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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떡 한 조각  [4929]
· 설교 일자 : 2013년 02월 10일
· 본문 말씀 : 잠언 17장 1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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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떡 한 조각 (잠언 17장 1절)
  민족 고유 명절 설날을 맞이하여 인사드립니다. 새해에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떡국 잡수셨습니까? 나이 한 살 더 먹게 되는 게 싫어서 안 드셨습니까?
  어느 사슴 목장에서 주인 어르신에게 물었습니다. “사슴이 몇 마리나 되나요?” “289마리요.” “그럼 어르신 연세가 올해로 어떻게 되십니까?” “글쎄, 한 80은 넘었는데 끝자리는 잘 모르오.” “아니, 사슴 숫자는 정확하게 아시면서 어찌 어르신 나이는 모르십니까?” 그랬더니 사슴목장 주인이 하는 말이 “그거야 사슴은 훔쳐가는 놈이 많아서 매일 세어 보지만 내 나이야 훔쳐가는 놈이 없어서 그냥저냥 산다우!” 그러더랍니다. 그렇지요. 나이는 누가 훔쳐가지도 않습니다.
  명절이 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입니다. 집안 어른들의 등살로 명절에 집에 오는 게 싫은 사람들 말입니다. “올해 나이가 몇이지?”라고 물으며 “언제 장가 가냐?” “언제 시집 가냐?”고 묻는 질문을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렇다고 변변한 중매 한 번도 서지 않으면서 명절 때만 걱정하는 말을 하는 말을 듣는 것이 너무도 스트레스가 된다고 합니다.
  옛날 못 살던 시절, 못 먹던 시절에는 명절이 기다려졌습니다. 그나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때니까 말입니다. “학교에서 겨울 방학을 마치고 개학했다가 2월 중에 설날을 맞게 되면 선생님들이 꼭 하시는 말씀이 설날에 배탈 나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설날은 목구멍에 때 빼고 광내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어린이들은 설빔이라고 해서 부모님이 새 옷을 사 입혀주기 때문에 설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설날 당일 날 오후가 되면 설빔을 입고 골목으로 나와 서로 자랑을 합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딱 맞는 설빔은 없고 다 조금 큰 옷을 입고 나옵니다. 한번 사주면 몇 년을 입어야 하니 큰 사이즈로 사 입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못 먹고, 못 입을 때니까 먹는 것, 입는 것이 어느 정도 충족되는 때가 명절이니 명절이 기다려졌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다릅니다. 요즘은 명절 스트레스라는 말이 명절을 앞두고 메스컴에 항상 나옵니다. 명절에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은 며느리들입니다. 며느리들은 음식 장만 하는 것뿐만 아니라 명절 내내 일만하다가 끝나는 명절이기 때문입니다. 즐거운 명절이 아니라 괴로운 명절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음식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말씀합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합니다.
‘마른 떡 한 조각’은 다른 성경 번역본에는 ‘마른 빵 한 조각’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떡이 되었든, 빵이 되었든 한 조각, 그것도 마른 것 한 조각으로 가족이 화목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배가 고픈데 마른 떡 한 조각은 혼자 먹고 배부르기에는 턱도 없는 음식입니다. 이에 반해  ‘제육이 집에 가득하다’는 표현은 ‘먹을 것이 많은 큰 잔치’ ‘진수성찬’을 의미합니다.
  ‘마른 떡 한 조각’과 ‘진수성찬’ 이 두 가지만을 비교해 보면 누구나 진수성찬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음식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또한 이 말씀은 진수성찬을 차려야 가족이 화목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마른 떡 한 조각만 있어야 가족이 화목해진다는 뜻도 아닙니다. 두 가지를 비교하여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화목과 다툼을 음식과 함께 대조하여 설명하였습니다.
  네 종류의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마른 떡 한 조각을 놓고 다투고 싸우는 가정, 마른 떡 한 조각을 놓고 화목한 가정, 진수성찬을 놓고 다투는 가정, 진수성찬을 놓고 화목한 가정! 이렇게 네 가지 상황을 놓고 선택한다면 마른 떡 한 조각을 놓고 화목한 가정보다 진수성찬을 놓고 화목한 가정이 더 좋습니다. 오늘 말씀은 마른 떡 한 조각만 먹고 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을 보면, 항상 굶어라. 쉬지 말고 궁핍해라. 범사에 가난해라! 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풍성한 삶을 살라고 말씀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는 것처럼, 배고픈 것이 해결되어야 그 다음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 인생에서 먹는 것은 중요합니다. 먹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심각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전쟁도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이 점심시간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한 적이 있답니다. 사람들이 식사하러 갈 때에는 신호를 위반하고 횡단보도가 아닌 곳으로 마구 건너는 이들이 많았답니다. 그러나 식사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는 신호를 지키며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이가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먹는 문제가 이렇게 중요하고,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들에게 그것을 넘어서라고 말씀합니다. 음식의 많고 적음에 따라 기쁨과 슬픔이, 즐거움과 괴로움이, 행복과 불행이 좌우되지 않고,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말씀이 강조하는 메시지는 다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화목하라는 말씀입니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라, 화목한 공동체를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화목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다투지 않으면 됩니다. 다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먹는 것보다 화목한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잠언 15장 16, 17절에,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7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들은 오늘 본문 말씀과 함께, 물질적인 부요보다 마음의 평안이 더 중요하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사랑이 넘치는 관계가 더 중요하고, 배부르게 먹는 것보다 화목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평안과 사랑과 화목을 위해서라면 먹는 것에 연연해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잠언서에 보면, 부가 가난 보다 못하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 배부름, 풍요, 물질적인 부요는 제한적입니다. 이런 것들은 살아가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는 제한적입니다. 오늘 말씀과 연관하여 설명하면, 돈이나 배부르게 하는 음식이나 물질적인 부요가 가정을 화목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가정 화목이 돈이나 음식이나 물질적인 부요만으로 이루어지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돈이나 음식이나 물질적인 부요가 가정 화목을 결정짓고, 가정화목을 유지되도록 한다면 세상의 부자들은 분명히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야만 하며, 좋은 음식, 진수성찬을 먹으며 사는 사람들은 반드시 화목하고 평안해야 하는데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돈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돈 때문에 형제가 원수 되고, 돈이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합니다. 삼성 이건희 씨 가족들의 재산권 분쟁에 관한 소식을 듣습니다. 수백억, 수천억 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더 갖고 싶어서 그러는 것을 보면, 절대로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더 가치가 높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을 결정해주지 못합니다.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을 온전하게 바꾸지 못합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조절할 수 있게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지배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유용하게 합니다. 가치 있게 해 줍니다.
  보이는 음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화목함이 중요합니다. 화목하지 않은 진수성찬은 우리의 몸에 오히려 해롭습니다.
  교우 여러분, 만약 여러분에게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 화목 하는 것과 진수성찬 앞에서 다투는 것, 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마른 떡 한 조각만 놓고도 화목 하는 것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더 중요하고, 더 가치있는 것을 위해 먹는 것, 보이는 것, 물질적인 것을 포기할 수도 있기를 바랍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는 말씀처럼, 화목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둘째로,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마른 떡 한 조각을 놓고 화목하려면 가족이 서로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화목할 수 있습니다.
  먼저 서로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대화하고 하나로 모여야 합니다. 그래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정 안에서도 개인주의가 있으면 안 됩니다. 중국을 비롯해서 동양 전통사회에서 ‘가훈’하면 이 책을 꼽을 정도로, 무려 1,400여 년에 걸쳐 널리 읽혀 온 책이 바로 [안씨가훈]입니다. 이 책은 격변의 시대를 힘들게 살았던 안지추라는 사람이 자손들에게 혼란기를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치기 위해 집필한 책입니다. 이 [안씨 가훈(顔氏家訓)]에 보면 어느 한 집에 화로가 두 개 있으면 그 집안이 화목하지 않음을 그로써 미루어 안다고 했습니다. 안팎이나 위아래 사람이 격의 없어 모여 오순도순 하는 화로는 가족 화목의 구심체(求心體)요, 이 구심체가 두 개, 세 개 있다면 한 집안에 구심핵(求心核)이 여러 개 있다는 것이 되고, 바로 화목이 분산돼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집에 옷을 다리는 다리미가 두 개 있으면 그 하나는 없애는 것이 도리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집갈 때는 혼수로서 다리미 가져가는 것은 금기(禁忌)로 돼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한 번 들어보면 상당히 일리가 있습니다. 다리미질을 할 때는 자칫 사이가 멀어지기 쉬운 시어머니와 며느리, 시할머니와 며느리, 시누이와 올케, 그리고 동서들끼리 서로 맞잡고 다려야 합니다. 이 다리미질은 둘이서 서로서로가 은연중에 힘과 호흡을 맞추어 협력. 조화함으로써만이 가능한 작업이기에, 만약 한 집안에 다리미가 두 개 이상 있으면 서로 협력하려는 노력이 사라지고, 서로 불화를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업계(業界)에서는 개전(個電)제품이란 새말이 나돌고 있다고 합니다. 가전(家電)시대로 부터 개전시대에로의 생활혁명이 진행 중입니다. 알다시피 텔레비전, 냉장고 등 가전제품은 한 집에 하나가 상식이요, 한 가족이 모두 쓰기에 대형(大型)을 선호했는데, 이제는 소형을 지향하는 추세랍니다. 한 가족에 한 대가 아니라 각 방별로, 가족 각자가 하나씩 누리려는 추세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스마트폰과 같은 것은 그렇지 않아도 구심력 없이 이산되어 가는 가족 간의 사이를 단절시키고 이간시키는 주범입니다. 가족들이 한 지붕 아래 함께 모여 있지만 각자 스마트폰의 세계에 빠져서 대화가 단절되고 관계가 끊어지게 하여 가정 사막화와 콩가루 집안을 가속시키는 주범입니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에게는 심각한 중독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유아기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균형적 뇌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고 통합 사고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발달 장애가 일어납니다. 청소년들에게는 특히 학습 방해가 시력 저하, 안구발달 장애, 거북이목 증후군, 손가락 관절염, 어깨 통증, 손목 터널 증후군 등 질환의 위험성에 노출된다고 합니다. 이제는 부모가 죽으면 울지 않아도 스마트폰 없어지면 불행하다고 슬퍼하며 대성통곡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서로 대화하고, 서로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 서로 화목한 시간을 가져야 가정 안에서 정서적 성장뿐만 아니라, 밖에서 힘들고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 받고 치유 받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정 안에서 그런 시간과 기회와 경험이 사라지면 그것은 가정은 가정이 아닙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화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목할 수 있는 것은 가족 간의 이해와 사랑입니다. 서로를 이해하기 때문에 비록 마른 떡 한 조각이지만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서로를 위해 양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게 되는 경우는 서로 마음이 통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다투는 것입니다.
  서로 이해한다는 것은 자기중심, 자기 생각, 자기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내 안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고, 나의 세계와 다른 사람의 세계가 어울릴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른 짐승들과 달리 상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상대에게 같은 감정을 느끼는 동감의 수준보다 더 높은 상대를 이해하는 수준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명절을 맞으면서 며느리들만이 아니라 요즘은 사위들의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부 갈등, 장서 갈등이 대표적인 갈등입니다. 여러분, 이런 사실을 아십니까? 명절을 지내고 난 다음달, 그 다음 달이 이혼이 많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는 폭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며느리는 괜찮아, 우리 사위는 괜찮아 그렇지 마십시오. 교회에서는 좋은 집사님인데 집에서는 나쁜 며느리가 되지 마십시오. 교회에서는 좋은 권사님, 집사님이면서 집에서는 나쁜 시어머니, 이해할 수 없는 시어머니가 되지 마십시오.
  내가 섭섭함을 느끼면 다른 사람도 나한테 섭섭한 마음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역지사지로 생각하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그게 철든 사람이고, 진정한 어른입니다. 내가 상처 받으면 남도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것, 내가 아프면 다른 사람도 아플 수 있다는 것, 내가 스트레스 받으면 다른 사람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해하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집안의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것을 잘 하는 것입니다. 권위로, 시어머니의 권세로, 나이의 권위로 내리 누르는 것이 어른 역할이 아니라 가족 하나하나를 품고 이해하고 서로의 입장을 배려할 때, 진수성찬을 놓고도 화목할 수 있고, 마른 떡 한 조각만으로도 화목할 수 있는 가정이 됩니다.


  셋째로, 마른 떡 한 조각을 놓고도 화목하고, 제육이 집에 가득하면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려면, 가정 안의 부정적인 것을 없애야 합니다.
  부정적인 말, 부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태도, 부정적인 신앙, 부정적인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제육이 집에 가득한데 다투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다투게 되는 것은 왜일까요? 서로에게 좋은 말보다는 나쁜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남편이 아내가 옷을 사 오자 한마디 했습니다. “그것을 예쁘다고 골랐어? 당신은 도대체 물건을 고르는 눈이 없어~” 그러자 아내가 한마디 했습니다. “그래, 나는 정말 고르는 눈이 없어! 그러니까 수많은 남자 중에 당신 같은 남자 골라서 같이 살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부정적인 말이 되돌아옵니다. 나쁜 말을 하면 나쁜 말이 되돌아옵니다.
  부정적인 말이란 안 좋은 쪽으로 하는 말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이란 나쁘고 어두운 면만을 보려는 생각입니다. 그렇다 보니 장점보다는 단점을 먼저 봅니다. 칭찬 보다는 책망을, 좋게 말하기 보다는 흠집을 내는 말을, 격려하는 말보다는 비방하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니 부정적인 사람들 사이에는 온통 나쁘고 싫고 짜증나고 화나고 어둡고 불행스러운 말들이 오고갑니다. 거기에 화목이 없습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행복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생겼다가도 달아납니다.


  부정적인 말은 부정적인 생각에서 나오고, 부정적인 생각은 우리의 마음을 부정적인 것으로 채웁니다. 부정적인 마음은 부정적인 자세를 갖게 하고, 부정적인 행위를 하게 합니다. 부정적인 행위는 부정적인 습관을 갖게 하여 나중에는 부정적인 것에서부터 빠져 나오기가 힘듭니다.
  부정적인 말이나 부정적인 생각들은 바이러스와도 같습니다. 바이러스는 그냥 가만히 있지 않고, 증식합니다. 퍼져 나갑니다. 전염시킵니다. 마침내 바이러스가 생명체를 지배하여 치명적인 병을 발생시키거나 죽게 합니다. 부정적인 말이나 부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습관이 그와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선한 것이 사라지게 합니다. 부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생각은 선한 마음을 뒤흔들고 무너뜨립니다. 마음의 평안을 깨뜨립니다. 가정의 화목을 깨뜨립니다. 서로 신경질을 내게 하고, 쉽게 분노하게 하고, 서로 다투게 됩니다. 그것이 부정적인 것으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생각은 자신을 망가뜨리고, 자신을 부정적인 사람이 되게 할 뿐만 아니라 가정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그것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신앙생활은 부정적인 말과 생각을 없애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생활이고, 교회의 성장과 성숙은 교인들의 입에서 얼마만큼 부정적일 말을 적게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부정적인 말은 믿음 없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기 때문에 믿음 없는 교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대로 되는 것이 신앙인데 말입니다. 부정적인 것에 믿음을 두었는데 그 결과가 어떤 것이겠습니까?
  부정적인 말로 다른 사람의 의기를 꺾는 사람은 사탄에게 이용당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다른 사람의 부족을 들추고, 흠과 단점을 들추고 부정적인 것을 들추라는 말씀이 한 말씀도 없습니다. 부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생각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고 사탄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서로 위로하고 덮어주고 감싸주고 용납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라고 하셨지, 비꼬고 비방하고 수군수군 대고, 욕하고, 험담하고, 정죄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낙심하고, 증오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긍정적인 부모 아래서 훌륭한 자녀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부모 아래에서는 부정적인 자녀가 자라납니다. 상처 입은 자녀, 문제의 자녀, 어둡고 불행스러운 자녀가 자라납니다. 만약 부정적인 부모 아래서 훌륭한 자녀가 성장했다면, 그것은 부정적인 부모 때문이 아니고, 그에게 하나님의 치유와 은혜가, 자신의 부모의 부정적인 영향을 극복할 수 있는 가정 밖의 멘토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부모에게만 영향 받았으면서도 훌륭하게 잘 자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성경이 틀린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는 긍정적인 말, 사랑의 말, 믿음의 말이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다투며 살기를 원하십니까? 비록 마른 떡 한 조각을 놓고도 화목하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무엇보다도 화목이 먼저고, 화목이 중요하고, 화목이 더 높은 가치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화목한 가정, 화목한 교회, 화목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서로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이 철든 사람이고, 어른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해를 잘 하는 사람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이 이번 설날을 통하여 부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자세를 바꾸어 조금 더 긍정적인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긍정적인 믿음의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긍정적인 믿음대로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복이 충만히 임하시기 바랍니다.

2013년 02월 10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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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 일시  2013년 02월 03일
· 말씀  창세기 16장 1~14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하여
· 일시  2013년 01월 27일
· 말씀  창세기 13장 1~13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다음 세대를 위하여
· 일시  2013년 01월 20일
· 말씀  요한삼서 1장 2~4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작은 자에게, 작은 것 부터 (II)
· 일시  2013년 01월 13일
· 말씀  열왕기하 5장 1-14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작은 자에게, 작은 것 부터 (I)
· 일시  2013년 01월 06일
· 말씀  마태복음 25장 31~46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위의 것을 찾으십시오
· 일시  2012년 12월 31일
· 말씀  골로새서 3장 1~3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균형을 잡는 신앙
· 일시  2012년 12월 30일
· 말씀  전도서 7장 15~1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은혜를 받은 자여
· 일시  2012년 12월 23일
· 말씀  누가복음 1장 26-3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양날 칼 같은 하나님의 말씀
· 일시  2012년 12월 09일
· 말씀  히브리서 4장 12-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언약의 사자
· 일시  2012년 12월 02일
· 말씀  말라기 3장 1-6절
· 설교  신문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