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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워하시는 하나님  [3162]
· 설교 일자 : 2012년 11월 25일
· 본문 말씀 : 말라기 2장 17-3장 6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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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워하시는 하나님 (말라기 2장 17-3장 6절)

  어느 날 한 신앙인에게 고향 후배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대뜸 “형님, 저는 이제 교회를 다니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눈이 아파 하나님께 일주일 동안 새벽기도를 하며, 아침 금식도 하고, 눈을 위해 열심히 기도를 하였는데, 그 눈이 일주일 후에 좋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교회를 다니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선배 신앙인은 “그래? 그것 잘 됐다. 교회에 그만 다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후배는 교회에 계속 나오라고 붙잡지 않는 선배의 태도에 놀란 표정이었습니다. 그는 후배에게 의처증 환자 이야기를 비유로 설명을 하였습니다. ‘의처증 환자와 결혼을 하면 결혼하는 날부터 신혼이 아니라 감옥이 된다. 남편이 회사에 나가서 5분마다 전화를 하여 부인이 집에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한다. 이런 부인은 마음 놓고 목욕도 할 수 없다. 언제나 전화기를 붙잡고 있어야 한다. 급기야 의처증이 심한 남편은 부인을 믿지 못하여 출근하면서 대문을 잠그고 나간다. 남편과 같이 길을 걸어 가다가 동네 아저씨를 만나 인사라도 하면 부인에게 남편이 '저 남자 몇 번 만났느냐?'고 따진다. 약국에 들어가서 약사 아저씨를 쳐다보면 돌아오는 길에 '당신 그 남자에게 보내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아.' 하며 쏘아붙인다. 어떻게 이런 남편과 같이 살 수 있겠는가?’그러면서 그는 후배에게 부부가 사랑을 하여 결혼하였으면, 서로 믿어야지 믿음이 깨지면 함께 살 수 없다고 설명을 하면서, 신앙생활이 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고, 내 죄를 사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이것은 마치 하나님과 결혼한 것과도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믿고, 또 그 믿음 끝까지 지켜나가는 것이 신앙생활이지, 마치 의처증 남편처럼 못 믿어서 조급해 하고, 조금 아프면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지 않나 보다, 금방 기도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살아계시지 않는 것은 아닌가, 자기 생각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는가 하고 의심하고 믿지 못한다면, 그런 신앙은 건강한 신앙도 아니고, 신앙도 자라지 않고, 하나님의 크고 깊고 오묘한 은혜를 경험할 수 없다고 설명을 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그 후배는 교회에 다니지 않겠다는 말이 쏙 들어갔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마치 의처증 환자처럼 하나님을 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입니다. 본문 17절 말씀은 이스라엘의 심각한 신앙 상태, 영적 상태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17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괴롭게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괴롭게 하고도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습니까?”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뻔뻔스럽게도 하나님이 공의로우시지 못하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은 삶이 힘들어졌는데, 다른 이방 나라는 번성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당신을 섬기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무엇이 돌아왔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악인들이 진정으로 선하다고 생각하시나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난한데 그들은 부유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그토록 큰 복을 주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그들을 특별히 좋아하시고 그들을 기뻐하고 계신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 만일 하나님이 공의로우시다면,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왜 이 자리에 오셔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악인들을 벌주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애 하나님께서 괴로우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때문에 괴로우시다고 하신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오해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왜 그렇게 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까요? 신앙의 변질이 왔기 때문입니다. 신앙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70년 동안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그들 스스로 자신들이 대견스러웠나 봅니다. 자신들이 이런 일을 이루었다니 “정말 우리는 대단한 사람들이다!”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후에 성전에 여호와의 구름이 가득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셨던 것을 기억하고 자신들이 건축한 성전에도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임재의 증거가 나타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했으니 하나님께서 한량없는 복을 부어 주실 거야!”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임재의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고, 화려했던 시절에 비해 자신들이 가난하다는 점에 못 마땅했습니다. 다른 이방 나라들은 더 부강해지는데 자신들은 가난하고 어려워지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자신들의 처지와 이방민족들의 형통과 번창을 비교하면서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니까 그런 결과를 만드신 하나님에 대해서 불평과 원망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 되지도 않은 소리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선택된 백성으로 이방인들과 비교하여 굉장히 선하고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현주소를 모르고 하나님을 탓하고 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자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존심은 비교를 통한 만족을 말합니다. ‘누가 더 많이 가졌는가’에서 출발하는 소유, ‘내가 상대보다 더 잘 했는가’에서 비롯되는 성취, ‘저 사람보다는 높은 자리에 있어야지’하는 지위, 다른 사람보다 아름답고 싶은 외모, ‘내 주위엔 훌륭한 사람이 많아’처럼 나를 돋보이게 해 줄 인간관계 등에서 자존심이 생겨납니다. 누군가와 비교를 통해 충족되는 마음이 자존심입니다. “자존심 상했다.” “자존심 때문에 누구랑 창피해서 같이 일 못 하겠다”는 말을 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를 통해서 만족을 얻으면 자존심이 살고, 그렇지 못하면 자존심은 계속 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우 여러분, 자존심은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신앙은 자존심을 세우는 노력이 아닙니다. 신앙은 자존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게 정리가 안 되면 신앙생활 중에 계속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 결과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시험에 듭니다. 실족합니다.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사람 때문에, 어떤 일 때문에 결국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을 등집니다. 말라기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상태였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는 비교의식은 그들의 신앙을 무너뜨렸습니다.
  부정적인 비교의식으로 세상을 볼 때 나의 형편이나 처지나 환경에 비추어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볼 때도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 하나님을 못 믿겠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이 세상은 불공평한 것처럼 보입니다. 불공평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가만히 다른 사람들을 들여다  보십시오. 겉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약점도, 단점도, 문제도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 누구에게나 한 가지씩 약점이나 단점이나 걱정이나 아픔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갖출 것을 다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도 약점이 있고, 단점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무슨 걱정이 있을까?’라고 생각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막상 그 사람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에게도 고민이나 걱정이나 문제가 있고 아파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내 기준으로 보니까 나에게만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내 기준과 내 판단으로 하나님께서 불공평하다고 오해하여,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신앙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말라기 선지자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인 상태는 고갈되어 있었으면서도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70년 동안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성전을 건축하고 그들 스스로 자신들을 대견스러워했습니다. “이런 일을 이루었다니 정말 우리는 대단한 사람들이다!”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전 건축에 대한 자부심은 있었지만 다른 것이 뒷받침되지 못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은 세웠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성전은 세우지 못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지는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건축한 자부심으로 마음이 무한히 교만해져서 자신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은 돌아보지 않고, 감히 하나님이 공의롭지 못 하시다고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고통을 통해서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귀한 뜻은 제쳐놓고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빈정거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도 않았고, 그분의 공의로운 속성도 인정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이기적이고 현실적인 만족감에 따라 하나님을 위하기도 하고 공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의 불평은 너무도 이기적이고 무례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 선민들을 가난하게 만들 수가 있을까?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로로 끌려가게 하고, 다른 이방 민족 페르시아보다 못살게 하실 수 있을까?” 그러면서 “모든 악을 행하는 자가 하나님의 눈에는 좋게 보이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구나!”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조롱했습니다.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고 반문했습니다. 그들은 자부심만 있으면 다른 것도 다 성취되는 줄 알았습니다.   스스로 의롭고 당당하다고 주장하는 그들은 바로 하나님께 흠 있는 짐승을 제물로 바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불평이나 하고, 이교도와 결혼하고, 아내를 저버리며 살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받고 있는 고난은 대부분 스스로 자초한 결과라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자부심이란 외부 환경에 영향 받는 일시적 만족감입니다.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에 의한 성과를 통해 발생하는 긍정적인 자의식입니다. 어떤 일을 했을 때 잘했다고 주위로부터 칭찬을 받게 된다든지 하면 자부심을 갖습니다. 그런데 이 자부심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지 못하거나 비난을 받으면 자부심이 적어지거나 사라집니다. 자부심은 지속적이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자부심을 갖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좋지만 자부심은 지속되지 않는 긍정적인 자의식이기 때문에 상황과 환경에 의해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부심을 느끼고, 자부심을 갖고 사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어떤 성도는 신앙생활 한지 오래 된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자신의 직분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봉사를 열심히 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자신의 신앙이 조상 대대로 몇 대가 내려오는 신앙이기에 자부심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좋습니다. 긍정적 자부심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자극과 열심을 북돋아줍니다. 그러나 자부심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 교만한 마음을 갖게 하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신앙의 자세를 흐트러뜨리는 것이 되면 안 됩니다. 영적인 겸손과 순수함, 진실함, 그리고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없이 자부심만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과 멀어지게 합니다. 신앙이 변질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고난 속에 있고, 감옥에 갇히고, 억울한 일을 겪을 때에도 언제나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질그릇 같은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가 담겨져 있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내 안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실 것이다!” 그의 자부심은 자신이 이루어놓은 일이 아니라 자신 안에 계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업적이나 공로나 능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계신 보배이신 예수님, 능력 주시는 분이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자부심의 근거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우리의 자부심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자부심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방법은 참으로 쉽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도 참으로 쉽습니다.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방법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반드시 사랑하시는 분임을 믿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괴로우신 것은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이 시원치 않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제물에 연연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때문에 괴로우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인 그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것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그렇게 괴롭게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실 때, 다른 피조물들은 모두 말씀으로 만드셨습니다. 오직 사람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파트너로써 세상을 다스리고 돌보고 관리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었다는 뜻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가 사라지게 되고,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다스리고 돌보고 관리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끊어지면 부모의 마음이 찢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믿지 않고, 부모와의 관계도 끊고, 부모를 만나러 오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부모와 관계를 끊고 살면서도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 것도 아니라면, 부모의 마음은 괴롭고 슬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괴롭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사라지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부모라고 가정하여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부모님이 날 사랑이나 하십니까? 도대체 지금까지 날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내가 사달라고 한 것을 제대로 다 사준 적이 있습니까? 말로만 나를 사랑한다고 하지 도대체 나에게 해 준 것이 뭐가 있습니까? 학교 다닐 때, 최고 수준의 개인교사를 붙여주었습니까? 비싼 옷을 사 주었습니까? 용돈을 풍족하게 준 적이 있습니까? 도대체 뭣 가지고 날 사랑했다고 하십니까?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다른 집을 보면 부모들이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주던데 우리 집을 보니까 부모님이 날 사랑한다는 말을 못 믿겠습니다. 오히려 우리 부모님은 다른 집 애들에게 좋은 것 사주고, 다른 집 애들을 더 좋아하시나 봅니다. 나한테 잘 안 해주시는 것을 보니까. 그래서 난 부모님과 부모자식 관계를 끊겠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에게 와서 이런 말을 한다면,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귓방망이를 한 대 후려갈기겠습니까?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요? 그런데 한 대 주어 박으면 해결됩니까? 이런 말을 듣는 부모의 마음은 괴롭기 그지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만약 자식에게 그런 말을 듣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떤 말을 해 줄 것 같습니까? 그냥 그런 자식은 없었던 걸로 하고 연을 끊어버리라고 말해주겠습니까? 그런 자식을 잊어버리라고 말해주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면 자식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아! 그렇게 하면 되겠군요. 내가 왜 진작 몰랐을까요? 그놈의 자식들을 깨끗이 잊고 관계도 끊고 이 세상에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까요? 그렇게 안 되지 않습니까? 왜죠? 자식이니까! 부모니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니까! 상점 주인과 고객의 관계도 아니고,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도 아니고, 음식점 주인과 손님과의 관계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와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없던 것으로 하고 싹 지워버릴 수 있는 관계라면 벌써 하나님께서 싹 지워버리셨을 것입니다. 그런 관계라면 이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했어도 벌써 수천, 수만 번은 더 심판을 받았을 것입니다. 물로 심판, 불로 심판, 폭풍으로 심판, 폭설로 심판, 폭염으로 심판, 또 다시 불로 심판, 물로 심판,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심판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사람의 종자는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게 타락했고,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수많은 죄악을 범하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차라리 괴로움을 참고 기다리시기로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이 회복되고, 믿음이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의 사랑이 회복되고, 믿음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말라기 선지자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은 점점 자기중심의 신앙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지금의 처지, 지금의 형편, 자신들의 영적 상태는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 자신들이 기대했던 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실망과 한탄이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 생각대로 하나님께서 움직이지 않으신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않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의 시간표대로 움직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계획표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표에 맞추어 하나님께서 움직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계획표대로 하나님께서 행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불러내면 대기하고 계시다가 곧 바로 나타나시고, 우리가 도움을 요청하면 지체하지 않으시고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불러만 내면, “주인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며 나타나 소원을 들어주는 동화 속의 ‘요술램프 속의 지니’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뚝딱하고 두드리면 소원을 이루어주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닙니다.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내 욕심대로 하나님을 휘두를 수 있고, 조정할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입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 괴로우신 것은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보시고 괴로우신 것입니다. 부모는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자식들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리고 도려내는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온전히 믿지 못해서 매일 걱정하면서 살고, 불안해하면서 살고, 두려움 속에 사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괴로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날 믿지 못하느냐? 왜 다른 곳에서 기웃거리느냐? 왜 도울 힘이 없는 우상과 거짓 신에게 도움을 구하느냐? 왜 끝까지 날 믿지 못하느냐? 왜 조금만 더 날 믿고 기다리지 않느냐? 믿고 맡겨라! 나는 너희를 사랑하여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이다. 지금까지 약속한 것을 다 지켰고, 도우는 손길을 펼쳐 주었고, 내가 베푼 은혜, 나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고 믿어라! 태양이 빛나지 않을 때에도 태양이 있음을 믿어라. 사랑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사랑이 있음을 믿어라. 내가 침묵을 지킬 때에도 내가 살아있음을 믿어라. 나를 믿으면 내가 도와주리라. 내가 건져주리라. 반드시 은혜를 베풀 것이다.”
우리가 믿지 않아 괴로워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불평하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공로나 업적이나 무엇인가를 성취한 자부심으로 하나님 앞에 서지 마십시오. 겸손히 은혜를 구하십시오.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지금 당장 상황이 바뀌지 않더라고, 금방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내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대로 이루어지 않더라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 베푸시길 원하시는 선하신 하나님,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기다리며 마침내 역전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2년 11월 25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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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
 시험에 들지 않게
· 일시  2013년 03월 24일
· 말씀  마태복음 26장 36-46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십자가의 능력으로
· 일시  2013년 03월 17일
· 말씀  고린도후서 13장 4~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십자가, 가장 큰 차이
· 일시  2013년 03월 10일
· 말씀  요한복음 3장 13~1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묵은 땅을 기경하라
· 일시  2013년 03월 03일
· 말씀  호세아 10장 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다리 놓는 사람
· 일시  2013년 02월 24일
· 말씀  베드로전서 2장 9-1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문제 뒤에 있는 하나님의 뜻
· 일시  2013년 02월 17일
· 말씀  요한복음 6장 1-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마른 떡 한 조각
· 일시  2013년 02월 10일
· 말씀  잠언 17장 1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 일시  2013년 02월 03일
· 말씀  창세기 16장 1~14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하여
· 일시  2013년 01월 27일
· 말씀  창세기 13장 1~13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다음 세대를 위하여
· 일시  2013년 01월 20일
· 말씀  요한삼서 1장 2~4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작은 자에게, 작은 것 부터 (II)
· 일시  2013년 01월 13일
· 말씀  열왕기하 5장 1-14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작은 자에게, 작은 것 부터 (I)
· 일시  2013년 01월 06일
· 말씀  마태복음 25장 31~46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위의 것을 찾으십시오
· 일시  2012년 12월 31일
· 말씀  골로새서 3장 1~3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균형을 잡는 신앙
· 일시  2012년 12월 30일
· 말씀  전도서 7장 15~1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은혜를 받은 자여
· 일시  2012년 12월 23일
· 말씀  누가복음 1장 26-3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양날 칼 같은 하나님의 말씀
· 일시  2012년 12월 09일
· 말씀  히브리서 4장 12-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언약의 사자
· 일시  2012년 12월 02일
· 말씀  말라기 3장 1-6절
· 설교  신문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