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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3299]
· 설교 일자 : 2008년 11월 02일
· 본문 말씀 : 시편 136편 23~26절
· 설교 :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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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시편 136편 23~26절)
  어느 날 아담이 하나님과 함께 에덴동산을 걷고 있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께 “하나님! 어찌하여 하와를 저렇게 아름답게 만드셨나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 네가 하와만 바라보고 사랑할 것이 아니냐?” 며칠 지난 다음, 아담은 하나님께 다시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런데요, 하나님! 가만히 보니까 하와가 좀 멍청한 것 같아요. 왜 저렇게 멍청하게 만드셨나요?” 하나님은 불평하는 아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시더니 이윽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 하와가 널 사랑하지... 그렇지 않으면 너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냐?” 감사가 금방 불평으로 바뀐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한 방 날리신 유우머입니다.
  추수감사주일 아침입니다. 본문 시편 136편은 우리들에게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과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을 출애굽하게 하시고, 광야에서 인도하시고, 가나안 땅 정복을 위해 능력을 행하신 하나님께 이스라엘 후손들이 하나님께 감사 신앙을 고백하며, 우리 모두에게 감사하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들의 선조들은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항상 믿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출애굽하여 홍해 바다 앞에 이르자 뒤편에 쫓아오는 바로 군대를 두려워하면서 모세에게 우리를 홍해 바다 속에 빠져 죽게 하여 물귀신이 되게 한다고 원망하였습니다. 광야로 나아가니까 모세에게 광야로 인도하여 광야에서 굶어죽게 한다고 불평하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시니까 고기를 못 먹어서 기력이 없으니 애굽이 생각난다고 불평했고, 마실 물이 없으니까 목말라 죽게 한다고 불평하고 원망했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고 12명의 정탐꾼을 보냈더니, 그 중 10명이 부정적인 보고를 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밤새도록 통곡을 하면서 애굽에서 죽게 놔두든지, 광야에서 그냥 죽게 놔두지, 왜 여기까지 끌고 와서 가나안 땅 사람들의 칼에 죽게 하느냐고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불평제조기, 원망 자동응답기였습니다. 정말 못 말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무엘 존슨은 “감사하는 마음은 높은 교양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써, 저속한 인간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저속하고 병든 마음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병든 영혼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병든 세대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병든 사회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병든 문화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탐욕과 불평과 비방과 절망만이 있을 뿐입니다.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미련해지고, 어두워지면 그 마음속에서는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마음과 영혼이 건강하다는 증거이고, 저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과 영혼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건강한 마음과 건강한 영혼에서 감사가 나오고, 감사의 찬양이 있습니다. 감사한 것을 볼 수 있는 영혼의 눈이 있습니다.
  하와이에서 남서쪽으로 1,500km를 간 후 다시 2,400km를 더 가면 산호섬 핀지랩섬을 만나게 됩니다. 그 섬은 1명의 왕과 185명의 주민이 사는 섬으로 초소규모 국가입니다. 그런데 그 섬에는 전색맹인 사람들이 많이 있답니다. 여러분, 색맹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색이 구분이 안 되는 시력장애입니다. 교통신호등을 봐도 빨간불이 들어온 것인지, 초록불이 들어온 것이지 구별할 수 없는 색깔구분 시력장애입니다. 그것을 적록생맹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색이 구분 안 되는 색맹을 전색맹이라고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선천성 전색맹은 3만 명 당 1명 정도 나타나는 희귀 질병입니다. 그런데 바깥세상에선 이토록 희귀한 장애가 핀지랩 섬에서는 12명에 한 명 꼴로 나타난답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이 흑백 TV처럼 보입니다. 그들에게 사물은 색채가 없고, 명암(明暗)과 농담(濃淡)이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혹시 영혼의 색맹은 아닙니까? 아름다운 하나님의 은혜의 색깔을 보지 못한 채 어두운 흑백으로만 부정적인 세상을 보는 영혼의 전생맹은 아니냐 말입니다.  

  우리의 뇌는 약 140억 개 세포로 형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리의 뇌 세포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영향을 받게 됩니다. 문제점을 찾아 불평을 하다보면 점점 뇌 세포가 불평세포의 지배를 받으면서 불평의 사람이 됩니다. 불평을 보는 눈으로 시작하여 불평하는 마음에 불평의 습관이 배고, 그러다가 불평의 사람이 되어 툴툴맨, 짜증여인, 희망의 사람과 정반대인 원망의 사람이 됩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불평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지옥에 가서도 감사한다.”는 말이 있더군요. 물론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지옥에 가겠습니까 만은 불평하는 사람은 어디가도 표시가 난다는 말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보이는 것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부정적인 것만 보입니다. 그는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시력장애가 내면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불평하는 사람이 어두운 것만 보이는 영혼의 전색맹으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마음과 영혼의 시력 장애를 고치지 않는다면 불행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교우 여러분, 불평하는 이스라엘과 같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그렇게 불평, 불만, 원망이 쉽게 쏟아져 나왔을까요? 왜 그랬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와서 모세를 통하여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뜻과 손길,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했습니다. 아니 믿음으로 출발했지만 그 믿음이 지속되지 못하여 하나님과 모세에게 틈만 나면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약속을 온전히 성취하실 것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지금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손길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합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삶 속에 수없이 불평하고, 원망하고, 불행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고 있다면 무엇 때문일까요? 하나님의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지속적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닥친 환경과 사건들이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기에는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이 더 크게 보이고 더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감사를 낳습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지만, 믿음이 잉태한 즉 감사를 낳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라고 말하고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차원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글을 읽지 못하던 사람이 글을 읽기 시작하면 차원이 달라집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어린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귀로 들리는 말만 들을 수 있다가 눈으로 글을 읽고 그 글의 뜻을 읽어나가게 되면 어린아이들의 지적 발달은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갑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현실만 보던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느끼던 사람이, 사람과 세상만 보던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보게 된 것이요, 그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관여하시고, 나의 삶을 인도하시고, 나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보고 믿고 깨닫기 시작하였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때 신앙의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갑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알기 때문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다 알지 못하더라고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게 되면, 그 뜻을 깨닫게 되는 영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은 점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 가는 삶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땅에서만 살게 하시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합당하게,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그 훈련과정은 쉬운 일들만 만나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고통과 슬픔과 문제와 환난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가 감당할 만한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옆에서, 뒤에서 도와주시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통해, 나를 훈련하시는 것이라고 깨닫게 되면 그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입체적인 손길, 입체적인 일들을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여러분, 입체영화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입체영화는 그냥 보면 화면이 이상합니다. 두 겹 세 겹 겹쳐진 것 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입체영화를 보려면 특수 안경을 껴야 합니다. 특수 안경을 끼고 보면 화면 속의 기차가 나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입체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기차가 달려오면 진짜 달려오는 줄로 보이니까 몸을 피하기도 합니다. 특수 안경을 끼고 보면 평면으로만 보이던 물건들이 입체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하는 일에 대해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특수 안경과도 같습니다.
  한국 첫 우주인 이 소연씨, 그는 지난 10월 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여성지도자상 젊은 지도자상을 수상하면서 말한 소감이 국민일보에 실렸었습니다. 인간의 교만함과 지구 환경에 대한 고마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 이어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과 고백, 다짐까지 곁들여져 참석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저는 우주에 가기 전까지 한 번도 이 지구에서 살 만한 자격이나 요건에 대해 따져 본 적이 없었어요. 사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감사하기보다는 오히려 불평과 불만이 많았죠.” 하지만 이 소연씨는 혹독한 우주인 훈련과정에 이어 성공적인 우주 실험생활을 거치면서 미처 몰랐던 삶의 중요한 의미를 깨달았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인 400km 정도를 위로, 하늘로 올라가면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살기 힘들어요. 숨 쉬고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일부터 앉아 있기 위해 압력을 유지하는데 어머 어마한 돈과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하지만 지구에서는 그런 비용이 필요 없잖아요.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귀중한 선물이구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모태신앙인인 이 소연씨는 지구를 떠나 우주에 가서 다시 지구를 바라보고 몸으로 겪으면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몸으로 느끼면서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빠져나와 다른 면을 보면 생각이 바뀝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복을 깨닫고 누리게 됩니다.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주님 손잡고 일어서세요] 찬양의 가사입니다. 믿음으로 감사하면서 고난의 뒤편에 있는 하나님의 복을 보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약할 때에 그 약함을 감사하면, 자신의 뒤편에 있는 주님의 강한 팔을 볼 수 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것만 보지 말고 그 뒤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면, 감사의 열매를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인은 정면으로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왼쪽 면과 오른쪽 면을 볼 수 있고, 뒤편과 아래와 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이 세상 속에서 평면만 보는 사람으로 그치지 않고, 영원이라는 입체 면을 보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가운데서 감사하면, 주님을 평면적으로 보고 만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깊이 더 가까이 더 온전히 주님을 만나고 경험하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 어려움이 있습니까? 고난이 있습니까? 그것 옆에, 그것 뒤에 있는 하나님의 입체적인 은혜와 복을 미리 보고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3절의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는 말씀에서 ‘비천한 가운데에서도’라는 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낮아졌을 때, 망했을 때, 애굽의 노예가 되었을 때라는 뜻이고, 그 때에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도와주셨고, 구해주셨고, 은혜를 베푸셨기에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가 비참해졌을 때, 우리가 낙심하고 절망 속에 있을 때, 우리가 사업이 잘 안 되고 경제가 어려울 때, 우리가 죄의 노예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구원해 주심을 믿고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23절 말씀으로, 비천한 나를 기억하시고 인자와 긍휼을 베푸신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새삼스럽게 다시금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 뱃속부터 교회를 다녔고,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50년 동안 신앙생활을 한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것이 너무도 익숙해져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 후에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해 주셨음을 믿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내가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소홀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죄 용서 받은 사실에 대한 감사가 부족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해 주지 않으셨다면 나는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살아야 했을 것이고, 내 영혼은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고, 용서받지 못한 죄가 내 안에서 그냥 살아남아 또 다른 죄를 불러들일 것이고, 그 죄의 바이러스는 점점 더 퍼져 내 온 몸과 온 마음과 온 영혼을 병들게 했을 것이고,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은 죄의 대가를 내가 어찌 다 치를 수 있겠습니까? 그 문제 되는 죄를 하나님께서 깨끗이 용서해 주셔서 영혼의 정결함, 영혼의 자유함, 영혼의 자신감, 영혼의 담대함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셨는데, 나는 용서받은 것만 좋아했지 사죄의 은혜를 진심으로 날마다 감사하며 살지 못했습니다. 깊이 감사하기는커녕, 당연한 것처럼 여긴 적이 많습니다.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았음을 확신한 직후 곧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죄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을 받게 해주신 구원의 은혜는 감사하며 살고 있는데, 매 순간, 매일 지은 죄를 용서받은 사죄의 은혜에 대해서는 매번 감사드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하나님께 너무도 죄송한 일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일인데 말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저 같이 죄 용서 받고 감사가 부족한 부끄러운 신앙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묵상을 하면서 한 가지 더 감사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읽어지고, 들려지고, 깨달아지고, 이해가 되고, 믿어지고, 감동이 되는 것에 대한 감사도 해야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렇게 읽혀지고, 들려지고, 깨달아지고, 이해가 되고, 믿어지고, 감동이 되도록 역사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추악하고, 연약하고, 미련하고, 부족하고 비천한 사람 속에 거하시면서 나를 도와주시고, 성령의 빛을 비추어 주셔서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시고,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증거 해 주시고, 주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시어 믿음이 생기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잊고 사는 것, 깨닫지 못한 것, 이미 받은 것, 앞으로 주실 것을 찾아 감사드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숟가락의 용도를 죽 적어 놓은 글을 읽었습니다. 숟가락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참으로 많기도 하고, 그 용도가 재미있기도 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밥을 꼭꼭 누른다. 밥을 퍼 먹는다. 국을 떠먹는다. 점심시간에 친구의 밥을 뺏어 먹는다. 내 밥 뺏어먹는 걸 저지한다. 뺏어 먹는 친구의 머리를 때린다. 참외 속을 긁는다. 바나나를 자른다. 날계란을 깨뜨린다. 두 개를 이용해 장단을 맞춘다. 도토리묵을 먹는다. 한옥 문고리를 걸 때 쓴다. 냄비 바닥의 누룽지를 긁는다. 가루약을 올려놓고 물과 섞는다. 탁구공 나르기를 한다. 아이스크림을 떠먹는다. 조리퐁을 퍼 먹는다. 등을 긁는다. 즉석복권을 긁는다. 바닥의 껌을 뗀다. 바퀴벌레를 잡는다.’ 숟가락의 용도도 이렇게 저렇게 찾으니까 얼마나 많습니까? 등을 긁는데 쓴다는 말은 정말 압권이지 않습니까? 감사할 것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복이 얼마나 많이 찾아지겠습니까?
  토미 테니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로 사는 법 49가지]라는 책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것이나 당신을 위해 행하신 일에 대해 마지막으로 감사드린 때가 언제냐고 물으면서 그것이 오늘 아침인가? 어제인가? 지난 주? 지난 달? 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감사하지 않는 마음은 당신의 영을 해치는 독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것은 당신을 모질고, 냉소적이고, 메마른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심지어 그것 때문에 몸이 아플 수도 있다.”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음의 즐거움은 병을 낫게 하지만 근심하는 마음은 뼈를 말린다는 잠언 17장 22절을 인용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은 기쁨이 충만하게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삶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면, 그것은 단지 열심히 찾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건강은 노력과 훈련으로 좋아지듯이, 감사도 노력과 훈련으로 감사생활을 하게 됩니다. 행복도 노력과 훈련으로 이루어집니다. 감사하려는 노력이 행복을 누리게 합니다. 감사도 학습입니다. 배우고 훈련하면 더 나아집니다.
  교우 여러분, 흑백만 보입니까? 어두운 면만 보이십니까? 앞면만 보이십니까? 부족한 것만 보이십니까? 불만만 느껴지십니까? 절망만 보이십니까? 그렇다면 영적인 전색맹입니다. 영혼의 눈에 치명적인 장애가 있는 것입니다. 영혼의 눈이 전색맹이라서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보고 느끼고 감사해야 하는 것을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감사로 영혼의 색맹은 치료되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지금, 이곳, 내 환경만 보지 마십시오. 위를 보십시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하늘의 하나님께서 은혜의 손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008년 11월 02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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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
 이름을 예수라 하라
· 일시  2008년 12월 25일
· 말씀  마태복음 1장 18~2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 일시  2008년 12월 25일
· 말씀  (본문을 기재해 주세요)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받아들이기 힘들 때
· 일시  2008년 12월 21일
· 말씀  누가복음 1장 26-3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나는 세상의 빛이니
· 일시  2008년 12월 14일
· 말씀  요한복음 8장 12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위기를 만났을 때
· 일시  2008년 12월 07일
· 말씀  이사야 37장 14~20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잃어버렸을 때
· 일시  2008년 11월 30일
· 말씀  요한 15장 1-2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함께 전도하는 교회
· 일시  2008년 11월 23일
· 말씀  요한복음 1장 43~51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을 자랑하라
· 일시  2008년 11월 16일
· 말씀  시편 105편 1~3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 일시  2008년 11월 09일
· 말씀  요한복음 14장 27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 일시  2008년 11월 02일
· 말씀  시편 136편 23~26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믿음으로 말미암아
· 일시  2008년 10월 26일
· 말씀  로마서 1장 16~17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