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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놓는 사람  [5470]
· 설교 일자 : 2013년 02월 24일
· 본문 말씀 : 베드로전서 2장 9-10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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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놓는 사람 (베드로전서 2장 9-10절)
  이런 유머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어떤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개가 짖지 않았습니다. 도둑을 맞고 난 주인이 개에게 뭐라고 했습니다. 도둑이 와도 짖지 않는 개를 팔아버리던지 해야겠다고. 그랬더니 개가 웅얼거리며 하는 말이, 담 넘어온 놈도 도둑이고, 주인도 도둑이니 누구에게 짖어야 할지 헷갈려서 못 짖었다고 하더랍니다. 주인은 자신이 도둑처럼 살면서 자신은 도둑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지만, 그 집의 개는 주인이 남의 집 담을 뛰어넘지는 않지만 도둑처럼 사는 것을 알고서 헷갈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집의 개가 낯선 사람이 와도 잘 짖지 않으면, 우리 집 개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도둑이 자신이 도둑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면, 경찰이 자신이 경찰임을 잊고 도둑을 잡으려고 하지도 않고, 자신도 도둑처럼 살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내가 누구냐?’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해 자신에게 묻고 확인해야 합니다. 자기 정체성은 자기 자신이 누구냐 라는 질문에 대한 답뿐만이 아니라 그 답을 통하여 자신의 역할을 깨달아 수행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이면 아버지의 역할을, 어머니이면 어머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그리스도인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다가 천국에 들어간 후에,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게 될 때, 마태복음 25장에 있는 말씀처럼, 양과 염소로 구분하듯이 구분될 것인데, 그 때 양으로 구분되어 서게 될 수 있는 것은 곧 그리스도인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본문말씀은 그리스도인이 누구냐 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이며, 왕 같은 제사장들이고, 거룩한 나라이고,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설교에서는 특별히 이 중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은 ‘왕’과 ‘제사장’이라는 직무가 합쳐진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왕’의 직무는 여러분들이 익히 잘 아실 테고, ‘제사장’의 직무는 이렇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코헨이며, 성경에서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직접 임명하셨으며,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임명되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중보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세우신 직무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제사장들 외에는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특히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무나 제사장이 될 수도 없었고, 제사장이 자기 마음대로 관둘 수도 없었습니다.
  제사장은 라틴어로 ‘폰티펙스(pontifex)’ 인데 그 뜻은 ‘다리를 놓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연결하는 중재자의 기능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이고,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씀은 위대한 특권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왕 같은 제사장이 될 수 있는 특권은 완전하신 의미에서 왕이시오,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면, 왕 같은 그리스도인,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왕이신 예수님께 속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떠나서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 수 없습니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이후에 만국을 통치하며, 동시에 제사장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인들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두려움 없이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죄를 고백하고 사함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리낌 없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와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직접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중보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왕 같은 제사장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데리고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인 그리스도인들은 다리를 놓는 사람입니다.
  냇가나 강을 건너기 위해 이쪽 편에서 저쪽 편까지 다리를 놓아 그 위를 지나가게 합니다. 또는 계곡 사이에 다리를 놓기도 합니다. (중국 장가계 천문산 절벽에 다리를 놓는 사람들 사진을 보시겠습니다. 이러서 동영상- ‘다리가 되어 준 오빠’를 보겠습니다. ) 이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습니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들입니다. 다리의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로 가는 다리를 놓는다면, 다리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처럼 아름답고 고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리라고 해서 모두 훌륭한 다리는 아닙니다. 여러분, 다리 중에 징검다리가 있습니다. 옛날 동화책이나 애틋한 순정소설에 등장하기도 하는 징검다리 말입니다. 징검다리는 냇물 사이에 큰 돌 같은 것으로 놓아 냇가를 건널 수 있게 해주는 다리입니다. (징검다리 사진을 보시겠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에 가려면 냇가의 징검다리를 건너야 했습니다. 다리가 놓여있기는 했지만, 다리를 건너 학교에 가려고 하면 한참이나 돌아서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동네 아이들은 징검다리를 건넜습니다. 그러다 장마철이 되어 물이 불어나면 징검다리가 잠겨서 학교에 갈 때, 바지를 걷고 건너야 했습니다. 그때 ‘왕자표’ 검정고무신, ‘타이어표’ 검정고무신을 벗어 들고 건너지 않고 그냥 신고 건너다가 고무신이 물에 떠내려 간 아이들도 꽤나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 손에는 검정고무신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걷어 올린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게 붙잡고 냇물을 건넜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물에 푹 잠긴 징검다리는 냇가를 건너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큰 장마 비가 계속 와서 냇물이 엄청나게 불어 쓸고 내려가고 나면, 징검다리로 놓았던 돌은 휩쓸려 어디론가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동네 어른들이 다시 징검다리를 놓아야만 했습니다. 징검다리는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지만, 징검다리 돌이 밟았을 때 흔들리거나 미끄러워 오히려 건너는 사람을 물에 빠뜨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어떤 사람은 수시로 물속에 잠기는 징검다리같은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구별이 안 됩니다. 징검다리인지, 물속에 잠겨있는 돌인지 구별이 안 됩니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이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고 알게 되면 깜짝 놀랍니다. “그 사람이 교회 다니는 사람이야?” “그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야?” “그 사람, 예수 안 믿는 것 같던데!”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흔들리거나 미끄러운 징검다리 돌과 같은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그리스도인 때문에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저는 우리나라 장관이나 지도자를 세우는 일이 있을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합니다. 청렴한 지도자 만나기가 그렇게 어렵기 때문입니다. 추천자 대상자, 임명 대상자들은 위장 전입, 탈세, 편법 증여는 기본이고, 자녀들은 병역 면제나 부적절한 행적을 스펙처럼 갖춘 사람들이 물망에 오릅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장, 차관 고위공직자의 자녀들 중 56명이 병역 면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들의 자녀들은 왜 그리 아프기도 골고루 아프고, 때만 지나면 얼마나 잘 사는지...
그런 문제들을 사전에 점검을 하여 고른 사람들이 그 정도니 이미 대상에 있다가 제외된 사람들은 얼마나 더 할지 쉽게 추측이 됩니다. 그런데 한심한 것은, 그들 가운데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교회에서 중직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사실들이 있으면 자신은 못하겠다고 고사를 하면 그렇게까지 폭로되어 개망신을 당하지 않을 텐데... 권력욕, 명예욕에 사로잡혀 어떻게 될 줄 알고 버틸 대로 버텨 보다가 망신만 당하고, 손가락질만 당하고서 결국은 낙마를 하는 바보짓을 할까?’  
  그런데 더 한심한 것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사람이 그러하면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두둔하는 사람들입니다. 내편이면 괜찮고 눈감아 줄 수 있고, 다른 편이면 파헤치고 그럴 수 없다고 하는 엉터리 기준을 가지고 지도자를 바라본다는 사실입니다.
  여하튼 그리스도인으로써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 관계가 문제가 생겨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못 믿겠다고 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인도하는 다리가 되어야지 빠뜨리고 실족케 하는 다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다리가 안 보인다고 합니다. 징검다리가 세상이라는 물에 푹 잠겨서 보이지 않으니 건널 수 없다고 합니다. 징검다리를 믿고 밟았는데 오히려 물에 빠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달라고
  여러분, 우리는 물에 쉽게 잠기는 징검다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거친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작은 돌의 징검다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강을 건너갈 수 있는 낙동대교처럼, 섬과 육지를 이어주는 영도대교처럼, 바다 위를 횡단하여 건너갈 수 있는 광안대교처럼, 쉽게 물에 잠기거나 떠내려가거나 파괴되지 않는 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이 누구인지  알게 되면 “그럼 그렇지. 교회 다니는 사람일 줄 알았어!” “역시, 뭔가 달라도 달라!” “내가 속으로 당신이 종교를 가지고 있다면, 예수 믿는 사람일거라고 예상했어!” 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이들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왕 같은 제사장인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에게 하늘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사다리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사닥다리라고도 말하는, 사다리는 한 쪽은 땅에 한 쪽은 하늘 쪽 위로 향해 놓여 집니다. 그래서 사다리를 통해 사다리의 높이만큼 지붕위에도 올라갈 수 있고, 높은 나무 위에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땅에서 위로 올라가려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하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사다리이십니다.
  우연한 기회에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그리스도인이 된 한 중국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허황된 세상에서 어영부영 헤매며 살다가 깊은 우물에 빠졌습니다. 나는 혼자 힘으로는 빠져 나오기 어렵게 되어 사람 살려 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마침 지나가던 사람이 나를 들여다보더니 ‘아이고,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소. 아무래도 전생에 지은 잘못 때문에 그리 된 것 같으니 참회하고 저 세상으로 가는 수밖에 없소’라고 하고는 그냥 가버렸습니다. 잠시 후 또 한 사람이 오더니 ‘사람이란 까닥 잘못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니 이 일을 경험삼아 후에는 조심하시오.’하고 또 그냥 가버렸습니다. 한참 후 또 한 사람이 소리치는 음성을 듣고 우물을 들여다보더니 ‘아니 사람이 빠져 있군.’하더니 사다리를 놓고 내려와 나를 끌어 올려 주어서 나는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뒤이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알고 보니 처음 사람은 석가모니였고 두 번째 사람은 공자였으며, 세 번째 나를 구원해 주신 분은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을 이어주고, 사망의 강을 건널 수 잇게 해주시는 사다리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참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사다리가 되어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그 역할을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천국 문턱에 이르기에 충분할 만큼 높으며 유일한 사다리다.”라고  J. D. 보드맨이라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늘로 나아가게 하는 사다리의 모형이십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늘 세계로 연결됩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진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를 깨닫고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언제나 십자가를 붙잡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갈 때, 하늘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사다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교회에게서 그리스도인의 영성을 보기를 원합니다. 세상이 사는 법 말고 다르게 사는 법을 보길 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법에 다른 것이 있는지를 보고 싶어 합니다. 이 땅의 법칙을 벗어나서, 이 세상의 법칙을 벗어나서 하늘의 법칙으로 사는 사람들을 보기를 원합니다. 그런 삶의 보여주는 것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써 사다리 역할을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삶입니다.
  전에 소개한 적이 있던 탤런트 이 광기씨는 일곱 살짜리 어린 아들을 신종플루로 하나님 나라로 먼저 떠나보내고 나서 그 슬픔과 아픔을 겪고서 아프리카 아이티의 수많은 어린이를 사랑하는 봉사활동으로 승화하여 이겨내는 과정을 본 그룹사운드 부활의 리더 김 태원씨는 이 광기씨의 친구로써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으로서 그가 아들을 잃은 후, 이렇게 변화하게 되기까지 어떤 놀라운 일이 있었다는 것을 믿습니다. 무얼 본 것인지 저로선 알 수 없지만, 그게 아이티건 하나님이건 분명히 봤으니까 이렇게 바뀌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모르는 또 다른 세계가 있는 것이겠지요.” 그는 하늘의 방법으로 사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요즘 새벽기도회 때 창세기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거쳐서 이삭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고, 이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엇이 마찬가지였냐고 하면, 창세기 21장 22절에 보면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그의 군대 장관 비골과 아브라함을 찾아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하면서 서로 맹세하고 언약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또 이삭에게도 아비멜렉 왕과 그의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이 찾아와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고 하면서 자신들과 맹세를 세워 계약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요셉도 보디발 장군의 집에 종으로 팔려가서 일할 때에 보디발 장군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요셉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그 감옥의 책임자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보고, 요셉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신임했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어떤 모습을 보고, 또 이삭의 어떤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보았다고 했습니까? 보디발 장군이나, 감옥의 책임자가 요셉의 어떤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보았다고 했습니까? 그들이 기도를 많이 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까? 그들이 성경을 많이 읽었기 때문입니까?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열심히 드리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까? 찬송을 잘 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성경 읽는 것, 기도하는 것, 찬송하는 것,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 기도, 찬송, 예배의 경건생활을 통해서 실제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삶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지, 하나님의 사람인지를 봅니다. 진실, 성실, 성결, 겸손, 의로움, 사랑, 화평이 있는 사람인지를 보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인지를 봅니다. 그리고 그런 성품이 영원, 영생,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심 같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도 자비로울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온전하심 같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도 온전함으로 닮아갈 때,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써 사다리 역할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볼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다리를 놓고 있습니까? 징검다리를 놓고 있습니까? 다리의 의미는 다르지만 세상과 하나님과 양다리를 걸치고 있습니까? 우리 양정교회 성도들은 삶의 현장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써의 역할을 잘 하여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다리를 놓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다리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부정한 짓을 하지 않고 의롭게 선하게 살아감으로 진리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서로 나뉘어진 사람들, 멀어져 있는 사람들 사이에 화평의 다리를 놓고 있습니까? 고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믿음으로 이겨내며 소망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섬김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먼저 섬기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는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다리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사랑과 희생을 통해 십자가의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왕 같은 제사장 여러분! 여러분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하는 다리의 역할을 하며 그들에게도 기쁨과 사랑을 주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3년 02월 24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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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자에게, 작은 것 부터 (I)
· 일시  2013년 01월 06일
· 말씀  마태복음 25장 31~46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위의 것을 찾으십시오
· 일시  2012년 12월 31일
· 말씀  골로새서 3장 1~3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균형을 잡는 신앙
· 일시  2012년 12월 30일
· 말씀  전도서 7장 15~1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은혜를 받은 자여
· 일시  2012년 12월 23일
· 말씀  누가복음 1장 26-3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양날 칼 같은 하나님의 말씀
· 일시  2012년 12월 09일
· 말씀  히브리서 4장 12-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언약의 사자
· 일시  2012년 12월 02일
· 말씀  말라기 3장 1-6절
· 설교  신문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