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일본 비전 트립
2013년 여름은 정말 더웠습니다. 초록색 잎이 햇빛에 빛을 잃었고 도시의 그늘도 불꽃처럼 뜨거웠습니다. 그 속을 뚫고 8월 11일 오후 6시 양정교회 중등부 교사와 학생 25명은 규슈로 일본 선교 여행을 가기 위해 부산 여객 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늘 중등부를 위해 기꺼이 발이 되어주시는 김한술 장로님, 우리에게 은근히 선교의 부담을 주시는 박성업 장로님, 교육부 수장이신 김영규 장로님께서 ‘스마일~’ 로 우리들을 배웅하셨습니다.
잠시 후 바람처럼, 담임 목사님, 부목사님들께서 나타나셔서 축복기도와 덕담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크게 감동했습니다. 우리들을 인솔해 가시는 김대호 CCC(한국대학생선교회) 선교사님이십니다. “오, 이렇게 목사님들이 배웅해주시는 교회는 처음 봤어요. 양정교회는 참 좋은 교회입니다.” “네?” 평소 우리교회 좋은 교회로 말해 본적이 없는 저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웠습니다. ‘맞아, 좋은 교회야, 우리를 기도로 물질로 팍팍 밀어 주셨잖아.’ -앞으로 ‘양정교회 좋은 교회’라고 많이많이 말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번갯불에 콩을 구워먹듯이 일본 선교 여행이 진행되었습니다. 몇 달 전 당회의 허락과 제직회 통과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교우님들의 강력한 기도와 물질적 후원이 이어졌습니다. 대학원 졸업여행 차 미리 규슈 지역 선교 여행을 다녀 온 안찬규 전도사님은 교사들의 눈총과 아이들의 불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학생들을 혹독하게 사전 훈련을 시켰습니다. 드디어 일본행 뉴카멜리아호를 타게 되었습니다. 중등부가 단독으로 해외로 떠나는 일은 양정교회 60년 역사상 처음입니다. 감동의 물결~.
12일 아침, 하카다 항에 도착했습니다. 전세버스를 타고 히라도(섬)로 갔습니다. 이곳에는 일본의 초기 기독교 전파지로 프랜시스 사비에르(1506-1552) 기념 성당이 있는 곳입니다. 그는 예수회 소속으로 1549년 규슈 남쪽 가고시마에 상륙하여 일본에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영주의 호의로 2개월간 500명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이후 규슈 전체에 약 30만 명의 신자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의 프랜시스 사비에르 성당은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성당 바로 아래에는 유서 깊은 일본 절이 두 개가 있어 그들이 이루어내는 풍경은 동서양 문화의 절묘하고도 환상적인 모습으로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 다음 기독교인 변질자들의 박물관인 히라도 고래박물관으로 갔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박해(1587년)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박해(1614)로 기독교 리더들이 죽자 살아남은 기독교인들이 숨어서 자기네 방식대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이어오다 보니 그만 기독교가 민간신앙 및 불교화가 되었습니다. 그 흔적이 박물관에 남아 있는데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예수님과 마리아 상이 석가모니상과 관음보살상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가이드 선교사님은 말씀을 가르쳐 주는 이가 없고 기도가 없으니 기독교 신앙이 이렇게 변질되었다면서 기독교인들은 끊임없이 말씀을 배우고 기도로 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갑자기 전도사님 키가 더 길어 보이고 목사님들에 대한 경외심을 무럭무럭 커졌습니다.
이어 이키쓰키섬의 기독교인 순교지와 순교자박물관으로 갔습니다. 정수리가 톱으로 잘려 죽은 해골, 큰 못이 박힌 해골 등 잔인한 고문의 흔적을 가진 유물들이 가슴에 서늘하게 다가왔습니다. 수백 명의 기독교인이 처형되어 부활이 두려워 팔과 다리 몸통을 따로 두었다는 순교의 장소에서 우리는 함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수장된 바닷가로 갔습니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의 배경지라고 합니다. “사람이 행하는 잔혹함이 세상에 가득한데 어찌 바다는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습니까?” <침묵> 속에 나오는 구절처럼 바다는 아름다웠습니다만 행복한 표정으로 해수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이곳에서 목베임을 당했던 순교자들의 모습이 퇴색되어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다음날은 나가사키의 글로버 정원에 갔습니다. 일본의 근대화에 협력한 서양 사람들의 아름다운 주택과 정원이 그림처럼 언덕 위에 수놓아진 곳이었습니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이어 우리는 26인 순교지로 갔습니다. 이 순교지의 배경을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1587년 선교사 추방령을 내리고 기독교인들을 박해합니다. 1597년 26명의 기독교인이 (선교사 6명, 일본인 수도사 3명, 조선인 3명 포함) 멀리 교토와 오사카에서 한 달 동안 쉬지 않고 도보로 끌려와 나가사키의 니시자카(西坂)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전원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그들은 죽으면서 “나는 아무런 죄도 범하지 않았지만 단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죽는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죽게 됨을 기쁘게 생각하며 우리 주님이 나에게 내려주신 커다한 은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행 중의 12세 인 어린이는 “제 십자가는 어디에 있나요?” 말하면서 당당히 순교했다고 합니다.
1614년에는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금교령을 내려 기독교인들을 박해했습니다. 선교사와 신자들이 체포, 추방, 개종을 강요당하고 순교를 당하였는데, 로마의 카타콤의 순교자보다도 더 많은 20~30만 명의 순교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 신앙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이나 마리아상을 밟지 않으면 사랑하는 가족들이 자기 눈앞에서 귀가 잘리고 팔이 잘리며 처형당하는 모습을 봐야만 했다고 하니 그 잔인함은 말로만 들어도 진저리가 쳐집니다. 이 장면은 엔도 슈샤꾸의 <침묵>이라는 소설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 2차대전의 슬픈 현장을 간직한 나가사키 원폭 기념관에 갔습니다. 원폭의 처절한 흔적이 잘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수많은 종이학 꾸러미들이 입구에 빨래처럼 걸려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몽골초원의 샤먼들의 신이 깃든 공간에 나부끼는 천 조각, 혹은 옛날 우리 시골 성황당의 새끼줄에 걸려 있던 하얀 문종이를 연상하게 했습니다. 종이학은 일본 사람들의 토속적이고 하고 미신적이기도 한 종교심을 보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배웅에 감동한 선교사님의 보너스로 일본 테제부 신사에 갔습니다. 학문의 신을 모신 곳으로 입시생을 둔 부모들은 새해에 이곳에 와서 합격을 기원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종이들의 묶음이 수없이 매달려 있었는데 선교사님이 이 신사의 배치가 솔로몬 성전의 배치를 모방했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14일은 온종일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서 하카다 시내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아이들은 4개의 팀으로 나누어 차비와 점심값을 들고 공원과 신사와 공원을 방문하는 미션을 수행하면서 탐방의 주제인 ‘십자가 찾기’를 수행하기 위해 거리를 헤맸습니다. 가기 전부터 일본어 책을 들고 다녔던 최** 학생은 짧은 일본어로 그 외 친구들은 아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도시를 누볐다고 합니다. 십자가를 찾아 걸어서 세 시간 이상을 헤맨 우리 친구들, 하지만 가도 가도 십자가는 없고, ‘십자가를 만들어 세워 그걸 사진을 찍어’ 고민하다 결국 그냥 왔다고 보고를 했습니다. 이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은 이 일본 땅에 십자가를 세워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마음의 십자가를 하나씩 세웠던 것 같습니다.
팀별로 마음이 맞지 않아 서로 성질을 내기도 하고 과다한 빙수 섭취로 배탈도 나고, 몇 시간동안 도시를 헤매다 다리가 아팠지만 수많은 신들의 땅, 태어나서는 신사에 보고하고, 결혼은 교회서 하고, 죽어서는 절에서 장례식을 한다는 다신교의 나라 일본에서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다짐했는지는 하나님께서 아실 것 같습니다.
<후기>
* 중등부 식구들에게
4박 5일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학생들은 서로 한 지체임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교사들 역시 그러했습니다. 일본 만화를 보며 익힌 어학 실력으로 통역을 담담한 김** 선생님, 처음부터 끝까지 즐거이 회계를 맡아 늦은 밤까지 계산하느라 잠을 줄인 문** 선생님,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천사처럼 간호해준 강** 선생님 모두 귀하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남아서 새벽예배 때마다 간절히 기도해 준 문** 선생님, 총무 선생님, 정** 선생님 그 수고를 잊지 못합니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땀을 많이 흘린 신** 선생님 감사합니다. 신** 선생님 힘들게 한다고 아이들이 제게 눈을 많이 흘겼습니다. 이 모든 일정을 총지휘해주신 분은 안 전도사님 입니다.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비밀! 교사들이 길을 잃어버려 한참을 헤맨 적이 있었는데 우리 아이들은 전혀! 해외 배낭여행을 가도 될 것 같습니다.
* 교우님들께
지면을 빌어 몇 달 전에 우리 중등부에 관심 없으시다고 드린 말씀, 잘못 되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중등부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이번에 확인했습니다. 일본 선교 여행을 흔쾌히 허락해주신 당회에 감사드리고 동의해주신 제직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귀한 물질로 후원해 주신 장로님, 권사님, 안수집사님, 학부모님, 그 외 교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중등부 교사들을 믿고 아이들을 보내 주신 학부모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몇 달 동안 기도로 저희들을 끌고 밀어주신 기도의 후원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기도 덕분에 날씨가 좋았고, 큰 사고 없이 일정을 잘 마쳤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언해주시고 도움을 주셨던 교육부 장로님과 장시옥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중등부에게 양보를 많이 해주신 각 교육부서에 감사를 드립니다.
* 목사님들께
선교여행이 실행되도록 허락해 주시고 도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일날 바쁘시고 피곤하실 텐데 여객터미널까지 오셔서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덕분에 선교사님이 우리를 예정보다 훨씬 더 잘 봐 주었습니다. 돌아오는 날도 휴가 중이신 교육부 장시옥 목사님께서 환한 얼굴로 따스하게 맞아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모든 체험과 감동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 세대의 성장과 성숙에 아낌없이 지원해주시는 교회와 교우님들의 관심과 사랑 안에서 중등부는 날마다 조금씩 성장해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