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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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3873]
· 설교 일자 : 2008년 11월 09일
· 본문 말씀 : 요한복음 14장 27절
· 설교 :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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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요한복음 14장 27절)

  설교만 시작하면 조는 집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그 집사를 불러 조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집사님, 왜 매번 설교시간에 좁니까?” “목사님, 목사님 설교가 시작하면 안심이 되어 마음이 평안하기 때문에 잠이 듭니다.” 한술 더 떳습니다. “안심이 된다니 무슨 말입니까?” “목사님의 설교는 교리적으로 맞고, 이단의 주장도 가르치지 않고, 좋은 말씀을 하시니까 제가 신경 쓸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제가 안심이 되어 평안하게 잠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더랍니다. 뻔뻔도 이 정도면 감당이 불감당입니다. 오늘 설교 시간에는 안심이 되어 평안하게 푹 잠자는 분이 있다면, 저는 그 때부터 여러분을 잠에서 깨도록 불안하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오늘 말씀은 평안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평안을 제자들에게, 우리들에게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안, 평강, 화평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근심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평안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두려움 속에 있는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하신 첫 말씀이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은 우리들에게 평안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여러분, 편안과 평안을 구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편안하면 평안한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편안은 육체적인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울퉁불퉁한 야외 땅 바닥에서 잠을 자다가 집 안의 침대에서 잠을 자게 될 때 느끼는 것은 편안입니다. 밥 먹은 그릇을 일일이 설거지를 할 때 귀찮게 느끼던 것에서 식기세척기가 자동으로 설거지를 해 줄때 느끼는 것이 편안입니다. 편안은 불편의 반대되는 말입니다. 불편한 것보다는 편안한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편안하다고 다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평안은 불편의 반대말이 아니라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 고통, 환난의 반대입니다. 행복을 느끼는 마음 상태의 가장 기본은 평안입니다. 평안이 깨질 때 불행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을 주려는 것이 아니고 평안을 주려고 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오늘 본문 말씀처럼, 우리에게 평안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않다. 그러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과 주님께서 주는 평안이 같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으로는 진정한 평안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가짜 평안이 있고, 참 평안이 있으며, 잠깐 평안이 있고, 지속적인 평안이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마치 사막의 신기루와 같습니다. 신기루는 사막 같은 곳에서 나타납니다. 지면 온도와 대기 공기 온도 차이가 많이 날 때에, 빛의 굴절현상에 의해서 멀리 있는 물체가 실제의 위치가 아닌 곳에서 보이는 현상입니다. 신기루는 사막에 꼭 물이 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곳까지 헐떡거리고 가면 아무 것도 없어서 결코 물을 얻지 못하고 사막에서 갈증으로 죽어가게도 만드는 현상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그것에 뭔가 있는 줄 알고 그것을 구하지만 절대로 우리 영혼의 갈증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마치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누리고자 하는 평안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의 평안을 깨뜨릴까요?
  빅토르 위고의 단편소설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포를 실은 배가 태풍을 만났다. 거친 파도는 대포를 묶은 쇠사슬을 단숨에 끊어 버렸다. 선원들은 배 안에서 이리저리 뒹구는 대포를 고정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선원들은 태풍보다 배 안의 대포를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그때 선원들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우리를 진정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외부의 태풍이 아니라, 제 멋대로 굴러다니는 대포다.’ ” 내부에 있다는 뜻입니다. 교우 여러분, 풍랑이 이는 바다와 같은 인생을 항해하는 우리들을 위협하여 평안을 깨뜨리는 내면의 대포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평안을 깨는 근원적인 원인은 죄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에, 그들은 하나님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으시니까 아담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습니다.” 하나님을 뵐 낯도 없었고, 두려웠습니다. 죄가 들어와 그들이 누리던 에덴동산의 평안이 깨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죄는 우리 마음과 영혼 속에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죄를 짓고 나서 기분이 좋습니까? 여러분이 양심이 마비되고, 양심이 화인 맞은 변태 범죄자가 아니라면, 죄를 짓고 나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고, 영혼의 평안은 깨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죄를 하나도 안 지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죄의 실재와 죄를 짓도록 활동하는 사탄 때문에 우리는 죄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죄는 우리 안에 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서 활동을 합니다. 죄는 우리 안에서 우리를 얽어맵니다. 사탄의 말을 듣도록, 유혹에 쉽게 끌려가도록, 우리 자신의 양심에 대해서 귀를 닫도록, 선한 것을 행하지 못하도록 죄는 우리 안에서  활동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모든 부정적인 생각과 흘기는 눈과 음란을 일으키고, 모든 탐욕으로 행해 가도록 압박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주스럽고 추하고 영혼을 파괴하는 악행을 행하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안에 있는 죄는 우리 영혼에 대해 두 가지 일을 합니다. 한 가지 일은 우리 영혼을 약하게 하고 활력을 빼앗아 가는 일이고, 또 하나는 영혼의 위로와 평안을 빼앗아 가는 일을 할 것입니다. 죄로 인해 영혼이 약하게 되고, 활력을 잃게 되면 우리의 마음의 정서는 뒤엉키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의 틀이 깨어져 하나님을 마음에서 몰아냅니다. 멀리합니다.
  죄는 우리 안에 있던 평안을 앗아갑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근심하십니다. 그 후에 더욱 죄를 지으면 성령 하나님께서 탄식하십니다. 그리고 더 죄를 지으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십니다. 평강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께서는 죄 때문에 우리 안에 거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계속해서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은 죄를 품고서 고의로 하나님을 거역한다면, 참 평안을 누리는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 전에는 결코 이 세상에서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죄를 지었다면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회개하며 돌이키는 우리들에게 사도행전 3장 19절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교우 여러분, 죄로 인하여 양심이 굳어지고, 영혼이 약해지고, 불안하고, 평안이 사라지지 않도록 회개하고 새롭게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에게서 평안을 깨뜨리는 것은 욕심, 즉 탐욕입니다.
어느 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이 난로 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난로 불이 너무 뜨거웠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하녀를 불렀습니다. “난로불이 너무 뜨거우니 불 좀 낮추시오.” 그 난로는 장작을 사용하는 것이어서 당장 불을 줄이기는 힘들었습니다. 하녀가 뉴턴을 잠시 바라보더니 웃으며 말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의자를 조금 뒤로 물리시면 될 것 같은데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천재적인 과학자도 아주 간단한 사실을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추구하는 바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왜 평안이 없고, 왜 행복하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도 않고 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욕망과 탐욕의 뜨거운 난로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면 마음의 평안이 찾아올 텐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점점 뜨거운 난로에 가까이 가면서 왜 뜨겁냐고, 왜 만족이 없냐고, 왜 평안하지 못하냐고, 왜 행복하지 않냐고 합니다.
  왜 만족하지 못할까요? 왜 평안을 잃어버릴까요? 욕심을 줄여보십시오. 욕심의 난로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보십시오. 욕심의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욕심, 탐욕으로 우리의 평안을 깨뜨리는 근심과 파멸과 멸망에 떨어지지 않도록 디모데전서 6장 6-10절에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자족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면 근심에 빠지게 됩니다. 시험과 올무에 걸립니다. 파멸과 멸망에 떨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흑인 미국 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여성과 흑인을 대통령으로 뽑지 않는다는 미국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증거라지요. 대통령의 이름이 버락 오바마입니다. 미국도 미국경제의 위기 때문에 경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통령을 기대했고, 변화를 요구하는 다 인종들의 마음이 합쳐진 작품입니다. 미국 대통령은 세계 대통령이라고까지 불려집니다. 세계 경제가 탐욕으로 인해 위기를 자초하였습니다. 그런 상황에 화를 버럭 내면서 오바 하지 말라고 경고 하는 사람, 이 사람이 버락 오바마입니다. 욕심을 과하게 부리지 말고, 탐욕을 오바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욕심을 내면 마음의 평안이 깨집니다. 오바하지 않는 것이 자족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끝없는 탐욕을 채우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며 스트레스 있는 데로 받으면서 살 것인가, 아니면 열심히 땀 흘리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해 자족하면서 감사하고, 평안을 누리며 살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간구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대해 감사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제게 족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사랑과 주신 복에 감사드립니다.”라고 고백하는 마음이 자족하는 마음이며, 평안을 유지하는 마음입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감사와 평강은 같은 식구입니다. 감사와 평강은 한 집에 삽니다. 그래서 언제나 같은 마음속에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감사함으로 탐욕을 물리치고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의 마음의 평안을 깨뜨리는 것은 감추어진 마음의 상처입니다.
상처는 보이는 상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감추어진 상처도 있습니다. 감추어진 상처는 그것을 생각할수록 마음이 상하고, 비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고통을 느껴 마음의 평안이 깨어집니다. 배신당한 것, 거절당한 것, 속임 당한 것, 이용당한 것, 지나치게 비난을 받은 것, 학대 받은 일 등을 자기 내면에 품고서, 외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내면에서는 갈등과 고통과 분노와 증오심으로 힘겨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다가도 내 안에 감추어진 상처를 건드리는 어떤 말이나, 어떤 이미지나, 어떤 환경이나, 상처를 준 사람과 관계된 어떤 내용이 연관이 되면, 마음의 평안은 깨집니다. 순식간에 평안은 사라지고 소용돌이치는 감정과 격분한 숨결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얼굴은 상기되고, 심장 박동이 빨라집니다. 그리고 손끝이 떨리고, 이성을 잃고 오직 분노만이 가득 찹니다. 순식간에 분노와 증오심이 평안을 내어 쫓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이미 그런 사실을 다 잊어버리고 잘 먹고 잘 사는 데, 나는 그 일을 잊지 못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반복하여 분노의 신물이 올라옵니다. 그것을 생각만하면 두통이 생깁니다. 신경성 소화불량이 생깁니다. 혈압이 상승하고 목이 뻣뻣해지고 뒷골이 댕깁니다.
  여러분, 가시가 박혔을 때, 가시를 빼지 않으면 그 가시가 계속 나를 괴롭힙니다. 가시를 빼지 않고 그냥 둬도 괜찮겠거니 하고 살다보면 가시 찔린 곳이 뻘겋게 되고, 곪아 오듯이, 감추어진 상처를 그냥 놔두면 자신이 더 해롭습니다.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해서 상대보다 자신이 더 고통을 겪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구야! 내가 너를 십자가 위에서 용서해주었듯이 너도 그를 용서해 주거라. 내가 너에게 조건을 따져서 네 죄를 용서해 주었느냐? 네가 죄 값을 다 치렀기 때문에 용서해 주었느냐? 내가 너에게 죄 지은 만큼 형벌을 주고, 복수를 다 한 뒤에 용서해 주었느냐? 이제 그만 용서해 주거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관심과 초점을 상처를 받은 일과 상처를 준 사람에게서 상처를 치유하시는 하나님께 옮기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 내면의 상처들은 주님의 사랑과 용서로 치유하지 않으면, 평안이 깨지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바로 그것에 묶여서, 바로 그것에 붙잡혀서 그것을 풀기 전에는 계속 우리 안에서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풀어버리십시오. 용서하십시오. 치유 받으십시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 분노하고 복수하고 파괴하고 죽이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평안을 누리며 기쁘고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것을 기억하고, 힘들겠지만 용서하시고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넷째로 우리에게서 평안을 흔들고 평안을 무너뜨리는 것은 세상 속에서 만나는 환난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만나는 여러 가지 문제, 장애물, 슬픔, 고통, 환난들은 우리의 평안을 위협하고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6장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 근심과 두려움 속에 있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 말씀은 환난보다 더 크고 강한 주님을 보라! 너희를 위협하는 세상을 이긴 주님을 바라보라! 환경보다 문제보다 환난보다 더 능력이 있는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받아 누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간에도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믿음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믿음으로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오직 믿음으로만이 평안을 누리고 유지할 수 있습니다. 크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4절 말씀입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하나님의 능력이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거스르는 어떤 세력보다 더 크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의 마음에는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가득 차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때 어떤 상황에 처해서도, 우리의 삶을 뒤흔드는 일 속에서도,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두려움 앞에서도 주님의 평안이 가득해져 옵니다.

시카고에서 변호사요, 시카고 대학 교수요, 무디교회 회계집사이며, 부동산 사업을 하던 호라시오 스패포드는 1871년 시카고에 난 대화재로 인해 부인과 함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충격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부인을 의사가 환경을 바꿔보라는 권유를 듣고, 먼저 부인과 세 딸을 유럽으로 보내고 뒤 따라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부인과 세 딸이 유럽으로 가는 도중 끔찍한 폭풍을 만나 배가 파선되어 세 딸은 익사하였습니다. 부인만 바다에 떠 있다가 구조된 것입니다. 스패포드는 부인을 데리러 가기 위해 가장 빠른 배를 탔습니다. 배를 타고 가던 어느 날, 선장이 스패포드에게 말했습니다. 곧 딸들이 익사한 곳을 지날 것이라고. 스패포드는 자기 선실로 돌아와 문을 잠그고 비통한 심정으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 이토록 제게 아픔을 주셔야 합니까?” 그렇게 얼마나 울부짖으며 기도했을까요. 새벽녘에 그가 아직까지 체험하지 못했던 평안이 그의 마음에 깃들었습니다. 마음 가득 평안이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를 썼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평안해” 찬송가 413장 1절 가사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이런 상황 속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을까요?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뜻과 손길에 전적으로 맡길 때 주님께서 평안을 주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매일 매 순간마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시고, 여러분을 노리고 달려드는 삶의 상황 속에 있는 어떤 문제보다 하나님이 더 크신 분이라는 것을 믿고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도 해결하실 수 있고, 어떤 질문이나 어떤 문제에도 답을 주실 수 있는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나를 떠나시거나, 내게서 등을 돌리시거나, 나를 거부하시거나, 나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거두어들이시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확신에 찬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믿음과 확신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내 삶은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십니다!”라고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평안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고백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분명한 고백과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손으로 우리를 붙잡아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함으로 간구할 때에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고 말씀합니다. 빌립보서 4장 6, 7절 말씀, “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주님을 믿고 주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을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평안을 누리게 하십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죄, 근심, 불안, 두려움, 분노, 탐욕, 상처, 환난을 만나면, 그 것들이 이정표, 교통 표지판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 교통표지판, 이정표의 화살표가 하나님 쪽으로 가라고 표시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우리의 평안이 공격 받을 때,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십시오. 예수님께 방향을 맞추십시오. 죄가, 탐욕이, 내면의 상처가, 세상의 문제와 고통과 환난이 여러분의 평안을 깨뜨리고, 빼앗으려 할 때, 주님의 생각으로 평안을 얻으십시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믿음으로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2008년 11월 09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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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
 소중한 경험들
· 일시  2009년 01월 25일
· 말씀  고린도후서 1장 3~11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누가 봉사하려면
· 일시  2009년 01월 18일
· 말씀  베드로전서 4장 10~11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은사받은 대로
· 일시  2009년 01월 11일
· 말씀  베드로전서 4장 10-11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새로운 피조물
· 일시  2009년 01월 04일
· 말씀  고린도후서 5장 16~17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나의 목자
· 일시  1976년 05월 13일
· 말씀  시편 49편 13~20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이름을 예수라 하라
· 일시  2008년 12월 25일
· 말씀  마태복음 1장 18~2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 일시  2008년 12월 25일
· 말씀  (본문을 기재해 주세요)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받아들이기 힘들 때
· 일시  2008년 12월 21일
· 말씀  누가복음 1장 26-3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나는 세상의 빛이니
· 일시  2008년 12월 14일
· 말씀  요한복음 8장 12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위기를 만났을 때
· 일시  2008년 12월 07일
· 말씀  이사야 37장 14~20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잃어버렸을 때
· 일시  2008년 11월 30일
· 말씀  요한 15장 1-2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함께 전도하는 교회
· 일시  2008년 11월 23일
· 말씀  요한복음 1장 43~51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을 자랑하라
· 일시  2008년 11월 16일
· 말씀  시편 105편 1~3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 일시  2008년 11월 09일
· 말씀  요한복음 14장 27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 일시  2008년 11월 02일
· 말씀  시편 136편 23~26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믿음으로 말미암아
· 일시  2008년 10월 26일
· 말씀  로마서 1장 16~17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