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에 대한 오해와 진실
1.WCC의 신앙고백이 의심스럽다?
WCC는 헌장 제1조에서“세계교회협의회는 성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고백하며,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들의 교제(Fellowship, Koinonia)이다.”라고 그 신앙적 근거와 정체성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WCC는 같은 헌장에서 “한 믿음, 한 성례전적 교제 안에서의 가시적 일치, 예배와 공동생활, 세상을 향해 함께 증언하고 봉사함으로 교회의 일치를 이루어 세상이 하나님을 믿게 하기 위함”이라고 그 목적과 기능을 밝히고 있습니다. WCC는 이처럼 성경, 예수 그리스도,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 위에 굳게 선 세계교회 연합체입니다. WCC가 추구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은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성취하기 위한 세계교회의 공동 노력입니다.
WCC에는 기독교를 사칭하는 온갖 단체들이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닌가, 심지어 예수를 안 믿고 다른 종교를 믿는 단체도 들어와 있지 않느냐고 극단적인 오해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터무니없다는 것은 WCC의 회원교단이 되는 과정만 살펴봐도 드러납니다. WCC의 회원이 되려면 먼저 헌장 제1조에 해당하는 교단의 신앙고백을 제출해야 합니다. 그러면 중앙위원회 회원영입위원회가 이를 심사하고 통과되면 해당 국가에 이미 회원이 되어 있는 교단에 신청교단에 관한 확인을 요청합니다. 만일 입회신청을 한 교단이 정당한 교단이 아니라면 WCC는 결코 그 교단을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WCC의 신앙고백은 분명합니다.
2. WCC는 선교에는 관심이 없다?
1910년 에든버러(Edinburgh)에서 선교와 일치를 위해 전 세계교회가 함께 모인 세계선교대회가 바로 에큐메니칼 운동의 직접적 배경인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지금도 WCC안에는 에든버러 대회의 전통을 이어오는 “선교와 전도위원회”(Commission on World Mission and Evangelism)가 지속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사무국에는 ‘선교화 전도 일치국’이 설치되어 세계교회의 선교와 전도에 대한 지원과 협력, 선교신학의 성찰 등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WCC 선교와 전도 위원회는 복음이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증언되어야 하는지를 지속적으로 연구해 왔습니다. WCC는 총회와 별도로 총회 만큼이나 큰 규모로 진행하는 양대 대회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기독교 교리를 다루는 신앙과 직제 대회이고 다른 하나가 선교를 다루는 선교와 전도 대회입니다. 2013년 부산총회에서도 새로운 에큐메니칼 선교선언이 채택될 예정입니다.
3.WCC는 용공이다?
WCC는 교회의 협의체이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이념도 지향한 적이 없습니다. WCC에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교회인가 아닌가하는 점입니다. WCC는 냉전시대 때 공산체제 속에 있는 교회도 회원교회로 받아들였고 함께 교제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어떤 정치체제 속에 있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교회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두고 용공이라고 한다면 그 주장은 복음을 이념 아래에 두는 셈이 됩니다.
우리가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은 공산체제 아래 있던 교회들의 보존을 위해 WCC가 엄청나게 노력했고 그 노력으로 공산권이 무너졌을 때 교회가 다시 부흥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북한 교회가 세계교회와 연결되는데도 WCC가 정치적 장벽을 무릅쓰고 교제를 시도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한편, WCC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당시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WCC중앙위원회를 통해“우리는 유엔이 세계질서의 도구로서 이 침략에 맞서서 신속한 결정을 취해 줄 것과 모든 회원 국가가 지지하는 경찰 조치를 허락해 줄 것을 권고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WCC의 용공시비는 인간의 이념의 산물입니다.
4. WCC는 사회선교에만 괸심이 있다?
WCC안에는 선교와 전도, 기독교교육 이외에 거대한 양대 산맥이 있습니다. 하나는 ‘신앙과 직제’로 신앙과 일치를 강조하는 면이고, 다른 하나는 ‘삶과 일’로서 복음의 사회적 증언을 강조하는 측면입니다. 한국에는 WCC가 70,80년대의 사회 상황과 관련해 인권과 민주화 등에 많은 지원을 했기 때문에 WCC의 사회선교적 측면만 부각되어 WCC는 사회선교에만 관심이 있다고 알려진 듯합니다. 그러나 WCC안에는 신앙과 일치를 강조하는 흐름과 복음의 사회적 증언을 강조하는 흐름이 팽팽하게 공존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선교에도 두 흐름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인권이나 민주화 같은 사회적 증언이고 또 하나의 흐름은 사회봉사(Diakonia)입니다. WCC의 사회선교에는 봉사의 면도 강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5. WCC신학은 자유주의 신학이다?
사실 WCC의 신학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WCC는 회원교회들의 다양한 신학이 서로 대화하고 조정하고 공통의 신학적 견해를 찾아가는 문자 그대로 협의체(Council)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엄격히 말하면 WCC고유의 신학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WCC안에는 여러 신학노선이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자유주의 신학도 존재하고 엄청나게 보수주의적 신학도 존재합니다. 정교회의 신학은 한국의 보수신학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고 회원교회 중에는 복음주의 교회, 오순절 교회도 상당수 참여하고 있습니다.
6. WCC는 가시적 일치를 주장한다?
WCC가 추구하는 그 가시적 일치란 외형적 일치 혹은 구조적 일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WCC가 추구하는 가시적 일치란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일치를 가시화 하자는 것이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란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인 것 같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도 하나가 되어 하나이신 하나님 안에 있길 원하셨고 그 목적은 세상으로 하나님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선교와 일치의 부름은 바로 에큐메니칼 운동의 모태가 된 1910년 에든버러 세계선교대회의 비전이기도 했습니다. WCC가 추구하는 가시적 일치는 이런 선교적 목적 때문이지 결코 세계 교회의 외형적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7. WCC는 다원주의다?
WCC종교 간의 교리를 섞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WCC밖에 있는 로마가톨릭교회도 그렇지만 WCC안에 있는 양대 교회, 즉 정교회와 개신교도 결코 서로의 교리를 섞을 수 없다는 입장 때문에 교리적 일치에 이르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하물며 종교 간의 교리를 섞는 일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WCC는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나라가 일체 치하에 있을 때 천도교, 불교, 기독교가 민족의 독립을 위해 함께 독립선언을 했듯이 정의와 평화, 그리고 인류의 화해를 위한 인류공동의 과제 때문에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종교 간의 협력과 다원주의는 다릅니다.WCC가 종교 간의 대화를 하는 이유는 첫째는 선교를 하기 위함이고, 둘째는 타종교가 다수종교인 사회 속에서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자유를 보고하기 위함이고, 셋째는 인류의 평화나 생태계 보호와 같은 인류 공동의 과제를 위한 종교 간의 협력을 도모하기 위함입니다. 종교 간에 협력을 하는 모습을 세속사회가 종교에 대해 깊은 신뢰를 하게 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