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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4074]
· 설교 일자 : 2012년 09월 30일
· 본문 말씀 : 시편 39편 1-7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스트리밍 영상과 음원을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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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편 39편 1-7절)
  우리나라에 승용차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9인승, 12인승 승합차가 보급되면서 봉고라는 이름의 승합차가 나왔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전국 교회가 많이 구입하여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승합차를 말할 때, ‘봉고’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봉고 차를 텔레비전에서 이렇게 광고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추석 명절에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봉고타고 찾아온 자손들에게 “봉고 덕분에 다 모였구나!”라고 하면서 환하게 웃는 광고입니다. 그렇게 봉고 덕분에 가족들이 한 차에 다 타고 다 모일 수 있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고향 길에 온 가족이 함께 봉고타고 가다가 봉고 덕분에 천국에 다 모이는 일도 있었습니다. 운전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이 추석이자 주일이다 보니, 가정주부님들, 며느님들은 주일 지키는 것이 많이 어려우실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주부님, 며느님! 이렇게 님자를 붙여야 합니다.
  명절이 되면 흩어져 있던 친척, 가족, 형제들이 모입니다. 고향을 찾아 갑니다. 그런데 고향을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의 마음은 명절이 기쁘기만 한 명절은 아닙니다. 북쪽에 두고 온 고향을 그리는 분들도 계시고, 부모님이 더 이상 고향에 살아 계시지 않아서 고향을 찾아 가는 마음이 허전하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고향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고향에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형편 때문에 명절의 기쁨보다는 쓸쓸하고 외로움이 가득한 분도 계실 것입니다.
  이번 추석에 친척, 가족들이 모이면 년말 대통령 선거 이야기가 많이 나올 것을 정치권에서는 기대합니다. 그러나 오랜만에 모이는 가족 모임이 정치 이야기 때문에 목소리가 커지거나 싸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 이야기를 하면 목숨을 걸고 이야기를 합니다. 또 이번 추석에는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걱정되는 사건들, 경제 경기 이야기, 국제 정세 등도 이야기가 나올 것입니다. 점점 세상이 험악해져가고 힘이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나오겠지요. 세상이 어찌 될라고 끔찍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느냐고 걱정도 하겠지요.
  또 세월이 가면서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새로운 가족이 생기기도 하고, 지난 명절 때는 계셨던 부모님이나 형제, 친척들 중 이제는 함께 모일 수 없는 분도 있어 허전함이 클 때도 있습니다.
명절을 지내고 각자 가정으로 돌아가면서 차속에서 부모님 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 조카 또는 손주 누구는 몰라보게 컸다든 이야기, 누구 집에는 무슨 일로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하겠지요. 다음 명절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요? 그렇게 세월이 또 한 해가 지나갑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버스에 탄 것에 비유를 했습니다. 인생버스를 타고, 학교에서 중간고사 준비를 하다가 잠깐 졸았는데 깨어보니 20년이 지나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인생버스 몇 정거장을 지나지 않았는데 그 동안 아내와 두 자녀가 생겼고, 또 인생버스에서 잠깐 졸다보면 40세이고, 또 조금 졸다보면 60세가 되었고, 조금 더 있으니까 종점에 왔다고 다 내리라고 한다고 표현했습니다. 인생 버스 안에서 많은 일들이 지나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렸습니다. 그 안에서 생노병사희노애락이 있었습니다. 왜 그리 세월이 빠른지...

  오늘 본문 시편 39편의 시에도 다윗이 너무도 빨리 지나간 인생을 돌아보며 고백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빨리 지나가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니 하나님 앞에서 마치 자신의 인생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할 때 뭣 좀 있다고 생각하던 인생의 그 때, 뭣 좀 했다고 자부했던 인생의 그 때가 허사뿐이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열심히 살아 온 것 같지만 그림자처럼 다녔고, 헛된 일에 괜스레 소란하고 부산스럽게 살았고, 지나고 나니 별거 아니었는데 그 때는 왜 그리 잠 못 자고 정신없이 허둥댔는지, 또 열심히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고 돈을 번다고 벌었지만 그 돈이 다 어디가고 없는지, 빈손처럼 된 자신의 인생을 돌아봅니다. 한 마디로 인생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인생무상을 느끼고,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았습니다. 다윗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 나라를 당시 최고, 최강의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바른 신앙을 가지고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 그도 나이가 들었습니다. 몸도 쇠약해졌습니다. 가정 안에 이런 저런 가슴 아픈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그리고 자신의 인생의 앞날을 바라보며 고백합니다. 7절,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다윗의 이 고백은 질병과 죽음과 허무한 인생에서 절망을 넘어선 신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 앞날을 위해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앞날을 향해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소망은 우리의 삶의  에너지입니다. 심리학자들이 실험을 하였습니다. 물이 든 항아리에 쥐를 넣고 캄캄하게 하였더니 30분 후에 쥐가 죽었습니다. 체력이 다 떨어져서가 아니라 절망감 때문에 빨리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항아리에 한 가닥 빛을 비추고 있을 때는 쥐가 무려 36시간을 생존하더랍니다. 소망이 주는 힘은 대단합니다. 소원, 희망, 소망은 사람의 삶에 에너지를 줍니다. 의학자들에 의하면, 소망은 육신적으로도 심장 혈액순환, 신진대사, 소화 작용, 뇌와 신경 조직에 결정적인 활력을 준다고 합니다. 소망이 곧 활력이며 의욕의 씨이고, 전진의 에너지입니다. 소원, 희망, 소망이 없는 사람은 삶의 생기가 없습니다. 현재의 삶에 동기와 의미가 없습니다.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소망은 가장 중요한 기독교 용어 중의 하나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소망은 믿음과 사랑과 함께 항상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의 시제는 과거, 현재, 미래입니다. 소망은 특별히 미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소망은 우리의 삶의 환경을 이겨내고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입니다.  
  여러분, 소망 중에 거짓 소망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참된 소망이 아닌 거짓 소망 말입니다. 거짓 소망은 헛된 것에 소망을 두는 것을 말합니다. 욕망, 욕심과 관계된 소원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루어지면 좋고 안 이루어지면 할 수 없는 그런 희망 사항을 일컬어 거짓 소망이라고 합니다. 대중가수 변진섭 씨의 [희망사항]이라는 제목의 노래 가사가 이렇습니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 내 얘기가 재미없어도 웃어주는 여자 / 난 그런 여자가 좋더라 // 머리에 무스를 바르지 않아도 / 윤기가 흐르는 여자 / 내 고요한 눈빛을 보면서 / 시력을 맞추는 여자 // 김치볶음밥을 잘 만드는 여자 / 웃을 때 목젖이 보이는 여자 / 내가 돈이 없을 때에도 /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여자 ......
여보세요 날 좀 잠깐보세요 / 희망사항이 정말 거창하군요 / 그런 여자한테 너무 잘 어울리는 /
난 고런 남자가 너무 좋아 / 너무 좋아 내 스타일이야 오우 - ” 희망 사항입니다. 되면 좋고 안 되면 할 수 없는 그런 희망사항이 성경이 말하는 소망이 아닙니다.
  성경은 단순히 희망사항을 적어 놓은 책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소망은 소원이 아니라, 희망 사항이 아니라, 실재입니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반드시 성취하실 사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 소망을 품고 미래를 향하여 살아갑니다.
  우리는 소망을 갖는다고 하면, 소망의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소망의 내용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소망을 이루게 해 줄 그 누군가가 없다면, 소망을 이루게 할 그 어떤 것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소망, 원대한 소망, 놀라운 소망을 가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소망은 소망을 이루어 주실 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소망은 소망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고 믿고 품는 소망은 세속적인 소원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 바라는 소망이 진정한 소망입니다. 영원한 소망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희망을 갖고 살면서 그 희망이 이루어질 때, 기쁘고 성취감을 느끼며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잠깐뿐인 기쁨이며, 잠깐뿐인 성공이며, 잠깐뿐인 행복일 뿐입니다. 여기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데이빗 리빙스턴입니다. 20세기의 위대한 기독교인이요 선교사입니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다가 하나님이 부르심을 받아 그의 시신이 영국으로 옮겨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수많은 군중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어떤 노인이 외로이 혼자서 군중들 후미에 홀로 서서 가슴을 조이며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이 노인은 다름 아닌 리빙스턴의 친구 윌리암이었습니다. 그는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 선교하러 가겠다고 나섰을 때 "미친 사람"이라고 말한 장본인이었습니다. 윌리암은 리빙스턴이 아프리카로 떠난 후 런던에서 큰 부자가 되었으며, 오직 자기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윌리암은 리빙스턴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에서 고생하고 살았지만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명성을 떨치며 이 세상을 떠나는 구나! 그러나 나는 비록 부자라고 말할 수 있으나 소망 없는 세상을 위해서만 살았으니 얼마나 부끄러운가"라고 한탄한 것입니다. 비록 리빙스턴은 가난하고 고생하며 선교지에서 보잘 것 없는 인생처럼 살았지만,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친구 윌리암은 부자요 세상에서 부러울 것 없이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소망 없는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았고, 소망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인생은 어디에 소망을 두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에드워드 모우트는 1797년 1월 21일 부모가 선술집을 경영하는 성경이 허용되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신앙과 동떨어진 환경에서 자라나 나쁜 길을 걷게 되었고, 옷장 제조업자 밑에서 기술을 배워 가구 목공이 되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옷장을 만들면서 열등의식과 반항심, 원망 등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겨우 이런 공장에서 망치나 두들기며 일하다니….” 어느 추운 겨울날, 런던 거리를 배회하던 그는 자그마한 교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나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일 후, 에드워드는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내 망치는 이제 노래하며 춤을 춘다. 그리고 내 눈동자에는 생기가 돌고 내 마음속에는 생수가 솟는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오셨기 때문이다.” 그는 행복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일하면서도 찬송을 불렀으며, 일하는 보람이 생기자 일의 능률도 오르고 신용도 얻어 수입이 좋아졌습니다. 그는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거듭나게 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그가 소유한 재산을 교회를 짓는 데 아낌없이 드렸고, 그 자신도 목사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소망 되신 주님께 감사의 시를 지어 드렸습니다. 그 시가 바로 찬송가 488장 가사입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후렴) 주 나의 반석 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2절, 무섭게 바람 부는 밤 물결이 높이 설렐 때 우리 주 주신 은혜에 소망의 닻을 주리라 / 3절,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하나님께 둔 우리의 소망은 산 소망입니다. 죽은 소망이 아닙니다. 거짓 소망이 아닙니다. 헛된 소망이 아닙니다. 소망을 이루어주시는 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계시며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지금까지 약속하신 모든 말씀을 다 이루셨고, 앞으로도 이루실 살아계신 하나님께 둔 소망이기에 우리의 소망은 산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죽음, 진노와 저주 아래에서 절망 가운데 있는 인간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해 외아들 성자 하나님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소망이 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소망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슬픔을 이기고 기쁨을 주셨고, 어둠을 이기고 빛을 주셨습니다. 절망을 이기고 소망을 주셨습니다. 무거운 짐이 아니라 복음을 주셨습니다. 복음은 영원한 소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믿음으로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부활할 것입니다. 영생할 것입니다. 영원한 기업과 상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복음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음으로 우리가 갖게 된 소망은 영원한 소망입니다. 우리의 가장 소중한 소망입니다. 하늘에 쌓아 둔 소망입니다. 교우 여러분, 이 땅을 살면서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소망, 부활할 소망,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소망,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를 보고 영원한 상급과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기업을 얻을 소망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언제나 산소망을 주님께 두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소망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우리를 낙심케 하고 절망케 하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 날마다 소망을 이루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둔 소망을 굳게 붙잡고 사는 그리스도인은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소망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인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 믿음의 확신이 있는지, 구원의 확신, 부활의 확신, 영생의 확신이 있는지를 확인해 봐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에 사도 베드로는,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라고 말씀했습니다. 소망을 붙잡고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살아가는 성도의 삶을 말씀했습니다. 누가 묻든지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대답할 말을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항상 확신 있는 신앙생활을 하라, 목적과 방향이 분명한 신앙생활을 하라, 그리고 늘 그 신앙이 살아있고 주님과 함께 하는 신앙생활을 하여 늘 간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의 신앙을 언제든지 고백할 수 있고, 나눌 수 있고, 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합니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었기 때문이고, 소망을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을 가진 사람은 소망 중에 즐거워합니다. 로마서 12장 12절에 말씀합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소망이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먼저 즐기는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좋은 것입니다. 신이 나지요.
소망을 가진 사람은 인내합니다. 소망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 때까지 참고 기다리며 인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삶의 목적과 목표와 방향이 분명합니다. 달리기로 비유한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디를 향해 뛰는지도 알지 못한 채 달려가는 경주자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를 향해 뛰고 있느냐? 목적지가 어떤 곳이냐? 목적지까지 뛰고 나면 무엇을 얻느냐? 소망을 이루기까지 참고 견디고 인내하는 이유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인내는 그냥 무슨 고행이나 수양을 위한 인내가 아닙니다. 도를 터득하기 위한 인내가 아닙니다. 소망이 이루어질 때까지 믿음으로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소망을 품고 천국 백성으로 살기 위해 준비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디모데전서 4장 8절에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면서 10절에,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경건훈련을 하면서 경건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고,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약속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기 때문에 그 소망을 위해서 천국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누가 여러분에게 “도대체 왜 예수를 믿는 거야?” “예수를 믿으면 뭐가 이루어지는데?” “한번뿐인 이 세상 삶인데, 실컷 즐길 것 즐기고 놀거 놀고, 맘대로 살지, 뭘 그리 절제하고 인내하며 살아?”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이 세상의 욕망을 이루는 소원과는 다른 너무나도 영원하고 확실하고 소중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이라고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 따라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면 핍박 받지도 않을 수 있고, 남들에게 비야냥과 조롱을 받지 않을 수도 있고, 둥글둥글 누이 좋고 매부 좋게 그냥 그렇게 살면 되지, 꼭 그렇게 뭐는 해야 하고, 뭐는 하지 말아야 하고, 주일은 꼭 교회에 나가 예배 드려야 하고, 뭘 그렇게 사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새벽기도회에 나가는 여러분에게 이웃집 사람이 묻습니다. “이 꼭두새벽에 어딜 가는 거예요? 잠 안자고 교회엘 가는 이유가 뭐요?”  “추석 명절인데도 그냥 집에서 친척들과 가족들과 쉬고 놀지 뭐 하러 교회엘 나가요?”라고 묻는다면 “나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소망이십니다.” 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당신은 상황이 힘들고 어려운데도 어떻게 그렇게 즐겁게 긍정적으로 살아가십니까?” 라고 묻는다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내 소망이시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긍정적일 수 있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니 즐겁고 활기 찰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소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으로 품고 보이지 않는 소망을 이루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보증해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소망 자체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소망 없는 인생에 소망이 생겼습니다. 절망과 멸망과 허망 밖에 없었던 인생에 산 소망이 생겼습니다.

교우 여러분, 고난 중에 있습니까? 시련 가운데 있습니까? 사면초가입니까? 지루하십니까? 좌절하셨습니까? 절망 가운데 있습니까? 소망이 없는 사람처럼 쉽게 좌절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하나님께서 절대로 절망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소망으로 삼으십시오. 예수님 안에 산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때 소망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소망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약속과 능력이 소망을 이루게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가 소망을 이루어주십니다.
  교우 여러분,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인생이 빠르게 지나가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삶의 환경이 힘들고 어려워도 오직 예수님을 소망으로 삼으십시오. 소망으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왜 그렇게 소망을 붙잡고 살아가는 지를 확신 있게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둔 소망을 이루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2년 09월 30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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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
 시험에 들지 않게
· 일시  2013년 03월 24일
· 말씀  마태복음 26장 36-46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십자가의 능력으로
· 일시  2013년 03월 17일
· 말씀  고린도후서 13장 4~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십자가, 가장 큰 차이
· 일시  2013년 03월 10일
· 말씀  요한복음 3장 13~1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묵은 땅을 기경하라
· 일시  2013년 03월 03일
· 말씀  호세아 10장 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다리 놓는 사람
· 일시  2013년 02월 24일
· 말씀  베드로전서 2장 9-1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문제 뒤에 있는 하나님의 뜻
· 일시  2013년 02월 17일
· 말씀  요한복음 6장 1-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마른 떡 한 조각
· 일시  2013년 02월 10일
· 말씀  잠언 17장 1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 일시  2013년 02월 03일
· 말씀  창세기 16장 1~14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하여
· 일시  2013년 01월 27일
· 말씀  창세기 13장 1~13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다음 세대를 위하여
· 일시  2013년 01월 20일
· 말씀  요한삼서 1장 2~4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작은 자에게, 작은 것 부터 (II)
· 일시  2013년 01월 13일
· 말씀  열왕기하 5장 1-14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작은 자에게, 작은 것 부터 (I)
· 일시  2013년 01월 06일
· 말씀  마태복음 25장 31~46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위의 것을 찾으십시오
· 일시  2012년 12월 31일
· 말씀  골로새서 3장 1~3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균형을 잡는 신앙
· 일시  2012년 12월 30일
· 말씀  전도서 7장 15~1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은혜를 받은 자여
· 일시  2012년 12월 23일
· 말씀  누가복음 1장 26-3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양날 칼 같은 하나님의 말씀
· 일시  2012년 12월 09일
· 말씀  히브리서 4장 12-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언약의 사자
· 일시  2012년 12월 02일
· 말씀  말라기 3장 1-6절
· 설교  신문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