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이겨내는 사람 (야고보서 1장 12절) |
한 나라의 전직 대통령이 자살을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어제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감정이 교차되었습니다. 뒷머리가 당길 정도로 머리속이 멍했습니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것을 떠나서, 한 인간으로써 힘이 들었겠지요. 자신과 자신의 가족, 평소 자신을 믿고 따랐고 도왔던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차마 보기 힘들었겠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을 선택한 것은 온 국민을 더욱 힘들게 하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근간의 일들은 그 분의 삶에 참으로 위기였겠지요. 그러나 그 위기를 그렇게 끝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나는 돌아가신 분을 비방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목회자로써 이 사건을 접하면서 왜 또 자살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나라에 자살의 영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휩싸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여러 가지로 힘들어하고 있는 때이고, 온 국민이 힘을 내어 국가적,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을 이겨내야 할 때라서 더욱 충격적이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시련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어려움, 슬픔, 고통, 환난을 겪습니다. 그것을 겪으면서 그 어려움과 슬픔과 고통과 환난에게 지고 말면, 그것들은 위기가 되어 자신이 파멸당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이겨내면 그것들은 시련이 되는 것입니다. 시련이라는 말의 뜻 은 ‘시험하여 단련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고로 어떤 일이 나를 시험하여 나를 넘어뜨리는 일이 되느냐? 아니면 나를 시험하였지만 그것을 통해 나를 단련하는 기회가 되느냐? 에는 어떤 일을 대하는 나의 자세, 나의 태도, 나의 신앙에 따라 달라집니다.
야고보서 1장 13절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지 않으신다는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시험이란 우리를 무너뜨리고, 파멸시키려는 악의적인 유혹과 공격을 말합니다. 어려움을 통한 파괴적인 공격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시험하지 않으시고, 시련을 허락하신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 시련이 닥칠 때에 하나님의 자녀로써, 그리스도인으로써, 신앙인으로써 어떻게 시련을 받아들이고, 그 시련을 통해 어떤 유익을 얻어야 할지를 깨닫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오늘 말씀이 각종 어려움과 고통이 있는 성도들에게 위로의 말씀, 새 힘을 주는 말씀, 믿음이 성숙해지게 하는 말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이 세상에는 우연이란 없습니다. 우연히 어떻게 하다보니까 생기는 일은 없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과 뜻대로 운행되고 있고, 그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을 통해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운행하시고, 세상 모든 일들을 주관하신다는 것과 이 세상 속에서 우연이란 없고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따라 모든 일들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모든 일들을 겪으면서 “이 사건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시려고 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모든 사건과 시간 속에서 이것을 묻고 답을 얻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어떤 일들을 겪을 때,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즐거운 일이든 괴로운 일이든, 항상 물어야 합니다.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려고 하는 걸까? 어떤 목적을 이루시려는 걸까?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걸까?” “이 일에 대해 내가 어떻게 반응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실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질문하고 그리고 질문의 답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과 방법이 항상 즐거운 일, 편안한 일, 쉬운 일을 통해서 이루어 가시지 않고,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도 이루어가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자녀들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가시기 위해서 시련을 주실까? 즐겁고 편안하고 쉬운 일을 통해서도 이루어 가실 수 있으면 그런 것들로만 이루시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들을 들으면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의 일생을 아시지요? 그는 십대의 어린 나이에 형들의 미움과 시기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의 총애를 받던 요셉이 애굽의 장군의 집에 팔려가 종살이를 할 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아마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 집에서 괜찮아 질만 하니까, 여주인의 억울한 모함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한 번 들어가면 죽기 전에는 나올 수 없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사방이 막히고, 사면이 닫혀진 절망의 감옥 같은 인생의 자리에서 요셉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그러나 훗날 그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후에, 애굽에 곡식을 구하러 온 형들을 만났을 때에, 바로 자신을 팔아버린 형들을 만났을 때에, 그는 형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나를 이곳으로 팔아 넘겼다고 해서 마음으로 괴로워 할 것도 얼굴을 붉힐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숱한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시려고 나를 이리로 보낸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창 45:5,8) 요셉은 자신이 겪은 수많은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목적과 계획과 뜻을 가지고 역사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숱한 백성들을 살리시려는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요셉에게 극심한 시련을 허락하셨다는 고백입니다. 요셉은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성에 들어가서 전도를 하는 과정에서 심하게 매를 맞고 억울하게 깊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도 바울과 실라가 그렇게 말한 것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들이 찬미와 기도를 드린 것과 그 때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렸지만 도망가지 않은 것을 보면, 그들이 당한 고난과 시련 속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음을 믿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고난과 시련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그 모습을 본 간수장과 그 가족이 모두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 놀라운 복음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이 일을 겪으면서 바울과 실라는 더 더욱 복음을 위한 고난과 시련 속에 반드시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있음을 믿고 확신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으로써 우리가 시련을 겪을 때에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하고 인내가 필요합니다.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것은 순간 순간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필요한 일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일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원리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원리와 법칙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하고, 참을 수 있어야 하고, 견디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시련이 있습니까? 그 일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가는 일이니 만큼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그 믿음으로 시련을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자녀 된 우리들을 깨우치시기 위해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그릇된 길로 나가고 있을 때나 불순종 할 때에 그릇된 삶에서나 길에서 벗어나도록 깨우치시기 위하여 시련의 채찍을 가하십니다. 히브리서 12장 5절 이하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이 말씀에서 징계란 말은 벌이나 채찍으로 주의를 주고, 타이른다는 뜻입니다. 영어 번역으로는 Discipline 이란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훈련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 된 우리들을 바른 길로 가게 하시기 위하여 시련을 통하여 훈련시키시고, 꾸지람과 채찍을 가하시어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시련의 채찍을 가하시는 이유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꾸지람하고, 사랑의 매를 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우치고 바르게 하기 위해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여러분, 과일을 살 때 잘 고르십니까? 요즘 과일은 웬만하면 다 좋은 품질의 상품들이 나옵니다. 그럼에도 싼 것이 있고, 비싼 것이 있습니다. 과일 고를 줄을 모르면 비싼 것을 사면된다고 합니다. 비싼 것이 비싼 값을 하고, 싼 것은 싼 이유가 다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라면 작고 맛도 별로인 과일과 크고 탐스럽고 맛있는 과일 중 어떤 과일을 먹고 싶겠습니까? 이것은 두말 하면 잔소리요, 세말 하면 헛소리이지요. 어느 누가 크고 맛있는 과일을 마다하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도 좋은 열매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우리를 가지치기 하십니다. 봄에 복숭아나무의 새로 나오는 가지를 몇 개만 놔두고 인정사정없이 잘라버려야 합니다. 안 그러면 호두알 같은 개 복숭아가 되고 만답니다. 다른 과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과일을 얻기 위해 가지치기는 꼭 필요한 일입니다. 가지치기는 시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시련을 통해서 우리의 가지치기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련을 주셔서 쓸데없는 것들을 정리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못된 삶을 살 때,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저버리고 살아갈 때, 돈과 물질의 문제로 채찍질을 하십니다. 돈과 물질의 가지치기를 하십니다. 그래도 돈과 물질을 잃는 것은 마음만 함께 따라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상당히 회복이 빠를 수 있는 일입니다. 그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채찍질하시는 것은 건강의 문제입니다. 모든 건강의 문제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건강의 시련을 통해서 우리는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방법과 삶의 내용이 잘못되어 있음을 곧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빨리 깨닫지 못하고 고집을 피우든지, 미루든지 하면 시련이 더욱 심각해집니다. 그 다음은 관계의 시련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시련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깨우침을 주시려는 시련이 아닌가를 빨리 분별하여 그것을 고치고 돌이키면 시련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련을 이겨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깨우침, 교훈, 바르게 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깨우침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세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인격을 성숙시키시기 위하여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온갖 시련 속에서 연단 받으며 경건하고 성숙한 인격자로 자라나게 됩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은 로마서 5장 3, 4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도 자랑을 합니다. 우리가, 환난은 인내를 낳고, 4 인내는 품격을 낳고, 품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을 고난 중에서 훈련하여 성숙함으로 이끄심에 대하여 잠언 17장 3절은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용광로에 들어간 쇠덩어리 돌이 용광로에서 나올 때에는 불순물이 제거 되어 좋은 품질의 철강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 말씀에,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시련을 이겨내면 더욱 온전해 집니다. 시련을 통해서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이 연약한지, 무엇이 성숙되지 못했는지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채우고, 강하게 하고, 새롭게 할 때, 시련을 이겨낼 수 있기에, 시련을 이겨내는 사람은 온전해지는 사람입니다. 시련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불순물이 빠져나갑니다. 우리의 부족한 인격이 성숙됩니다.
교우 여러분, 시련을 만나거든 나를 성숙시키는 기회인 줄 알고, 하나님께서 나를 새롭게 하고 성숙케 하는 손길인 줄 믿고, 내가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는 기회로 확신하고 시련을 이겨내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위기가 위기로 끝나지 않고, 시련을 이겨내어 믿음도 성숙해지고, 인격도 성숙해지고, 삶이 풍성해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영혼의 아버지이십니다. 영혼의 부모이십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사람의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배우고, 유지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 곳곳에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영혼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렇게 하신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부모에게 맡긴 것은 부모 마음대로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인생과 신앙의 선배인 부모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자녀로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하도록 하나님 앞에 세우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살 수 있도록 하게 하라고 책임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시련을 만났을 때에 그 시련을 신앙으로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부모가 자녀 대신 시련을 겪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시련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시련을 겪을 때, 힘들어하는 자식을 지켜보면서 안타깝고 죽기보다 괴로워하는 마음으로 아파합니다. 자녀들이 겪는 고통을 보면서, “하나님, 아이의 고통을 제가 겪도록 주십시오.” “하나님, 차라리 제게 아픔을 주시고, 제가 대신 시련을 당하게 해 주시지 왜 어린 아이에게 이렇게 하십니까?”라고 원망하는 조의 부르짖음을 내뿜습니다. 자녀들의 고통을 막아준다는 미명하에 자녀들이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기회를 막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비겁함이고, 자녀에 대한 월권이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불순종입니다.
여러분, 역경과 고생이 없이 귀하게 기르자는 철학 밑에서 자란 아이들일수록 중독, 비만, 자살, 무기력에 빠질 소지가 높고, 삶에 주눅이 드는 예가 많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자녀들을 양육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성공하는 것과 실패하는 것 중 어느 것에서 더 많이 배우게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우리 인생은 성공하는 것과 실패하는 것 중 어느 것에서 더욱 분명하고 확실하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성공보다 실수와 실패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가 실수하는 것, 실패하는 것이 안타까워 부모가 다 해주고, 다 막아주고, 대신 어려운 것을 해 주면 자녀들은 어쩔 수 없이 지혜가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존적이고 유약한 사람이 됩니다.
성경은 오히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시련을 똑바로 응시하도록, 시련에 맞서서 한번 이겨내 보라고 가르치라고 말씀합니다. 잠언 3장 11절에 보면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고 자녀에게 가르치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련을 받아들여 이겨내라는 말씀입니다. 자녀들이 근육의 성장통을 겪을 때, 부모는 자녀에게 아프지만 이 성장통을 겪고 나면 키가 큰다고 자신 있게 말해 주는 것처럼, 생각과 인격과 신앙의 성장통을 겪고 나면 마음도 인격도 영혼도 성장한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부모들이 자녀를 사랑하기에 자녀들이 아파하고 실망하는 모습도 지켜보고, 그들의 울음소리도 잠자코 들을 수 있을 만큼 영적으로 강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속 빈 강정처럼 무난하고 연약한 자녀로 키울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부모의 미성숙과 영적 나약함이 자녀들을 해칠 수 있습니다. 오냐 오냐 곱게 자란 아이들한테서는 성공에 필요한 패기를 찾아 볼 수 없고, 이들은 버릇없는 애송이로 자라고, 다른 사람의 혹평에 부딪히면 쉽게 도망가고, 무너져 내립니다.
교우 여러분, 훌륭한 성품은 고요하고 잔잔한 삶 속에서 빚어지지 않습니다. 역경과 싸우면서 더 높고 깊고 넓은 생각이 펼쳐집니다. 커다란 난관을 겪게 되면서 위대한 덕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시련을 이겨내는 훈련을 부모에게로부터 받아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신앙이 성숙될 수 있다면 그 가정이 이 땅에서 맛보는 천국이 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에게 닥친 시련을 이겨내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고, 시련을 통해 깨우치고, 인격과 신앙이 성숙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자녀들이 겪는 시련을 대신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함께 신앙으로, 기도로 해결해 나가는 부모와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여 본문 말씀 12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약속하신 상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2009년 05월 24일
신문수 목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