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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히 여기사   [4957]
· 설교 일자 : 2013년 04월 21일
· 본문 말씀 : 누가복음 7장 11-17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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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히 여기사  (누가복음 7장 11-17)
  2009년 7월, 대전지법의 김 진선 판사가 12만원 생계형 절도 혐의의 30대 여성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그 여성은 대전의 한 주택에 들어가 안방에서 500원 짜리 동전 2개, 부엌에서 3000원 상당의 상품권 1장, 현금 12만 4천원을 훔친 혐의로 붙잡혀 법정에 섰습니다. 이미 절도죄로 1년 실형을 살고 출소하던 날에 가족조차 찾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연고가 없는 마을로 거처를 옮겨서 사글셋방을 구하고 식당에서 잡일을 했다고 합니다. 우연히 만난 남자와 살며 아이를 낳았지만 형편이 안 돼 곧 보육원에 보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이를 보내고 나서 마음의 병을 얻었다고 합니다. 병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던 김씨는 또다시 무언가에 홀린 듯 낯선 집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동전과 지폐를 훔쳤고 그녀는 다시 구속되고 말았습니다.
  형을 선고하는 자리에서 그 판사는 시 한 편을 읽어 주었는데, 고정희 시인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라는 시였습니다.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 뿌리 깊으면야 /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 이 세상 어디에서나 개울은 흐르고 /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 고통과 설음의 땅 훨훨 지나서 /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여러 가지 정황을 파악하고, 그가 범한 죄가 법조문 어디에 저촉이 되며, 판례에 의하면 어느 정도의 형량을 선고하는 것이 좋을지를 고민해야 할 판사는 지금 시인의 언어에 기대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인생의 전쟁터에서 상처 받은 영혼을 위로하고 그의 회복되기 어려운 아픔이 조금이라도 치유될 수 있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에는 그 여인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이 있었습니다. 그 판사는 오늘날 각박해진 세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판사였음에 틀림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각양각색의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쉽게 분노하고, 홧김에 폭력, 홧김에 살인, 홧김에 끔찍한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릅니다. 각박한 우리사회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마음이 긍휼입니다. 살벌한 우리 사회에 꼭 회복해야 할 것이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도 긍휼이 필요합니다.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정용철 시인이 고백한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기에’라는 시입니다.  “삶이 힘들어 지칠 때면 /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 그러면 새 힘이 생기고 삶의 짐이 가벼워집니다. /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 슬픔과 아픔이 나를 휩쌀 때면 /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 그러면 슬픔이 옅어지고 아픔이 치료됩니다. /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 좌절하고 낙심될 때면 /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 그러면 좌절의 늪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소망의 언덕에 서게 됩니다. /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 일이 잘 되지 않고 실수하여 야단맞을 때면 /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 그러면 나의 부족함이 깨우쳐지고 겸손한 자세로 새로운 다짐과 노력을 하게 됩니다. /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 외롭고 쓸쓸하다고 느껴질 때면 /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 그러면 외로움과 쓸쓸함이 썰물처럼 밀려가고 /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정겨운 모습이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 사람에게 실망하고 미움이 일어날 때면 /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 그러면 미움이 사라지고 다시 사람을 신뢰하게 됩니다. /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 불평이 가득하고 웃음이 사라질 때면 /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 그러면 불평이 떠나고 미소가 피어오릅니다. /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이런 시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분이 계십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아무리 어려움 가운데 있어도 그것을 기억할 수 있다면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그 분은 여러분의 이름을 기억하고 계시며, 여러분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여러분을 긍휼로 사랑하십니다.
  사랑에는 여러 가지 색깔이 있습니다. 마치 햇빛을 프리즘이라는 유리 막대에 통과시키면 무지개 색깔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색깔로 나누어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절 -7절까지의 말씀에는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사랑을 설명했습니다. 물론 이 말씀으로 사랑 안에 담긴 여러 가지의 색깔을 다 설명한 것은 아닙니다. 사랑 안에는 이해, 배려, 친절, 용서, 관용, 등등 많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사랑의 근원이고, 전부입니다. 온전한 사랑입니다. 사랑 자체이십니다. 그 사랑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색깔과 많은 사랑의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중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중요한 사랑의 색깔을 말한다면 긍휼입니다.
  찰스 스펄전은 “긍휼은 하나님의 본질로 그분 마음 안에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존재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진실하며 너그럽고, 강렬하고 따뜻하며, 애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구속 사역에서 절정을 이룹니다.”라고 설교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 긍휼이 없으시다면, 그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지 않는다면, 성자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시지 않으셨을 것이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냥 인간의 죄에 대해 진노하시고, 법대로 심판하시고, 저주와 멸망을 내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어사전에서는 긍휼의 뜻을 ‘불쌍하고 가엾게 여겨서 도와줌’이라고 설명합니다. 단순한 감정 차원보다는 사랑의 표현이나 행위로 드러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긍휼이란 가엾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말하는데, ‘라함’(자궁)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단어는 ‘같은 태에서 나온 이들에 대한 감정’이라는 기본적인 의미에서 ‘긍휼’ ‘자비’라는 의미로 발전했습니다. 또 생명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자궁은 곧 어머니의 희생적인 모습을 대변합니다. 또는 창자가 끊어지듯이 아파하는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긍휼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무조건적으로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하기를 이웃집에 가서 낫을 빌려오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이웃집에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와서 말합니다. “낫을 빌려줄 수 없다고 합니다.” 거절당하고 왔습니다. 며칠 후에 바로 그 집에서 이 집에 낫을 빌리러 왔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낫을 빌려주어라.” 아들은 항의를 했습니다. “며칠 전 우리가 빌려 달라고 했을 때는 저 집에서 빌려주지 않았는데요.” 이때,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쳤습니다. “저 집에서 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도 빌려줄 수 없다고 하면 이것은 복수다. 저 집에서 빌려주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려준다고 말하면서 그런 마음으로 빌려주면 이것은 증오다. 거절당했다고 하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그와는 상관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그저 낫이 필요하다니까 빌려준다 하는 마음으로 빌려주면 이것이 긍휼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그렇게 용서해 주셨습니다. 긍휼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해 주셨습니다. 과거의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잊어버리고, 우리의 과거를 상관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기에,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들에게 베풀어졌기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마음속에 음욕을 품은 것 자체가 이미 간음한 것이고, 마음속으로 누구를 미워하는 것은 이미 살인한 죄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 중에 이런 죄를 안 지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날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긍휼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시며 거룩하신 성품을 가지셨기에 죄인을 향해 진노하실 수밖에 없으시지만, 상처 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에는 긍휼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며, 한이 없는 사랑으로 인자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종아리를 때린 회초리를 꺾으며 아파하는 자녀를 품에 안고 함께 우는 엄마처럼, 눈물 자국 마른 눈으로 잠든 아이의 종아리를 쓰다듬으며 가슴 아파하는 아빠처럼,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시어 우리에게 내리셨던 징계의 매를 거두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긍휼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기적의 말씀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나인 성으로 가시다가 아들의 장례를 치르는 과부와 마주쳤습니다. 예수님은 아들의 장례 행렬에 눈물이 얼굴에 범벅이 되도록, 절규하며 너무 울어서 머리가 다 아플 정도로 울며불며 따라가는 그 과부 여인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 여인에게 “울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가까이 가셔서 그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여기서 관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 장례 시 사용하는 뚜껑이 있는 관이 아닙니다. 당시 장례법을 보면, 보통 사람이 죽으면 먼저 시신을 씻었습니다. 그런 후 향유나 몰약 등을 시체에 바르고 온몸을 세마포로 쌌습니다. 보통 사망 당일 장례가 치러졌는데, 시신은 들것에 놓여 져서 매장지로 운반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친척이나 친구 등 곡하는 사람들이 시신을 따라 함께 매장지로 향하였습니다. 매장지는 보통 성 밖에 있었기 때문에 그 과부의 죽은 아들의 관을 그 곳으로 옮기는 중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뚜껑 없는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시체에 손을 대는 것은 율법에 부정한 것이었고, 관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부정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이런 율법도 초월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을,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을 율법이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이 여인은 이미 남편을 잃었고 이제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 즉 마지막 의지의 대상마저 죽고 말았습니다. 1세기에는 여성이 혼자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과부를 부양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여인은 사기꾼들의 희생자가 되기 쉽고, 음식을 구걸하는 비참한 처지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그 여인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느끼셨습니다. 그 여인의 괴로움을 자신의 괴로움으로 느끼셨습니다. 그 여인의 절망을 자신의 절망으로 느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불쌍히 여기사 죽은 아들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죽었던 청년이 벌떡 일어나 앉고 말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사 죽은 아들을 다시 살려주심으로 그 과부는 잃었던 희망을 다시 찾았습니다. 이런 사건이 또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마리아가 오빠 나사로가 죽었다고 울고, 다른 사람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며 불쌍히 여기사 무덤에 있는 나사로에게 가셔서 다시 살려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면 은혜가 임합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이 나타납니다. 그 사랑의 힘으로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긍휼은 죽음보다 강하십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긍휼에 해당하는 헬라어로 ‘엘레오스’ ‘스프랑크논’ 등이 쓰였습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긍휼은 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치유 속에 드러내신 예수님의 사역에서 잘 드러났습니다. 가나안 여자가 자신의 딸이 흉악하게 귀신이 들렸다고 하며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 질러 간구했습니다. 간질 때문에 자주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는 아들을 고쳐달라고 아버지가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나병환자들이 예수님께 소리 높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외쳤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고쳐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는 맹인 두 사람이 길가에 앉았다가 예수님께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께서 그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부르짖는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고쳐주셨고, 귀신을 내어 쫓아 주셨습니다. 치유의 역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에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는 예수님께서 두 사람이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는 모습에 대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다른 사람은 세리입니다. 바리새인은 당당하게 서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 강도나 사기꾼이나 간음하는 자나 세금을 착취하는 사람들 하고는 다릅니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일조를 잘 바칩니다.” 또 다른 성전 한쪽 구석에는 세리가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오직 이 말만 합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저는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가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도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도 내용은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입니다. “주님, 저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끼리에, 엘레이죤” 그렇습니다. 다윗은 용서 받을 자격도 없는 존재이지만 오직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시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렸습니다. 시편 51편 1절,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다윗은 하나님께 긍휼과 자비를 구했습니다. 다윗은 시편 27편 7절에도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응답을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누가 예수님의 긍휼하심을 받았습니까? 예수님께서 누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까?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입니까? 부자였습니까? 많이 배운 사람이었습니까? 교만한 자였습니까?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까? 자만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연약한 사람, 무력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병든 사람,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 죄 가운데 있는 사람, 목자 없는 양같이 의지할 데 없이 유리방황하는 무리들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서 예수님께 그 문제를 들고 나아 온 사람들입니다. 문제 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긍휼만이 나를 살릴 수 있고,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겨주시지 않으면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간절함, 절실함, 절박함, 진정성을 가지고 간구하며 부르짖을 때, 그 풍성하신 긍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긍휼은 상처 입은 사람을 돕고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과 정열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방향이 있다, 흘러가는 방향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긍휼을 받은 우리들은 주님의 긍휼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님의 긍휼이 임하도록 전해야 합니다.
  캄캄한 밤, 강도가 권총을 들고 어느 집에 침입하여 집주인을 위협합니다. “꼼짝 말고 손들어!” 잠결에 깨어난 주인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당황하여 왼손을 겨우 들었습니다. “오른 손도   마저 들어!” 그러나 주인은 왼손만 더 올렸을 뿐, 오른 손을 들지 못한 채 말했습니다. “강도님, 미안하지만 오른 손은 신경통 때문에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강도의 행동이 이상해졌습니다. “신경통? 젠장, 나도 신경통 때문에 이 짓을 한다.” 강도 역시 오른 손 신경통 환자였습니다. 그래서 이 강도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왼손으로 권총을 들고 물건을 훔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신경통의 고충을 토로하며, 신경통에 좋다는 약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씁쓸하게 헤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편 소설 작가 오 헨리가 쓴 [강도와 신경통]이라는 단편 소설의 줄거리입니다. 집주인과 강도가 친구가 될 수 있게 한 것은 신경통입니다. 누구나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고, 고통이 있고,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같은 병, 같은 슬픔, 같은 입장, 같은 관심, 같은 취미로 공감대가 형성이 되면 서로 마음을 열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음을 같이하고 긍휼한 마음으로 그를 대할 때, 그에게 복음을 전해 주고, 영생을 얻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기쁨과 평안을 전해 줄 수 있습니다. 긍휼의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사탄은 당신이 기독교에 대한 이론을 얼마나 정립하느냐 또는 그리스도를 안다고 얼마나 고백하느냐에 관심이 없다. 사탄은 당신이 그리스도를 따라 살지 못하도록, 당신이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시는 통로인 긍휼과 불쌍히 여김과 사랑의 도구로 살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방해한다. 사탄이 기독교에서 긍휼을 제거할 수 있다면 기독교의 효능을 무력화한 것이다.” 성도 여러분, 사탄이 우리의 마음에서 긍휼의 마음을 메마르게 하고, 사라지게 했다면, 우리의 신앙은 무력화된 것입니다. 긍휼의 마음을 속히 회복해야 합니다. 긍휼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7절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로부터 주시는 긍휼이 얼마나 절실한 지를 깨닫고 날마다 그 긍휼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님의 긍휼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긍휼을 베풀기 바랍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죽어가는 영혼에게, 잃어버린 영혼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2013년 04월 21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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