고 우호적으로 보이고 헌신적인 것으로 보여도 쥐약은 쥐약이라는 말에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쥐가 쥐약을 먹고 죽는 것은 유혹을 이기지 못해서입니다. 먹으면 죽고 마는 쥐약이 섞인 밥을 쥐는 구분할 줄 압니다. 그러나 그 위험한 음식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가 쥐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냄새만 맡는데 무슨 일이 있을려구.” 그리고 그릇 주위를 맴돌면서 킁킁 거리며 냄새를 열심히 맡습니다. 그러다가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맛만 조금 보자. 맛만 조금 보는데 어떻게 되진 않겠지.” 쥐는 혀끝을 음식에 대어 맛을 봅니다. 그러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음식을 입에 넣었다가 뱉어 버리자. 삼키지만 않으면 되지 않겠어?” 그렇게 한 입 문 음식을 뱉어 버리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꿀꺽 넘깁니다. 온 몸에 약기운이 퍼져옵니다. 그렇게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유혹에 넘어져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신 후, 마지막 고난의 한 주간을 보내고 계셨습니다. 목요일 저녁,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며, 성만찬을 제정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빠진 11명의 제자 중 8명의 제자들을 겟세마네 동산의 한 곳에 남겨 두면서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고 말씀하시고,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세 명의 제자를 데리고 동산 속으로 더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 속으로 들어가신 이유는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임박한 고난 앞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일 앞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민하고 슬퍼하시면서 세 명의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에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시고,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나아가셔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깨어있기는커녕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셨습니다. 첫 번째와 같은 기도를 하셨습니다. 기도 후에 다시 와 보니 제자들이 자고 있었고, 그들의 눈이 피곤해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가셔서 같은 말씀으로 세 번째 기도하셨고, 제자들에게 오셔서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본문 말씀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여 말씀을 드렸지만,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는 간략하거나 쉽거나 편안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이라는 이름의 ‘겟세마네’라는 뜻은 ‘올리브 기름을 짜는 틀’라는 뜻입니다. 그곳에는 올리브나무 숲과 기름 짜는 틀이 놓여 있어서 그렇게 이름을 불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동산에서 마치 올리브 기름을 짜는 틀이 올리브를 짜내듯이 예수님의 마음을 짜내어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치 땀방울이 핏방울과 같이 될 정도로 고통스러운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러 가기 전에 38절에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자신이 너무 비통해 죽을 것 같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우셨으면 제자들에게 매우 고민되어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왜 예수님께서 그렇게 괴로워하셔야 했나요?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은 단지 호흡이 멈추고 심장 박동이 멈추는 생리적 죽음만이 아닙니다. 배반당하고, 속박당하고, 침 뱉음과 조롱과 비웃음과 모욕과 멸시, 채찍에 맞으시고, 온갖 수치를 다 당하시고, 아버지 하나님께 버림받고, 저주받고, 지옥에 떨어지기까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지만, 동시에 완전한 인간으로 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인간으로써의 예수님은 자신이 감당할 육체적, 감정적, 영적 고통을 너무도 잘 아셨기에 매우 고민되어 감정적 고통이 극한에 달해 죽을 지경에 처하셨습니다. 매우 고민되고 죽게 될 상황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 기도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찾고, 내 뜻을 하나님께 복종케 하며 위로부터 내려 주시는 은혜, 위로부터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 자신의 뜻을 복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고민되고 힘든 마음을 바로 잡기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고 이겨내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를 힘들게 만들고, 고민하게 만들고, 어렵게 만드는 문제들을 만납니다. 인생을 흔들어 놓고, 무너뜨릴 듯한 기세로 다가오는 수많은 일과 사건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때로 그러한 일들은 나를 무너지게 하는 아픔의 사건이기도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사건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런 시간을 살아갈 때 참으로 힘들게 느껴집니다. 우리를 영적으로 고통스럽게 하고, 힘을 다 소진하게 만들며, 지치게 하고 방황하게 만듭니다. 우리를 영적으로 좌절하게 만드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고통 가운데에서 아파하고 힘들어 하면서 그냥 살아갑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기도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왜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을까요? 예수님처럼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온전한 인간으로 이 땅에서 사시면서 우리 인간이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기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 기도를 하시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제자들에게 와 보시니 잠들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제자들은 몸이 몹시 피곤했었나 봅니다. 졸음이 쏟아져 깨어 있을 수도, 기도할 수도 없었나 봅니다. 육신이 피곤하면, 육신이 힘이 없으면, 육신에 병이 걸리면, 마음도 영도 약해질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연적인 존재이자 영적인 존재로 만들어졌습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연의 법칙과 힘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에 자연적인 존재이자 영적인 존재입니다. 이 두 가지 중 한 가지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은 몸과 영으로 이루어졌고, 몸과 영이 하나가 되어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몸의 상태가 영에게 영향을 줍니다. 영의 상태가 몸에 영향을 줍니다. 육신의 연약함이 영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이 오래 되면 영적으로도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오랜 지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신앙을 잘 지키고 있는 사람은 영적으로 육체의 연약함을 넘어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육체적인 강건함이 영적인 강건함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고 건강에 힘써야 합니다.
  열왕기상 19장에 보면,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바알신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신의 선지자 400명과 어떤 신이 참 하나님이신지를 대결을 했습니다. 당연히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제단에 불로 응답을 하셨고,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을 다 죽였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아합 왕의 왕후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협박을 합니다. 엘리야는 그 협박에 밀려 도망하여 브엘세바의 한 로뎀나무 아래에서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은데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제일 먼저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을 주면서 먹으라고 합니다. 엘리야는 그 음식을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40일 동안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러 하나님을 만납니다. 엘리야가 낙심하고 절망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회복시키시는 방법 중의 하나가 음식을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몸의 기력을 회복시키며 영도 회복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마음으로는 무엇이든 열심히 할 각오가 되어 있지만, 육신이 약하여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육신이 약함을 알아주신다고 해서 육신의 약함이 자랑이 아닙니다. 육신이 약하니까 약한 대로 그냥 살라는 뜻도 아닙니다. 분명 예수님께서는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는 제자들, 육신이 연약하여 깨어 기도하지 못하는 제자들, 다가 올 시험을 대비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이해하셨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약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육신의 연약한 본성 때문에 더욱 기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연약하기 그지없기 때문에 마음으로 다짐하고 결심하여도 쉽게 허물어집니다. 마음의 원대로 되지 않습니다. 유혹은 우리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공격하기 때문에 홀로 저항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입어야 우리의 방어력을 강화시키고 사탄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하라고 당부 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어가지 않도록,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마귀로부터 세 가지 유혹을 받으셨지만 이기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으셨습니다. 시험받았지만 시험에 빠지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또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난의 잔을 마시고 싶지 않은 유혹을 받으셨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맡기심으로 시험에 들지 않으셨습니다. 유혹을 받는 것은 죄는 아닙니다. 유혹에 넘어가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유혹에 빠져 죄를 범하고, 하나님과 멀어진 것을 시험에 들었다고 합니다. 유혹 받고 시험을 당할 수는 있지만 시험에 들지는, 시험에 빠지지는 말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시험에 들면 어떻게 되기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실까요? 누가복음 2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성만찬을 마치고 난 후에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말씀하시는 내용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즉 시험에 들게 되면 믿음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시험에 들게 되면 믿음이 흔들립니다. 믿음이 사라집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믿음이 떨어지고, 믿음이 사라진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리고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시험에 들면, 믿음이 떨어지고, 믿음이 떨어지면 하나님과 멀어지기 때문에 인간적인 혈기가 앞섭니다. 미움과 분노, 불평과 원망, 믿음 없는 부정적인 말과 마귀적인 말을 하게 됩니다. 점점 은혜는 떨어지고, 영은 메말라 강퍅해져 갑니다. 교회를 떠납니다. 제일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떠납니다. 주님을 부인합니다. 사탄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유혹 – 시험에 듦 – 사탄의 지배 이런 순서가 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영적 위험에 처해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경계심도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배신할 유혹을 당할 처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연약한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깨어 기도하고 있지 못해,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의 배신에 의해 잡히시는 과정에서도 실수를 합니다.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내리쳐 잘랐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귀를 다시 붙여주시지 않았다면, 아마도 베드로는 군병들에게 위험한 지경에 처했을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는 잡히신 예수님을 멀찍이서 뒤따라갔다가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을 했습니다. 바로 몇 시간 전에 다른 제자들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자신은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그가 시험에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마귀에게 유혹을 당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로 시험을 이길 준비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 가롯 유다의 배반에도, 대제사장과 헤롯과 빌라도의 심문에도, 무리들의 조롱과 멸시, 모욕과 거짓 증언에도 흔들리지 않고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 인류 구원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에서 제자들에게 유혹을 이겨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마태복음 6장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소위 주기도문이라고 부르는 그 기도의 내용 중 13절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리고 수많은 유혹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유혹을 이기고 시험에 들지 않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로 시험을 이기기를 원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유혹에 맞서서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는 더 큰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로 더 큰 힘을 얻어야 시험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를 쉬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만약 시험에 들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험에 들었을 때 어떻게 시험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지를 발이 삐었을 때를 비유하여 설명한 글을 읽었습니다. 여러분, 발이 삐면 어떻게 하지요? 삔 발을 사용하면 안 됩니다. 발을 가만히 놔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삔 발의 부기가 빠지도록 얼음찜질을 하든지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삔 발로 자꾸만 돌아다니고 발을 디디면 상태는 더욱 악화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시험에 들었을 때, 시험을 당할 때, 순간적으로 마음을 잘못 먹으면 더욱 일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우선 가만히 있는 것이 좋습니다. 시험 당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 불평을 쏟아 놓다보면 오히려 시험에 더 깊이 빠져듭니다. 삔 발의 부기가 빠지도록 얼음찜질을 하듯이, 시험을 당했을 때는 조용히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얼음찜질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영혼의 부기가 빠지도록, 시험에 들어 통증을 일으키는 영적 염증이 제거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능력이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식중독에 걸리면 설사를 하거나 토하기 때문에 물을 많이 마셔야 합니다. 그래야 탈수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무 물이나 많이 마셔서 되는 것이 아니고 끊인 물을 많이 마셔야 합니다. 그런데 식중독 걸린 사람이 제일 하기 싫은 것이 물을 마시는 것입니다. 물을 마시면 또 토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물을 마셔야 합니다. 다시 토할 것 같아도 물을 마셔야 합니다. 그렇듯 우리가 시험에 들면 기도하기가 싫어질 수 있습니다.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기도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기도가 안 됩니다. 그래도 기도해야 합니다. 식중독에 걸린 사람이 물을 마셔야 하듯,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기도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대화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나는 연약하여 혼자 힘으로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힘을 공급받기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우리가 당한 시험은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힘으로만이 이길 수 있습니다. 시험에 빠져있을 때에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영적인 힘을 통해서만이 시험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받으실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몹시 힘들어 하시면서도 제자들이 시험에 들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비록 제자들이 겪어내야 할 시험은 예수님이 당하신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일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할 시험을 모른 척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의 연약함을 동정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 깨어 기도하기를 바라셨지만, 잠들어 버린 제자들, 도무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기에는 부끄럽기만 한 제자들을 주님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제자들처럼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여 기도하지 못하고, 쉽게 시험에 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들을 주님께서 사랑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언제 어떤 일로 시험을 당하게 될지 모를 우리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간절한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시험을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2013년 03월 24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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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다리 놓는 사람
· 일시  2013년 02월 24일
· 말씀  베드로전서 2장 9-1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문제 뒤에 있는 하나님의 뜻
· 일시  2013년 02월 17일
· 말씀  요한복음 6장 1-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마른 떡 한 조각
· 일시  2013년 02월 10일
· 말씀  잠언 17장 1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 일시  2013년 02월 03일
· 말씀  창세기 16장 1~14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하여
· 일시  2013년 01월 27일
· 말씀  창세기 13장 1~13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다음 세대를 위하여
· 일시  2013년 01월 20일
· 말씀  요한삼서 1장 2~4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작은 자에게, 작은 것 부터 (II)
· 일시  2013년 01월 13일
· 말씀  열왕기하 5장 1-14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작은 자에게, 작은 것 부터 (I)
· 일시  2013년 01월 06일
· 말씀  마태복음 25장 31~46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위의 것을 찾으십시오
· 일시  2012년 12월 31일
· 말씀  골로새서 3장 1~3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균형을 잡는 신앙
· 일시  2012년 12월 30일
· 말씀  전도서 7장 15~1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은혜를 받은 자여
· 일시  2012년 12월 23일
· 말씀  누가복음 1장 26-3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양날 칼 같은 하나님의 말씀
· 일시  2012년 12월 09일
· 말씀  히브리서 4장 12-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언약의 사자
· 일시  2012년 12월 02일
· 말씀  말라기 3장 1-6절
· 설교  신문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