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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근육 만들기  [3739]
· 설교 일자 : 2012년 10월 28일
· 본문 말씀 : 사도행전 5장 27~32절
· 설교 :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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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근육 만들기 (사도행전 5장 27~32절)

  우리가 호흡을 하고, 음식을 먹는 것은 살아있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활동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건강한 삶이란 질병에 걸리지 않는 것, 아픈 곳이 없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건강한 삶이란 질병이 없을 뿐만 아니라 활동이 자유롭고,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건강한 삶은 단지 호흡만 열심히 하고, 영양가 많은 음식을 많이 먹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운동을 합니다. 왜 운동을 합니까? 운동하는 것이 좋아서요? 운동하는 것이 취미라서 운동을 합니까? 건강한 삶을 위해서입니다. 운동을 통해서 몸의 기초 체력을 향상하고, 신체의 각 부분을 유연하게 하고, 신체의 여러 가지 부분의 힘과 운동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만이라는 것이 단순히 ‘뚱뚱하다’ ‘체중이 많이 나간다’는 관점에서만 평가합니다. 그래서 비만한 사람들 중에는 다이어트를 하는 목적이 잘못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히 날씬해지기 위해서 다이어트를 하려고 한다면 목적과 방향이 잘못된 것입니다. 건강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해야 합니다. 몸은 날씬한데 골골하고 병이 많다면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이점이 잘못 되어 있으니까 단기간에 날씬해지기 위해서 굶거나, 지방흡입을 하거나, 무슨 건강 보조식품으로, 살 빼는 약으로 살을 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오히려 건강을 해치거나 요요현상을 겪게 됩니다. 사람들이 좀 뚱뚱해 보여도 건강하다면 괜찮습니다. 단 일반적인 통계에 의하면 체중이 많이 나가고, 뚱뚱한 사람들이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다이어트는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이 초점이 되어야 합니다. 몸 안에 있는 체지방을 줄이고, 몸의 활동에 필요한 근육량을 늘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식생활을 조절해야 하고, 운동량을 늘려야 합니다.
  우리 몸에는 여러 가지 근육이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 골격근, 평활근으로 나누어집니다. 골격근에는 우리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근육과 심장처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근육이 있고 평활근에는 주로 소화기관의 근육들이 있습니다. 몸 밖으로 보이는 근육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근육은 우리 몸을 부드럽게 움직이게 해줍니다. 근육은 뼈와 뼈마디를 이어줍니다. 근육이 오므라들었다 펴졌다 하면서 뼈를 움직이게 해 줍니다. 몸의 형태를 잡아줍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몸 구석구석에 있는 근육에 의해 우리는 움직이고, 운동하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활동,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우리 몸의 근육은 아주 중요합니다.
  근육은 운동을 통해 강화되고, 운동을 통해 근육량이 늘어납니다. 근육이 강화되고 근육량이 늘어나면 근육량이 적을 때보다 힘도 세고, 오랜 시간 활동을 해도 덜 지치고, 건강이 유지됩니다. 반대로 근육이 약화되고, 근육량이 적은 사람이 무리한 활동을 하거나 운동을 하면, 힘을 쓰지 못하고, 쉽게 지치고, 근육이 뭉치고, 몸살이 나고, 심하면 드러눕습니다.
  영적인 원리도 같습니다. 영적인 근육이 약하고 적으면 영적인 힘을 쓰지 못합니다.
교우 여러분, 왜 믿음이 자라지 않을까요? 왜 신앙이 쉽게 흔들릴까요? 왜 신앙이 끈기와 인내가 없을까요? 왜 신앙생활에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왜 성경도 열심히 읽고 기도도 열심히 하는 데 신앙의 파워가 없을까요? 영적 근육이 없거나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영적 근육은 어떻게 강화되고, 어떻게 더 많아질 수 있을까요?
기초적인 질문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 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인 양식으로 먹어야 합니까? 쉽게 표현해서, 왜 하나님의 말씀을 읽습니까?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까? 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담아두려고 합니까? 그래야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든든하니까 그렇게 합니까? 아닙니다. 영의 양식을 먹고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받은 것으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서 ‘이렇게 살아야지’ 했는데 실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아멘!’하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영적인 근육이 약해질 뿐만 아니라 영적인 근육이 강화되지 못하고, 근육이 만들어지지 않아 늘 제자리에서 맴도는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4장에는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영적 근육이 강화되고, 영적 근육이 증가되어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게 승리한 사도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개인들이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에 대해 분개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체포해서 다음날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이튿날 예루살렘 공의회가 소집이 되었습니다. 통치자, 종교지도자, 종교학자, 대제사장 안나스, 가야바, 요한, 알렉산더 등 주요 인물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한가운데 세워 놓고 따져 물었습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 그전 같았으면 두려워하며 도망갔거나,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움츠러들었을 그들은 성령이 충만하여 거침없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 앞에 서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는 구원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어찌나 당당하고 자신 있게 서있고 대답하는 지, 그들은 두 사람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잠시 밖에 내 보내고서는 어떻게 처리하면 좋은지 상의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일이 커지지 않도록 베드로와 요한의 입을 막으려고, 베드로와 요한을 다시 불러다가, 어떤 경우에도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거나 가르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은 바로 되받아 대답했습니다. 19, 20절에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고난 받으실 때에는 사람의 말에 더 신경 쓰고, 사람의 말을 무서워하고, 사람을 피해 달아났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 강림을 체험한 그들은 전과 달리 “우리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사람의 말을 무서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귀중히 여기겠습니다. 사람의 말은 거역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런 그들의 신앙 중심이 오늘 본문 사도행전 5장에서도 다시 나타납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선포하고, 큰 표적들을 행하였습니다. 병자들이 낫고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점점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랬더니 대제사장과 그의 편에 섰는 사람들이 노발대발하면서 사도들을 감옥에 체포하여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밤중에 하나님의 천사가 감옥 문을 열어 그들을 이끌어 내며 말했습니다. “성전으로 가서 당당히 서거라. 이 생명에 대해 말해야 할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여라.” 사도들은 즉시 순종하여 성전으로 가서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성전 경비대장과 대제사장은 당황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하면서, 다시 성전으로 가서 사도들을 붙잡아 최고의회 앞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윽박지르듯 말했습니다. “우리가 너희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왜 그 예수의 피를 우리 탓으로 돌리려고 하느냐?”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그랬더니 최고회의 의원들이 이러쿵저러쿵 상의하더니 사도들을 매를 때렸지만 결국 풀어주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언제나 그리스도인들은 삶속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공의회 앞에 서듯,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을 맞습니다. ‘사람의 말을 들을 것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이냐?’ ‘사람에게 순종할 것이냐? 하나님께 순종할 것이냐?’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어떤 결정을 하겠습니까?
   과거 베드로와 사도들은 반대하는 사람을 두려워했습니다. 죽음이 두려웠습니다. 쉽게 믿음이 흔들리고 약화되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지 못한 적도 많았습니다. 영적 근육이 적어서 힘을 쓰지 못했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 강림을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게 되었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도들이 말씀에 대한 순종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져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앙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베드로와 요한이 공의회 앞에서 대답하는 광경은, 마치 지금으로부터 495년 전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가 보름스 국회 앞에서 대답하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부패한 로마 카톨릭교회를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옹호하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종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일반 신자들에게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파괴하였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모든 권위에 앞서 성경에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안에서 발견하게 될 것은 은혜에 의한 구원의 메시지이다.” 그래서 95가지 조항의 반박문 첫 항에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 주님이며 주인 되신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신자의 모든 삶이 회개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말씀대로 깨닫고 말씀대로 말하고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마르틴 루터의 소식을 듣고 루터를 보름스 회의에 참석하여 루터가 그동안 썼던 책들에 대해 루터의 입장을 밝혀 달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 자리는 루터의 생명이 걸린 자리였습니다. 자신의 책과 주장을 철회하면 살게 될 것이고, 자신의 책과 주장이 옳다고 하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보름스 회의에서 황제와 주교의 계속되는 강요와 요청에 땀에 젖은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포로가 되었고 나는 아무 것도 철회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결단코 아무것도 철회하지 않을 것이오. 왜냐하면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이오. 오 주여! 나를 도우소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기독교 역사 아니 인류 역사에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전환점이 되는 종교개혁을 일으키었습니다. 터닝 포인트에 중요한 출발점은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부패한 당시 종교와 그 제도, 그 가르침에 맹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신실하게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발견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갔을 때였고, 어떻게 방향을 바꾸어야 하는지,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지, 어떤 길이 맞는 길인지를 발견하여 개혁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였습니다. 그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다른 생각과 다른 주장과 다른 믿음을 허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 즉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는 성경 말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을 외치며 기독교 역사의 전환점을 만들었습니다.

  영적인 양식은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용해야 합니다. 말씀을 행해야, 말씀에 순종해야, 말씀을 실천해야 영적 근육이 강화됩니다. 영적 능력이 나타납니다. 영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야고보서 1장 23, 24절에는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마치 거울로 자기 얼굴을 흘끗 들여다보고서 거울 앞을 떠나가서는 금세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잊어버리고,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과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여러분이 아침에 거울을 보니 얼굴에 자다가 흘린 침 자국이 얼룩져 있고 머리가 헝클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세수를 해야겠구나, 머리도 감아야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빨리 출근하라는 전화입니다. 그래서 얼른 옷을 갈아입고 출근했습니다. 얼굴은 침 자국으로 얼룩져 있고, 머리는 헝클어진 상태로 출근하였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믿고서 순종하지 않으면 그와 같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반드시 순종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영의 양식으로 먹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음으로 영적 에너지를 얻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합니다. 이렇게 순종으로 이어지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영적 근육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 양식으로 먹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할 때 움직이게 됩니다. 순종을 통해 영적 근육이 강화됩니다. 튼튼한 신앙, 견고한 신앙이 됩니다.
  여러분, 순종의 강도가 약한 것을 순종할 때는 영적 근육이 늘어나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중에는 영적 근육이 있기는 하지만 근육량이 매우 적어 약간의 순종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그들은 영적 근육량을 늘리기 위한 순종생활을 더 열심히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조그만 힘든 일을 만나도 금새 지칩니다. 주저앉습니다. 영적 몸살을 앓습니다. 쉽게 포기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적 근육량이 적어서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운동할 때 가벼운 것부터 드는 훈련으로 시작하여 점점 더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면 근육량이 늘어나고 힘도 세지는 것과 같은 이치로, 쉽고 작은 것부터 순종하여 자꾸 온전한 순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영적 근육을 강화시키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나야 하고, 순종은 믿음을 더욱 크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6장 46절에,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산상수훈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7장 24절 이하에 이렇게 마무리를 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사는 사람이 기초를 반석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난주에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고, 신앙의 뿌리가 깊이 박혀야 하고, 신앙의 뿌리가 깊이 넓게 뻗어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신앙의 뿌리를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신앙의 뿌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뿌리가 굵어지고, 땅 속 깊이 뿌리를 박을 수 있고, 땅 속 넓게 뿌리를 뻗을 수 있습니다. 유혹의 바람과 시련과 환난의 태풍에 쉽게 신앙의 뿌리가 뽑히지 않으려면 신앙의 뿌리를 강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뿌리가 강해집니다. 힘을 쓸 수 있습니다. 이겨냅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서, 우리가 하는 말에서, 우리가 행하는 일에서 그 믿음에 대한 증거가 드러나야만 합니다. 믿음과 순종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명예의 전당에 오른 신앙의 영웅들, 신앙의 선조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 믿음으로 세상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과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믿음으로 갔습니다.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하시면 믿고 멈추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라고 하시면 믿고 참았습니다.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라고 하시면 믿고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걸릴지라도 순종하여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방주를 만들라고 하시면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믿고 120년 동안 순종하여 만들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까? 노아가 순종했기 때문입니까? 맞습니다. 아브라함이 순종했기 때문입니까? 맞습니다. 모세가 순종했기 때문입니까? 맞습니다. 여호수아가 순종했기 때문입니까? 맞습니다. 사무엘이, 다윗이, 다니엘이, 수많은 선지자들이 순종했기 때문입니까? 맞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순종했기 때문입니까? 맞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칼빈이, 주기철 목사님이, 손양원목사님이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은 순종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증명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습니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칭찬과 상급을 받았습니다. 영광을 얻었습니다.  
  중국의 요순시대에, 순 임금이 하루는 신하들을 불러 모아놓고 이렇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들에게 망태기 하나씩을 줄 터이니 우물에 가서 물을 하나 가득 담아 가지고 오너라!' 열 댓명의 신하들이 망태기를 하나씩 받아들더니 제각기 흩어져 버렸습니다. 망태기에 물을 담아 보았자 쏟아져 내릴 것이 분명하였는지라 아무도 물 담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한 신하만이 우물가로 가서 하루 종일 물을 퍼 담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으나 어찌 임금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으랴 하는 마음으로 하루 종일 물을 퍼 담았습니다. 이윽고 해질녘이 되자 우물의 물이 다했는지 아무리 두레박을 내려도 물을 길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하는 허리를 펴고서 우물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바닥 한 가운데에 황금덩어리가 빛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신하는 얼른 그것을 올려다가 임금에게 가져다 바쳤습니다. 임금은 “수고했다! 내 말에 순종하는 자가 너뿐이구나. 그것은 순종하는 자에게 주려고 내가 마련한 상급이니라. 그것을 네가 갖도록 하여라.” 순종이 무엇인지, 순종하는 사람에게 어떤 상이 있는지를 잘 말해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명령도 우리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말씀하시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믿고 신뢰하는 것이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우리에게 반드시 상을 주십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기보다는 우리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만을 명령하시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순종하는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듯,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순종은 모든 심오한 영적 체험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순종을 통해 점점 더 하나님을 깊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맛 볼 수 있습니다.
  존 비비어라는 분은 “순종으로 깊어지는 우물”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우물이 얕으면 물이 많이 고이지 않습니다. 얕은 우물에 솟아난 물은 깊은 심층암반수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심층 암반수가 왜 더 좋은 것입니까? 깊은 곳에 모여진 물이 땅의 여러 지층을 통과하면서 맑고 깨끗해지고, 천연 미네랄이 살아 있는 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우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종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은 순전한 신앙이 됩니다. 풍성한 은혜가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오늘 본문 말씀의 베드로와 사도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종교개혁 495주년 되는 주일 아침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작은 것부터 순종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선조들, 종교개혁가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한 신앙을 본받아 여러분들의 믿음이 순종으로 이어져 영적 근육이 강화되고, 영적 근육양이 많아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흔들리지 않고, 승리하는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순종하는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더욱 풍성하게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2012년 10월 28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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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 일시  2013년 04월 28일
· 말씀  신명기 30장 19~20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불쌍히 여기사
· 일시  2013년 04월 21일
· 말씀  누가복음 7장 11-17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위대한 명령, 최고의 사명
· 일시  2013년 04월 14일
· 말씀  마태복음 28장 18-2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부활의 기쁨
· 일시  2013년 03월 31일
· 말씀  베드로전서 1장 3-9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시험에 들지 않게
· 일시  2013년 03월 24일
· 말씀  마태복음 26장 36-46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십자가의 능력으로
· 일시  2013년 03월 17일
· 말씀  고린도후서 13장 4~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십자가, 가장 큰 차이
· 일시  2013년 03월 10일
· 말씀  요한복음 3장 13~1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묵은 땅을 기경하라
· 일시  2013년 03월 03일
· 말씀  호세아 10장 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다리 놓는 사람
· 일시  2013년 02월 24일
· 말씀  베드로전서 2장 9-1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문제 뒤에 있는 하나님의 뜻
· 일시  2013년 02월 17일
· 말씀  요한복음 6장 1-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마른 떡 한 조각
· 일시  2013년 02월 10일
· 말씀  잠언 17장 1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 일시  2013년 02월 03일
· 말씀  창세기 16장 1~14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하여
· 일시  2013년 01월 27일
· 말씀  창세기 13장 1~13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다음 세대를 위하여
· 일시  2013년 01월 20일
· 말씀  요한삼서 1장 2~4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작은 자에게, 작은 것 부터 (II)
· 일시  2013년 01월 13일
· 말씀  열왕기하 5장 1-14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작은 자에게, 작은 것 부터 (I)
· 일시  2013년 01월 06일
· 말씀  마태복음 25장 31~46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위의 것을 찾으십시오
· 일시  2012년 12월 31일
· 말씀  골로새서 3장 1~3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균형을 잡는 신앙
· 일시  2012년 12월 30일
· 말씀  전도서 7장 15~1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은혜를 받은 자여
· 일시  2012년 12월 23일
· 말씀  누가복음 1장 26-3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양날 칼 같은 하나님의 말씀
· 일시  2012년 12월 09일
· 말씀  히브리서 4장 12-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언약의 사자
· 일시  2012년 12월 02일
· 말씀  말라기 3장 1-6절
· 설교  신문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